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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칼럼]
오동진 영화평론가 대만 차이밍량의 영화 는 32년 묵은 1994년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새 영화이다. 2025년에 대만영화시청각센터(TFAI)에 의해 4K로 복원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4K 본으로 새 단장을 한 채 지난 12일 재개봉됐기 때문도 아니다. 더더욱 이제 차이밍량을 아는 젊은층 관객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영화 가 고전의 더미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1990년대의 대만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가 기묘하게도 2020년대 지금의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지금의 혼란스러운 자본주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은 내면에서 온다. 는 현대인의 정신적 혼란을 내면화한 작품이다.   빈 집에 숨어든 세 젊은이들의 섹스·고립·단절 영화에는 오로지 세 인물만 나온다. 다른 인물들은 스쳐 지나가는, 의미 없는 캐릭터들이다. 세 인물은 메이린(양귀매)과 샤오강(이강생) 그리고 아룽(진소영)이다. 더 중요한 캐릭터가 있는데 그건 바로 빈집, 빈 아파트이다. 납골당 영업사원인 샤오강은 어느 날 아파트 손잡이에 키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집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몰래 들어가 하루를 지낸다. 하루뿐이 아니다. 열쇠를 챙겨 매일 그 집을 들락거리며 자신의 아지트로 삼는다. 이 집은 메이린이 관리하는 아파트이다. 메이린은 부동산소개업자이다. 그녀는 빈 집 여럿을 중개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눈이 맞은 남자 아룽을, 샤오강이 몰래 숨어 지내고 있는 (자기가 맡은) 빈 집으로 데려가 섹스를 나누고 돌아간다. 샤오강은 이를 훔쳐본다.   아룽은 ‘보따리’ 상인으로 거리에서 여성 의류나 액세서리를 판다. 메이린과 섹스를 나눈 아룽도 이 빈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샤오강과 아룽은 어느 밤 결국 빈 집에서 부딪힌다.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아룽은 그 와중에도 메이린에게 추근댄다. 아룽은 결국 메이린을 다시 만나 (남자가 물건을 파는 길거리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를 또 ‘그녀의 빈 집’(샤오강과 숨어 사는 집)으로 데려가 다시 한 번 격렬한 섹스를 나눈다. 샤오강은 침대 밑에서 둘의 섹스를 숨죽여 듣는다. 메이린이 정사 후, 집을 나가자 샤오강은 곯아떨어진 아룽의 옆에 누워 그에게 몰래 키스한다. 대만의 대표 록밴드 ‘오월천’은 이 영화 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노래를 만들었다. 청춘들의 육체적 갈증과 원초적인 사랑, 그리고 현대 사회의 만남에 대해 허무주의적 태도를 드러낸다. 차이밍량은 ‘애정만세’라는 제목을, 현대인들은 절대로 사랑을 나누지도, 심지어 인간관계를 올바로 맺지도 못한다는 반어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 영화는 94년 발표 당시 대만 뉴웨이브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소외된 인간 내면 파헤치려한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같은 해 8월에 열린 제5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 중반 즈음 유럽의 ‘아트’ 영화제들, 곧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들은 아시아에서 신조류의 작품을 발굴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세 영화제가 경쟁적으로 중국의 5세대 감독들(천카이거와 장이머우)을 ‘세계화’ 시킨 것이 이때다.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가 유럽을 풍미했던 것도 이 시기이다. 동시에 이들 세 영화제는 대만 뉴웨이브 감독 세 명에게도 주목했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그리고 차이밍량이다. 대만 뉴웨이브란, 이탈리아의 영화 사조로 말하자면 ‘네오리얼리즘’이다. 현실을 꾸미거나 판타지로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은 (1989)를 통해 대만 2.28 사건(대륙 외성인인 장개석 부대가 대만 본성인들을 학살한 1947년 2월 28일의 사건. 우리의 광주 학살에 비견된다)의 진실을, 에드워드 양은 (1991)을 통해 고도화되는 자본주의 도시 이면의 어두움을 그린다. 반면 차이밍량은 를 통해 그 모든 역사와 자본주의 발달의 과정에서 결국 소외된 인간 내면을 파헤치려 애썼다. 의 주인공 세 명은 고립과 단절, 소통의 절대적 부재에 시달리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일상은 극히 평범하지만 지루하고, 게다가 반복적이며 그럼에도 자신이 더 나아지거나, 혹은 더 갖게 되거나, 그럼으로써 사회 속에서 생존의 우월성을 획득할 것이라는 착시에 빠져 산다. 그러나 셋 모두 끝없이 고독하고, 그래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찰나적 섹스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80년대 운동권 필독서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가 엿본 인간 심리 는 1980년대 초반 국내 학생운동권의 필독서 같았던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장일조 저)와 부합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욕망과 충족은 운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며 그 욕망은 충족되는 듯하지만 충족된 욕망은 또 다른 욕망으로 발전하며 증식한다. 그렇게 욕망과 충족은 정지하지 않거나 정지될 수 없다. 두 가지는 이처럼 서로 변화하며, 혹은 서로를 변화시키며 운동한다. 그런데 이때 욕망은 개인의 의지나 자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생산양식, 문화체계 속에서 형성된다. 특히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낳도록 관리되는 객체이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문제를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으로 설명해 낸 이론이다. 의 주인공 메이린은 극 엔딩 부분, 집에서 나와 거리를 한참 걸어간다. 스피커에는 오직 그녀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만이 울린다. 그녀의 모습 저 너머에는 신축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바로 옆은 뭔가를 또 지으려는 양 토목공사를 위해 땅을 마구 파헤쳐 놓은 상태다. 그 앞으로 만들어 놓은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더러 달리고 있다. 흙더미들, 그 작업의 공간 옆을 죽 걸어간 후 메이린은 벤치에 앉는다.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메이린은 한참을 운다. 10분 가까이 이어지는 이 시퀀스야 말로 욕망과 충족이 끝간 데 없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순간적으로 깨닫는, 인식의 확장 같은 의미를 담아낸다. 메이린은 자신이 관리하는 부동산들이 잘 팔려 나가면 이후에는 그렇게 외롭지도 허전하지도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고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갑자기 알게 된다. 이 롱테이크 씬이야 말로 의 핵심적 키워드들이 잔뜩 담긴 장면이다.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아~” 속삭이는 듯한 무언극 32년이나 된 영화지만 사람들이 명화라 부르는 이유는, 물론 문학이나 음악, 미술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도 그 의미가 통용되는 현재성 때문이다. 에서 주인공들이 물질과 육체에 탐닉하면서도 끝없는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은 지금의 한국 사회 젊은이들이 앓고 있는 욕망의 병과 비견된다. 어쩌면 거의 일치해 보인다. ‘영끌’을 통해서라도 부동산을 선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심리, 몇 년 치 월급의 액수를 대출로라도 빌려 주식을 사지 않으면 삶이 후퇴한다는 경제 인식 등등은 차이밍량이 30여 년 전 경고했던 대만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욕망은 충족되는 척할 뿐이다. 결국 인간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욕망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고 누구에 의해서 착시를 일으키게 된 것인지, 그 시스템과 구조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의 주인공 세 명 모두 끝까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는 마치 무언극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대사가 많지 않다. 117분의 러닝타임에서 앞부분 1시간은 대사가 거의 없다. 첫 대사가 나오는 때는 영화가 시작되고 24분이 지난 지점이다. 그럼에도 빈 아파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죽이는 장면은 마치 히치콕 영화 같은 서스펜스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메이린은 아룽과 섹스를 하면서도 방 밖에, 혹은 침대 밑에 샤오강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서스펜스란 감독이 알고 관객도 아는데 영화 속 인물만 모를 때 생기는 팽팽한 느낌 같은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속으로 메이린에게 소리를 지른다. 침대 밑을 봐! 한편으로 ‘길게 찍기’와 ‘오래 찍기’를 통해 차이밍량은 끊임없이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것은 관객들도 자기의 내면에 들어가게 하는 촬영 기법이기도 하다. 는 그런 면에서 미러링 같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빈집을 겉도는 인물 세 명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그 동일성이야말로 를 오래된 신작이라고 명명한 이유이다.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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