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대신 팸플릿과 연설, 그리고 웃음 버나드 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그 유명한 극작가 라는 반응과 글쎄, 누구더라 하는 반응. 그런데 이 사람, 알고 보면 노벨문학상과 오스카상을 함께 받은 인류사 최초의 인물이다. 심지어 상금도 받기 싫다며 죽은 스웨덴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1849~1912)의 작품을 영어로 옮기는 사업에 통째로 기부해 버렸다. 웬만한 배짱 아니면 못할 일이다.
1911년의 쇼(위키피디아).
아일랜드 촌뜨기, 런던에서 다섯 번 퇴짜 맞다
쇼는 1856년 더블린의 몰락한 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술꾼에다 사업에 실패한 곡물상, 어머니는 성악 선생과 눈이 맞아 아들을 두고 런던으로 떠나버렸다. 집안 사정이 이러니 정규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받은 게 없다. 스무 살이던 1876년, 쇼도 어머니를 따라 런던으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10여 년간 소설을 다섯 편이나 썼는데, 전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요즘 같으면 진작 절필했을 텐데, 이 남자는 오기로 버텼다. 결국 소설가로는 실패했지만 음악·연극평론가로 이름을 얻었고, 그 신랄한 필봉이 나중에 극작가로서의 무기가 된다.
쇼의 생가. 명판에는 수많은 희곡을 쓴 작가 버나드 쇼가 1856년 7월 26일 이 집에서 태어났다 라고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
혁명 대신 끈기를 택한 사람들, 페이비언 협회
1884년, 쇼는 막 결성된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한다. 이 단체 이름은 로마 장군 파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 기원전 280?~기원전 203)에서 따왔다. 한니발(Hannibal, 기원전 247?~기원전 183?)과 정면으로 붙지 않고 끈질기게 지구전을 벌여 결국 이긴 그 장군 말이다. 즉 페이비언들은 폭력혁명이 아니라 끈기 있는 설득과 점진적 개혁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자는 이들이었다. 시드니 웹(Sidney Webb, 1859~1947)과 그의 부인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 1858~1943) 같은 동료들과 함께 쇼는 1895년 런던정경대학 설립에도 관여했다. 혁명 대신 팸플릿과 연설, 그리고 웃음. 쇼가 택한 무기는 칼이 아니라 조롱이었다.
1879년의 쇼(위키피디아).
무대 위에서 위선의 가면을 벗기다
쇼는 평생 예순 편이 넘는 희곡을 썼다. 매춘업을 소재로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발가벗긴 『워런 부인의 직업』(1893), 전쟁의 낭만을 조롱한 『무기와 인간』(1894), 계급과 자본을 풍자한 『바바라 소령』(1905), 그리고 지금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으로 유명한 『피그말리온』(1913)까지. 그의 희곡은 하나같이 웃기면서도 뼈아프다. 지주와 자본가, 성직자, 군인 할 것 없이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은 위선을 발가벗기는 게 특기였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38년에는 자신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영화각본으로 각색해 오스카 각본상까지 받았다. 노벨상과 오스카를 함께 받은 최초의 인물이라는 기록은 이렇게 세워졌다.
1894년의 쇼, 《무기와 인간》을 집필할 무렵이다. (위키피디아)
웃긴 사람이 다 착한 건 아니다
여기서 쇼를 성인군자로 그리면 곤란하다. 이 사람, 상당히 골치 아픈 면도 있었다. 채식주의자에 금주가였고 여성참정권을 지지했지만, 동시에 우생학을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과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에게 호감 어린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양쪽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다 온 나라의 미움을 샀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주는 훈장 대부분은 거절했다. 노벨상은 받았지만 기사작위 같은 세속적 영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웃긴 사람이라고 다 옳은 말만 하는 건 아니고,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늘 인격자인 것도 아니라는 걸 쇼만큼 잘 보여주는 인물도 드물다. 그는 1950년, 94세에 사다리에서 떨어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새 희곡을 쓰고 있었다.
1936년, 여든 살의 쇼 (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조롱과 끈기의 정치학
쇼를 오늘 한국에 데려온다면 뭐라고 할까. 두 가지가 눈에 밟힌다.
첫째는 페이비언들의 끈기 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총칼로 한순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판을 뒤집으려 했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한니발과 정면대결을 피하며 결국 승리했듯, 진짜 개혁은 몇 시간짜리 계엄령이 아니라 지루하고 끈질긴 설득의 축적으로 완성된다는 걸 쇼의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무지했던 윤석열과 그의 졸개들은 몰랐던 것 같다.
둘째는 조롱 이라는 무기다. 쇼는 권력자와 위선자를 향해 칼 대신 웃음을 휘둘렀다. 지금 한국에서도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그리고 이것을 방조하거나 옹호한 이들을 향한 풍자와 조롱이 봇물처럼 터진다. 그 웃음이야말로 폭력에 기대지 않고 독재 권력의 민낯을 벗기는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백 년 전 더블린 출신의 심술궂은 극작가가 이미 증명해 두었다.
제이콥 엡스타인이 만든 쇼의 흉상(1934년, 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