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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나무를 심은 시장, 전쟁을 막으려 한 에이다 솔터

나무를 심은 시장, 전쟁을 막으려 한 에이다 솔터
[사회혁신]
19세기 말 영국 런던 남동부 버몬지는 무두질 공장과 창고, 부두노동으로 뒤덮인 동네였다. 좁은 골목마다 그을음이 앉았고, 아이들은 성홍열과 결핵을 달고 살았다. 이 동네에 스물아홉 살 먹은 감리교 집안 딸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이름은 에이다 솔터(Ada Salter, 1866~1942). 원래 성은 브라운이었고, 노샘프턴셔의 소도시 라운즈 출신이다.   에이다 솔터. 위키피디아 빈민가에서 만난 두 사람 에이다는 종교 봉사단체를 따라 버몬지 정착촌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젊은 의사 알프레드 솔터(Alfred Salter, 1873~1945)를 만난다. 알프레드는 원래 무신론자에 사회주의자였는데, 에이다와 가까워지며 기독교로 돌아왔고 나중엔 퀘이커교도가 되었다. 에이다는 또 알프레드를 노동당으로 끌어들였다. 둘은 1900년에 결혼했고, 부유한 동네로 이사 가는 대신 버몬지에 눌러앉아 평생을 그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기로 했다. 이 결정은 대가가 컸다. 둘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 조이스를 빈민가 밖 안전한 학교로 보내자는 주변 권유를 뿌리치고 동네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러다 성홍열을 세 번 앓은 딸은 아홉 살 나이로 죽었다. 부부는 슬픔 속에서도 버몬지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뒤로 더 깊이 지역정치에 뛰어들었다.   알프레드 솔터와 딸 조이스(위키피디아) 나무 심는 시장 1909년 에이다는 버몬지 구의회 최초의 여성의원이자 최초의 노동당 의원으로 당선된다. 1919년 재선된 뒤에는 이듬해 이른바 미화위원회 라는 조직을 만들어 버몬지 전역에 나무와 꽃을 심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이 위원회가 심은 나무가 약 9천 그루, 꽃과 관목이 6만 그루에 이른다. 여든 개 넘는 거리 가운데 일흔 곳이 가로수 길로 바뀌었다. 빈민가를 그냥 밀어버리는 대신, 밀어버릴 수 있는 곳에는 공영주택을 짓고 밀어버릴 수 없는 곳에는 나무와 화단을 심어 살 만한 동네로 바꾸겠다는 발상이었다. 1922년 에이다는 버몬지 자치구 시장으로 뽑힌다. 런던 최초의 여성 시장이자 영국전역에서 최초의 노동당 여성 시장이었다. 그는 이 자리를 발판 삼아 남편과 함께 산 켄트 지방의 별장 페어비 그레인지를 산모와 아기를 위한 요양원으로 통째로 기부했고, 이곳 정원에서 기른 묘목을 버몬지 곳곳에 실어 날랐다. 도시녹화가 그저 보기 좋은 치장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자존감을 지키는 정치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에이다는 나무를 심어 놀이터를 연다. 알프레드는 그녀의 왼쪽에 있다.(위키피디아) 반전주의자, 여성노동자의 동지 에이다는 여성노동자전국연맹 활동을 통해 여성노동조합 운동에도 힘을 보탰고, 1915년에는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 독립노동당 대표로 참석했다. 1차대전이 터지자 부부는 나란히 반전 운동에 나섰고, 이 때문에 성난 군중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에이다는 여성국제평화자유연맹 의장을 맡아 미국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제인 애덤스(Jane Addams, 1860~1935)와 함께 국제평화운동을 이끌었다.   1926년경의 제인 애덤스(위키피디아) 오늘 한국에 던지는 물음 에이다 솔터의 이야기가 지금 한국에 특별히 와 닿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그는 중앙정치가 아니라 구의회, 시장이라는 지방자치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꿨다. 한국은 지방선거 때마다 중앙정치 구도의 대리전으로 흘러가기 일쑤고, 정작 동네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다. 미화위원회처럼 작은 조직 하나가 20년에 걸쳐 도시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지방정치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둘째, 그는 녹지와 나무심기를 단순한 환경사업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건강권 문제로 봤다. 재개발과 녹지훼손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안 심고가 결국 누가 맑은 공기를 누리는가의 문제라는 걸 새겨볼 만하다. 셋째, 딸을 잃고도 빈민가를 떠나지 않은 결정에서 보듯, 그는 자신이 바꾸려는 공동체 밖에서 안전하게 훈수 두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면서 정작 자기자식은 다른 세상에 살게 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는 나라라면, 100년 전 버몬지의 이 부부가 남긴 삶의 방식이 여전히 뼈아픈 질문으로 남는다.   에이다 솔터를 기리는 푸른 명판: 사회 개혁가이자 런던 자치구 최초의 여성 시장이었던 그녀가 이곳에 살았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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