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왜 에너지기업으로 전환하나 [환경] 국내외 종합상사 기업들이 무역회사를 넘어 에너지 개발·운영회사로 바뀌고 있다. 원유와 가스, 석탄 등 원자재 트레이딩을 넘어 발전소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 전력을 데이터센터와 제조기업에 판매하는 구조로 사업모델을 전환하는 것이다.
국내 종합상사뿐 아니라 미쓰비시상사와 미쓰이물산, 마루베니, 이토추 등 일본 종합상사는 이미 LNG, 발전소, 재생에너지, 전력 소매를 연결한 대형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비톨과 트라피구라, 머큐리아 등 유럽 원자재 트레이더들도 석유 거래에서 전력·배터리·탄소배출권·저탄소 연료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내외 종합상사 기업들이 무역회사를 넘어 에너지 개발·운영회사로 바뀌고 있다./ 챗GPT 생성이미지
삼성물산, 태양광 개발에서 그린 암모니아 거래로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KRX: 028260)은 최근 일본 최대 발전기업 제라(JERA)와 수소·암모니아 밸류체인을 강화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수소와 암모니아를 운송하는 선박과 저장탱크, 터미널 운영뿐 아니라 저장시설에서 연료의 탄소집약도 정보를 구분하고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삼성물산 에너지 사업의 기존 중심축은 태양광이다. 태양광 발전 부지를 개발한 뒤 착공 전 매각해 이익을 거둬왔다. 2018년 미국에 진출해 100여곳을 개발 중이다. 올초 호주에서도 첫 이익을 냈다. 올해 태양광 부지 매각 이익은 8500만달러(약 1200억원)로 지난해 7900만달러(약 1100억원)보다 7.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 들어선 수소·암모니아 사업을 확대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인도 기업 릴라이언스(NSE: RELIANCE)와 30억달러(약 4조5000억원) 규모로 그린 암모니아를 15년간 구매해 고객사에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KRX: 047050)은 포스코그룹이 최근 발표한 트리플 코어(철강·리튬·에너지) 체제에서 에너지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등극했다. 액화천연가스(LNG) 분야에서 미얀마 가스전 등 생산부터 운송-저장-발전-판매까지 전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최근엔 재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한국남동발전과 전남 신안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논의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스전 기술을 활용해 지열에너지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중이다. 인천 LNG발전소에 수소 20% 혼소와 고효율 터빈을 적용, 탄소 배출량을 30% 이상 줄일 계획이다.
석탄 사업에 주력해온 LX인터내셔널(KRX: 001120)은 전략적 거점인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운영하는 팜 농장의 폐수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 등 바이오가스를 포집해 전력으로 쓰는 발전 플랜트 등을 가동 중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최대 발전 기업인 PLN인도네시아파워와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일본 종합상사, 이미 발전·전력판매까지 진출
한국 종합상사의 에너지 전환 흐름은 일본 종합상사들과 상당히 닮아 있다.
미쓰비시상사는 2030년까지 청정에너지 전환에 약 2조엔(약 20조원)을 투자하는 에너지 트랜스포메이션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LNG와 가스발전, 재생에너지, 전력 판매를 ‘에너지·파워솔루션’ 사업군으로 통합했다. 원료를 조달해 일본에 판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발전소와 전력 소매회사를 직접 보유하는 구조로 이동했다.
미쓰비시중공업(TSE: 7011) 산하 미쓰비시파워는 셰브런과 ACES 델타를 공동 개발하고, 220MW급 전해조를 기반으로 한 통합 수소 생산설비와 수소 혼소 가스터빈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해상풍력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LNG 개발부터 가스발전, 재생에너지까지 직접 투자한다. 2026년 3월 말 기준 지분 환산 발전용량은 약 9.4GW다. 전원별 비중은 가스 55%, 재생에너지 34%, 석탄 8%, 석유 3%다. 미쓰이물산과 미쓰이OSK라인(TSE: 9104)은 지난해 스코틀랜드 니그항과 관련 제조·에너지 서비스 사업을 인수했다.
마루베니는 발전자산과 전력 판매를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영국계 자회사 스마트에스트에너지(SmartestEnergy)를 통해 유럽과 미국의 기업 고객에게 전력을 판매하며,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기업 수요자를 연결한다. 2026년에는 스마트에스트에너지를 통해 스페인 전력 소매기업 팩터에네르히아(Factorenergia) 지분 85%를 2억400만유로에 인수했다.
이토추(TSE: 8001)는 재생에너지 발전뿐 아니라 운영·유지보수, 에너지관리, 수소·암모니아, 에너지저장장치를 함께 묶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 라슨앤드투브로(NSE: LT) 계열사와 연간 30만톤 규모의 그린 암모니아 장기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000720)과도 수소·암모니아 생산 및 공급사업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비톨·트라피구라도 석유에서 전력·배터리·탄소시장으로
유럽의 원자재 트레이더들도 에너지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세계 최대 독립 원자재 트레이더인 비톨(Vitol)은 원유와 석유제품 거래를 기반으로 LNG, 가스발전, 전력, 태양광, 풍력, 배터리저장장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26년에는 미국 해상 LNG 수출시설인 델핀 FLNG 1에 투자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는 1000~1800㎿ 규모의 LNG복합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트라피구라(Trafigura)는 태양광·풍력·배터리저장장치와 함께 저탄소 수소·암모니아 거래시장에 진출했다. 2026년에는 CF인더스트리스(CF Industries, NYSE: CF), 선박연료 공급기업 TFG마린(TFG Marine)과 저탄소 암모니아를 해운 연료로 공급하기 위한 협력을 시작했다. 암모니아 생산기업과 트레이더, 선박연료 공급사를 연결해 새로운 해운 연료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머큐리아(Mercuria)는 신규 투자액의 50%를 에너지 전환 분야에 배정한다는 목표를 당초 계획보다 앞서 달성했다고 밝혔다. 회사가 투자하거나 개발 중인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은 약 20GW다.
한편, 종합상사가 에너지 개발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배경에는 전통적인 트레이딩 사업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상사의 트레이딩 부문은 매출 규모는 크지만 중개 수수료에 의존하는 탓에 영업이익률이 1%를 밑도는 경우가 많다. 실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경우 매출 비중에서는 트레이딩(철강·식량소재) 부문이 85% 이상을 차지하지만, 영업이익 비중에서는 무역·투자법인과 에너지 인프라 부문이 합쳐 60%를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그룹 계열사의 수출입을 도맡던 상사들은 이 업무가 줄어들자, 2000년대 초반부터 호주·인도네시아·아프리카 등지의 광산·유전 지분을 사들이는 자원개발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 축적한 자원개발 노하우와 해외 네트워크가 2020년대 들어 이차전지 원료 공급망, 그리고 최근의 태양광·수소·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글로벌 종합상사와 원자재 트레이더의 에너지 전환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트라피구라는 호주에서 추진하던 4억8600만달러(약 7290억원) 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대형 재생에너지 투자를 재검토했다. 높은 금리와 수소 구매자 부족, 정부 지원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일본 종합상사들도 사업비 급등으로 일부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철수하거나, 터빈 규모와 착공 시점을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