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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돈 없어 퇴원 못하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 열어준 장기려

돈 없어 퇴원 못하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 열어준 장기려
[사회혁신]
수석 졸업생이 고른 가난한 길 장기려(1911~1995)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외과의사이자 사회사업가다.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40년 일본 나고야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력만 따지면 이름난 병원을 세우고 부를 쌓을 길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을 돕겠다는 젊은 날의 다짐을 삶의 중심에 놓았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렀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했다면, 장기려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부산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돌봤다. 두 사람 모두 의술을 돈벌이의 수단만으로 여기지 않았다. 다만 세상은 그런 의사를 칭찬하면서도, 그처럼 살라고 하면 대개 고개를 돌린다.   장기려(https://www.hmap.co.kr/en/post/view.php?no=4876) 맨몸으로 내려와 창고에서 시작하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장기려는 아내와 자녀들을 북에 남겨 둔 채 둘째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잠시 헤어지는 줄 알았던 가족과의 이별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1951년 부산 영도에서 문을 연 복음진료소는 전쟁피란민과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료했다. 전영창과 한상동 목사 등이 힘을 보탰고, 미국에서 모금한 성금과 구호의약품도 개원에 도움이 됐다. 작은 진료소는 복음의원과 복음병원으로 발전했고, 오늘날 고신대학교복음병원으로 이어졌다. 장기려는 마음씨만 좋은 의사가 아니었다. 1959년에는 간암 환자의 간을 크게 절제하는 수술에 성공해 국내 간 외과 발전에 중요한 길을 열었다. 1974년에는 한국간연구회 창립을 이끌었다. 가난한 환자에게는 진료비를 걱정하지 않게 해 주고, 의학에는 새로운 길을 내주었다. 인술과 실력이 한 몸에 들어 있었던 셈이다.   장기려(https://www.instagram.com/p/DMrglTkS1eA/) 환자에게 뒷문을 열어 준 원장 장기려는 입원비가 없어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밤에 뒷문을 열어 둘 테니 몰래 나가라고 했다. 병원장이 환자 탈출의 공범이 된 셈이다. 병원 회계담당자는 골치가 아팠겠지만, 환자에게는 그날 밤이 삶의 출구였을 것이다. 그는 병원운영자의 눈으로만 환자를 보지 않았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제도자체를 문제로 여겼다. 평생 자기 집 한 채를 마련하지 않고 병원 사택에서 살았으며, 말년에도 소박한 방에서 지냈다. 1979년에는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1907~1957)를 기리는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 부문을 받았다. 2006년도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에 헌정됐다. 가난한 환자에게 문을 열어 준 그의 삶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 감동이 언제나 개인의 선행을 찬양하는 것에서 끝난다면 곤란하다. 모든 병원에 장기려 같은 원장이 있어야만 가난한 사람이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사회가 아니라 숙제를 못 끝낸 사회다.   장기려( 위대한 스승 고 성산 장기려 박사 19주기 추모식 - 의협신문) 푼돈 회비로 세운 보험, 국가보다 9년 먼저 장기려의 가장 큰 유산은 수술실 밖에 있다. 바로 의료보험이다. 1968년 5월 부산에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출범했다. 장기려와 채규철을 비롯한 동료들이 힘을 모아 처음 723명의 조합원을 모았다. 첫 가입자는 함석헌(1901~1989)이었다. 조합원은 한 달에 60원을 내고, 아플 때 의료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내 건강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이웃을 돕고 아플 때 도움을 받자는 생각이었다. 독일에서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가 1883년 노동자 질병보험을 법제화했다. 영국에서는 어나이린 베번(1897~1960)이 보건장관으로 일하던 1948년 7월 5일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출범했다. 한국정부가 1977년 7월부터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의료보험을 의무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 부산에서는 이미 9년 전부터 자영업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의료보험의 길을 닦고 있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현된 것은 1989년 7월이었다. 물론 청십자조합 하나가 국가의료보험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의 제도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전에, 가난한 사람도 보험료를 내고 의료보장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국가는 법률과 행정조직을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장기려는 당장 아픈 사람을 두고 기다릴 수 없었다. 국가가 제도를 만들기 전에 시민이 먼저 길을 낸 것이다. 나중에 국가가 그 길을 넓혔다면, 그 공로는 국가만의 것이 아니다.   장기려(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의사·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 아! 장기려… - 국민일보) 끝내 열지 못한 가족의 문 장기려의 삶에는 누구도 대신 갚아 줄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북에 남은 아내와 자녀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 것이다. 환자에게는 뒷문을 열어 주었지만, 자신은 분단의 장벽을 열 수 없었다. 1995년 12월 25일, 그는 성탄절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남쪽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렸지만, 정작 자기 가족과 함께할 평범한 세월은 돌려받지 못했다. 둘째 아들이 평양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2000년 8월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한 사람의 선의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장기려의 삶은 개인의 헌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 주는 동시에, 분단과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는지도 보여 준다.   장기려와 함석헌(장기려 박사와 함석헌 선생 이야기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위클리서울) 오늘 한국은 장기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장기려를 기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만들고,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주면 된다. 어려운 것은 그가 평생 맞서 싸운 문제를 실제로 줄이는 일이다. 오늘날에도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환자가 있고, 지역에서는 필요한 의료진을 구하기 어렵다.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일부 분야에서는 전공의 지원 부족이 반복되고, 의사와 정부의 갈등은 환자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의료인력 문제를 의대정원 숫자 하나로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길러 내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진료환경과 보상, 안전한 의료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장기려의 유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좋은 제도는 현장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청십자조합은 정부의 완벽한 설계도가 먼저 있어서 출범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병원비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둘째, 가난한 환자를 돕는 일을 개인의 선행에 맡겨서는 안 된다. 어느 병원 원장이 뒷문을 열어 줄지 눈치 보지 않아도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존엄은 원장의 성품이나 환자의 운에 달려서는 안 된다. 셋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명령만이 아니다.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의무 복무를 부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적절한 보수와 의료사고에 대한 합리적인 부담, 가족이 살 만한 주거와 교육 환경, 동료 의료진과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을 지역에 보내는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장기려는 가난한 사람에게 병원 문턱을 낮추었고, 청십자조합을 통해 의료비 걱정을 함께 나누는 제도를 실험했다. 그의 삶을 오늘의 의료현실과 연결하는 일은 그를 성인으로 추켜세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장기려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다. 이제는 모든 병원에 그와 같은 성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없다. 성자가 없어도 가난한 환자가 치료받고, 지방에 살아도 제때 진료 받으며, 의사도 환자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장기려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상을 하나 더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가 없어도 굴러가는 제도를 세우는 일이다. 뒷문으로 몰래 도망치는 환자가 없는 나라. 그가 평생 열고 싶었던 문은 바로 그런 나라로 통하는 앞문이었다.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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