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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정부 내 외교 정책 엇박자, 더 이상 안된다

정부 내 외교 정책 엇박자, 더 이상 안된다
[뉴스]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가 최고 지도자의 말은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엄중한 무게를 지닙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신뢰를 잃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나라에 외교적 신뢰는 생존을 지키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앞말과 뒷말이 같고, 공언한 원칙을 행동으로 뒷받침할 때 비로소 강대국들 사이에서 당당한 외교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언행을 보면 아쉬움이 큽니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표방하면서도 정책의 목표와 실행 전략이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보수 숭미 세력의 거센 흔들기 한미동맹이 한국 외교의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동맹을 이유로 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이견을 삼가야 한다는 주장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최근 국민의힘과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발언,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정부의 신중한 대응,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의 대북·방첩 업무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습니다. 가 사설로 두 사람의 교체를 요구하고 국민의힘이 정부의 안보 신뢰를 문제 삼으며 경질을 압박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는 구체적인 사실과 성과를 놓고 따져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일각의 우려를 곧바로 정부의 안보 실패로 규정하며 국내 정치 공세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의 입장을 앞세워 한국 정부의 정책을 흔드는 행태에는 오랜 사대주의적 잔재가 엿보입니다. 대통령과 외교 참모의 잇단 엇박자 그러나 외부의 압박이 거세다고 해서 정부 내부의 정책 엇박자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올해 9월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공존을 강조하며 비핵화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기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단계부터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는 중간 목표를 추구하면서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지향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재염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6. 9. 23 연합뉴스 그런데 연설에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했습니다. 물론 최종 목표를 유지하면서 단계적 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 목표의 관계와 실행 전략을 정부가 얼마나 일관되게 설명했느냐는 점입니다. 대통령이 현실적인 중간 목표를 제시했다면 외교부도 그것이 기존의 비핵화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명히 밝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니,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한 사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고 신뢰가 떨어지는 겁니다. 이 문제는 6월 8일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과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만을 고집하기보다 핵 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중단시키는 현실적인 중간 목표부터 협상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반면 이틀 뒤 나온 한-EU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같은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을 국제사회에 주는 일인데, 이렇게 연이어 대통령과 참모가 대한민국의 핵심 정책에 엇박자를 놓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국제형사재판소 이슈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참모들만 탓할 일도 아닙니다. 대통령 자신도 원칙을 실제 정책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언급하며, 그가 한국에 입국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국제법과 국제사법의 원칙에 따라 그의 체포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나비 필라이 전 ICC 재판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ICC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서, ICC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5월의 네타냐후 발언 때와 달리 이번의 사안에 관해서는 아직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주요국과 일본이 ICC 지지를 표명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5월 발언의 맥락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속 시원한 말보다 행동과 성과가 중요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10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는 외교를 해야 한다며 국가 간 관계에서 굴종적·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이 발언에서 주권 국가의 자존과 당당한 외교에 대한 기대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 시원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실천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라고 노래했습니다.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이 없듯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외교도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림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상대를 일방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패권 국가가 아닙니다. 한국 같은 중견국이 국제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국익을 지키려면 국력 강화와 함께 외교적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 신뢰는 일관성과 언행일치에서 나옵니다. 전작권 환수, 이재명 외교의 시험대 이재명 외교의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입니다. 이 대통령은 군사 주권을 되찾겠다며 임기 내 전작권 환수를 수차례 약속했습니다. 19일에도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찾아 반드시 조기에 환수해야 되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주적 독립 국가로서 최소한의 요건이 군사 주권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 미군 사령관이 안보 환경 변화를 핑계로 상황이 변했고 계획도 바뀌었기 때문에 충족해야 할 새로운 기준들이 생겨났다”라며 또다시 ‘골대 옮기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문턱을 높이며 군사 주권 환수를 지연시키려 한다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말에만 그치지 않고 단호한 행동으로 자신의 결단을 관철해야 합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미 싱크탱크 골드 국제전략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10.15 연합뉴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외교·안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화려한 말의 성찬이 아니라 실행력입니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국제법과 국제규범에 대한 원칙을 행동으로 뒷받침하며, 국익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가 국익 외교를 말로만 내세우지 않고 일관된 정책과 실질적인 성과로 증명하기를 기대합니다. 일관성과 언행일치, 그것이 대한민국 외교가 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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