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플랫폼, 디지털 혁신이 아니라 디지털 불편 [뉴스] 6일 서울 시내에서 실행해본 그늘 알려주는 앱 그늘로 . 이 애플리케이션은 목적지를 입력하면 건물 그림자와 태양 고도를 계산해 그늘 위주의 길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도 앱이다. 2026.8.6 연합뉴스
시민은 트래픽이 아니다: ‘스마트 행정’이 남긴 불편의 기록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화려한 조감도와 통합 플랫폼 개통식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공상과학(SF) 영화 속 유토피아에서 살게 될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다르다. 화려한 디지털의 포장지를 벗겨내면, 씁쓸하게도 시민은 철저히 소외된 채 탁상행정 의 앙상함만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느낌만이 아니라 이미 숫자로 확인된 이야기다. 지난 5월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과 국토교통부가 스마트도시 사업을 수행한 지방정부 13곳의 121개 사업을 집중 점검한 결과, 309건의 위법·부적정 사례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1046억 원이 투입된 52개 사업, 그러니까 점검 대상의 43%가 사업을 끝내지 못했거나 준비 부족과 운영·관리 부실로 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지방정부는 111억 원을 들여 수요응답형 버스와 지능형 합승택시 등 10개 사업을 벌였지만 이용 실적 저조와 과다한 운영비를 이유로 2년 5개월 만에 서비스를 접었다. 또 다른 곳은 110억 원을 들여 실시간 교통정보 수집 인프라와 AI 기반 교통신호 체계를 구축했지만, 신호 체계를 관할하는 경찰청과의 협의가 늦어지면서 아직도 쓰이지 못하고 있다. 2021년부터 5년간 이 사업에 들어간 예산만 7970억 원이다.
황규철 행정안전부 인공지능정부실장이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AI 정부24 시범서비스 이용현황과 발전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6.6.30. 연합뉴스
대국민 서비스 전환 후 사라지는 질문들
문화콘텐츠 스토리 작가를 시작으로 우연찮게 공공기관 웹 서비스를 위해 이십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본업을 삼고 있다. 현장에서 정보구조(IA)를 설계하고 시스템을 구축해 보면 금세 드러나는 사실이 있다. 공공 플랫폼은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실적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로 바뀌었다. 시스템은 시민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사업의 명분을 세우고 예산 집행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물로 기능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이름은 스마트하지만 실제 사용 경험은 둔탁하고, 통합이라 하지만 체감은 분절적이며, 혁신이라 부르지만 시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복잡해지기만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제로 시민이 쓰는가, 반복해서 쓰는가, 불편 없이 쓰는가. 그 질문은 오픈 이후 얼마 가지 않아 너무 쉽게 사라진다. 민간에서는 출시가 시작이지만 공공에서는 출시가 끝이다. 리본을 자르고 보도자료가 나가고 성과보고서에 한 줄이 올라가면, 그 시스템의 생애주기는 사실상 완결된다. 이후에 남는 것은 유지보수 계약서 한 장과,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 목록의 맨 아래로 밀려나는 이름뿐이다.
이름만 통합, 원스톱은 왜 멀어지는가
서울의 한 자치구를 떠올려 보자. 구청 홈페이지에서 민원, 신청, 예약, 복지, 교육, 문화 정보를 한 번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메뉴는 부서 기준으로 나뉘어 있고, 비슷한 서비스는 여러 페이지에 흩어져 있으며, 같은 민원도 어느 부서 소관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야 한다. 주민은 통합”을 기대하고 들어왔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다시 분류하고 다시 찾고 다시 확인해야 한다.
서울의 다른 자치구 사례를 보자. 모바일 행정을 강조하면서 전면 개편을 했지만, 정작 휴대전화에서는 입력 칸이 잘리거나 안내문이 화면 밖으로 밀리고, 본인 인증은 몇 차례나 반복된다. 보안 프로그램 설치 요구까지 겹치면 사용자는 민원을 처리하기보다 접속 자체를 버텨내야 한다. 결국 행정은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화면 위에 더 많은 장애물을 쌓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쯤 되면 스마트 행정이 아니라 불편의 전산화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하다.
서울 자치구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더 큰 문제도 있다. 어떤 구는 통합 플랫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부서별 시스템을 억지로 한 화면에 붙여놓은 수준에 그친다. 겉으로는 원스톱이지만 내부는 여전히 사일로다. 시민은 한 번에 해결되는 행정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사이트를 전전하고, 전화로 다시 묻고, 오프라인 창구를 끝내 포기하지 못한다. 시스템이 통합된 것이 아니라, 통합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에 가깝다.
서울시 자치구 통합예약 사이트 메인 화면 (특정 자치구와 무관한 예시 자료화면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태도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시스템이 디지털 약자를 더 멀리 밀어낸다는 점이다. 공공의 디지털화는 원래 행정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고령층, 장애인, 이주민,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시민에게 오히려 더 높은 문턱이 된다. 화면은 복잡하고 설명은 부족하며, 오류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경로도 불친절하다. 결국 시민은 다시 전화를 하고, 또 기다리고, 또 설명해야 한다. 기술이 시민의 시간을 아껴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술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드는 구조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의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기술을 다루는 행정의 관점이다. 공공 플랫폼은 시민의 문제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보고서에 들어갈 숫자, 홍보물에 넣을 이미지, 기관장의 성과를 포장할 문구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마트’는 기능의 이름이 아니라 포장의 언어가 된다. 시민이 쓰는가보다 사업이 성과로 보이는가가 중요해지고, 사용성보다 사업 종료가 중요해지며, 서비스 품질보다 구축했다”는 사실이 앞선다. 공공이 이렇게 되면 기술은 혁신이 아니라 장식이 된다.
진정한 스마트함은 화려한 대시보드에 있지 않다. 사용자가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작동하며,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고, 반복 입력을 줄이고, 민원 처리의 흐름을 눈에 보이게 정리하는 데 있다. 시민은 기술을 감상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다. 생활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공공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기준은 단 하나여야 한다. 이 시스템이 정말 시민의 시간을 덜 빼앗는가, 더 쉽게 이해되는가, 더 빨리 끝나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플랫폼은 아무리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도 스마트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마트’라는 말을 더 크게 외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창한 대형 사업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이용자 검증, 민원 현장의 반복되는 불편 파악, 부서 간 데이터 연계, 장애인·고령층 친화 설계, 그리고 왜 시민이 같은 정보를 두 번 입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공공행정은 시민을 감동시키는 쇼가 아니라, 시민이 덜 지치게 만드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지자체장의 치적용 포트폴리오를 위해 ‘스마트’라는 가면을 씌운 시스템을 강요하는 일, 이제는 멈춰야 한다. 시민은 트래픽이 아니다. 접속자 수와 다운로드 수로 행정의 가치를 환산하는 시대도 끝나야 한다. 공공행정의 진짜 성과는 얼마나 화려하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덜 불편하냐에 있다. 스마트 행정의 기준은 기술의 세련됨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얼마나 덜 거슬리게 하느냐여야 한다. 그 상식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든 것은 미래형 행정이 아니라 미래형 불편일 뿐이다.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