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유병호 막으려면… [사람들] 민주주의는 선한 지도자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도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공직자가 있을 때 비로소 제도가 살아 움직인다.
유병호가 드디어 구속되었다.
그는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은 권력을 감시하는 헌법기관이 아니라 권력을 방어하는 기관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그 중심에 유병호가 있었다.
현재 그는 대통령실·관저 이전 감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혐의의 사실관계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나 국민이 기억하는 것은 범죄 혐의보다 그가 보여준 태도다.
감사원장 퇴임식에서 영혼 없는 것들 이라고 외친 뒤 휴대전화로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을 틀어놓은 행동, 후임 사무총장 취임식에 엿을 선물하며 이를 보도자료로까지 배포한 일은 공직자의 품격이나 조직문화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행을 넘어 자신의 세계관을 공개적으로 연출한 정치적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나는 다르다 , 나는 옳다 , 나는 저들과 다르다. 이러한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심리학은 이런 모습을 도덕적 확신 과 자기정당화 의 틀에서 설명한다. 자신은 조직보다 더 높은 정의를 수행한다고 믿는 순간, 절차는 장애물이 되고 반대 의견은 정의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바뀐다. 법보다 신념이 앞서고, 조직보다 사명이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개인을 위험하게 만들 뿐 아니라 조직까지 변질시킨다.
감사원 안에서 이른바 타이거파 로 불린 인맥과 조직문화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조직이 전문성과 독립성보다 충성심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하면, 비판은 배신이 되고 견제는 적대행위가 된다. 권력기관은 더 이상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권력을 닮아간다.
문제는 유병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지향형 인간은 언제나 존재했다. 정권이 바뀌면 그들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권력을 향해 이동한다. 충성의 대상만 바뀔 뿐, 충성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법보다 상부를 먼저 살피고, 원칙보다 권력의 의중을 읽으며, 국가와 정권을 혼동한다. 자신의 선택을 공익 이나 국익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대부분 자신과 권력의 이익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더 두려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신을 국가를 지키는 충직한 관료라고 믿는다. 그래서 반성보다 자기정당화가 앞서고, 책임보다 희생양이라는 인식이 강해진다.
민주주의는 선한 지도자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도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공직자가 있을 때 비로소 제도가 살아 움직인다. 반대로 충성을 능력으로 착각하는 조직에서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또 다른 유병호가 등장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유병호 한 사람의 시대가 끝나고 있는지는 재판과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끝내야 할 것은 한 개인만의 일탈이 아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자리에서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관료주의, 법보다 충성을 먼저 배우는 조직문화, 그리고 국가와 정권을 동일시하는 권력지향적 사고방식이다.
유병호가 단죄된다고 해서 유병호 같은 인간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인간형은 지금도 골목 어딘가에서 다음 권력자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