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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미군정 구호사업은 정말 한국을 위한 것이었을까

미군정 구호사업은 정말 한국을 위한 것이었을까
[뉴스]
아이들이 굶고 있었다. 그런데 창고에는 먹을 것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입혀야 할 옷이 들어왔고, 병든 아이에게 써야 할 약품도 들어왔다. 미국에서 건너온 구호물자와 종교단체가 보낸 물품, 각종 식량과 의류가 시설과 구호기관으로 흘러들어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구호물자는 과연 아이들에게 전달됐을까.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서는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만큼이나 물자의 유통을 둘러싼 부정과 암시장이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미군정 자료에도 배급물자와 비축물자가 암시장으로 흘러가는 현상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1945년 말 미군정이 창고에 쌓여 있던 양말 바지 담요 고무장화 등을 방출하자 서울의 흰 양말 가격이 60원에서 6원으로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물자 부족과 가격통제의 틈을 이용한 밀수업자와 암시장 상인들의 활동은 계속됐다. 그 틈바구니에 고아원도 있었다. 고아원은 구호물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동시에 그 물자가 사라질 수도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고아원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는 고아원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달리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물러났다. 그러나 아이들의 삶은 갑자기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은 새로운 혼란을 가져왔다. 일본의 식민지 경제망이 무너졌다. 남북의 경제적 연결도 끊어졌다. 해외 귀환 동포와 월남민이 몰려왔다. 식량과 의류와 주택과 의료 문제가 동시에 터졌다. 미군정이 1945년 9월부터 시작한 GARIOA, 즉 점령지역 행정구호 원조도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은행 집계 기준으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국에 들어온 GARIOA 원조는 약 4억 1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원조의 중심은 식량 의류 의약품 연료 등 소비재로, 엄청난 규모였다. GARIOA는 고아원만을 위한 원조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점령지역 긴급구호였다. 고아는 그 거대한 구호체계 안에 들어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미군정은 왜 고아원을 지원했을까. 답은 하나가 아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동시에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한 미군정 사령부의 모습을 인공지능으로 재현. 해방 직후 미군정의 사회정책은 식량 의료 등 긴급구호에 집중됐다. 당시 구호대상자 숫자는 엄청났다. 1948년 『후생』에 따르면 귀환 동포들, 이재민과 빈궁민은 약 420만 명에 달했다. 당시 인구를 약 2000만 명으로 보면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이 구호 대상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고아 문제는 단순한 아동 문제가 아니었다. 굶주린 아이가 거리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사회문제가 될 수 있으며, 구걸하는 아이가 늘어나는 순간, 그것은 치안 문제로 연결된다. 전염병이 번지는 순간, 그것은 심각한 보건의료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고아를 시설에서 먹이고 재우는 것은 아이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사회 전체의 불안을 줄이는 일이기도 했다. 이것이 미군정 구호정책의 진짜 이유였다. 실제로 그 전부터 미국의 식민지였던 하와이,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의 나라에서 크고 작은 반미운동과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수탈한 것처럼 미국도 그들이 지배하던 식민지에서 자신들의 대공황 극복과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수탈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미군정이 당시 우리나라를 원조한 이유는 반미시위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호물자는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고아원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결정적인 장면이 나온다. 구호물자의 행방이다. 1947년 3월 미군정은 미국에서 들여온 사탕 773만여 파운드 가운데 100만 파운드를 문교부와 보건후생부를 통해 학교와 고아원에 무상 배포했다. 고아원으로 실제 구호물자가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물자가 들어왔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것을 먹었다는 뜻은 아니다. 중간에 유통과 배분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창고가 있고, 관리자가 있고, 장부가 있고, 배급표가 있고, 운송과정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부패는 바로 그 틈에서 발생했다. 미군정기의 한국 사회에서 암시장과 물자 유출은 실제로 심각한 문제였다. 미군정 자료는 밀수업자와 암시장 상인들의 활동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으며, 생필품 통제정책 자체가 물자의 암시장 유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고아원은 안전했을까. 구호물자가 사회사업기관을 거쳐 시장으로 흘러가는 부정은 훗날 실제로 공식 문제로 떠올랐다. 횡령이 키워드였던 시대 해방 공간에서는 정부 자금과 물자의 횡령 사건이 사회적 골칫거리였다. 미군정과 유니세프(UNICEF), 종교단체 등에서 고아원과 구호시설에 막대한 양의 분유, 의류, 의약품, 식량을 지원했다. 그러나 암시장 방출 비리로 일부 부패한 고아원 원장들과 중간관리자들은 수용된 아동들에게 돌아가야 할 구호물자를 대규모로 빼돌려 암시장에 밀매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정작 시설의 고아들은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방치되었다.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으로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될 무렵인 1942년 조선의 고아원 숫자는 133개에 이른다. 일제의 패망으로 일본인이 운영했던 고아원의 폐쇄와 남북분단으로 남한만의 고아원 숫자는 미군정 초기인 1945년 9월에는 38개로 급감한 것으로 조사된다. 그런 고아원의 숫자가 미군정 말기인 1948년에는 101개로 다시 급증한다. 고아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고아원을 설립했지만 실제로는 미군정의 방치 속에 운영자들의 부를 이루는 수단이 되었다. 당시 미군정은 구호물자의 시장 범람을 조사하면서 사회사업기관의 부정 혐의, 기증약품 도난, 허위 간판을 내걸고 사회부 관계 직원과 결탁해 구호물자를 빼돌린 뒤 시장에 방매하는 행위 등을 문제 삼기도 했다. 고아원에 물자가 얼마나 들어갔는가가 아니라, 들어간 물자가 아이에게 얼마나 전달됐는가. 시설의 장부에는 숫자가 있지만, 아이가 없다. 숫자만으로는 아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없다. 쌀이 100가마 들어왔다 가정한다면, 그 가운데 몇 가마가 아이들의 식량이 되었을까. 옷이 100벌 들어왔다면 몇 벌이 아이들의 몸에 입혀졌을까. 약이 100상자 들어왔다면 몇 상자가 아픈 아이에게 사용됐을까. 그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없었을까. 지원 규모의 역사가 아니라 전달률의 역사를 써야 한다. 국가가 얼마를 지원했는가. 외국이 얼마를 보냈는가. 종교단체가 얼마를 후원했는가. 그 다음 질문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아이에게 실제로 얼마가 돌아갔는가. 고아는 복지의 대상이면서 사회문제였다. 1947년 보건후생 예산에는 ‘보건시설 수용 구호비 보조’로 3285만 원이 책정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고아원만을 위한 예산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고아 수로 나누어 ‘고아 일인당 얼마’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숫자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해방 직후 국가는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적 구호체계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그 돈만으로 거대한 빈곤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미군정기의 사회정책이 장기적인 복지체계보다 응급구호에 머물렀던 것도 이유였다. 당시 구호 대상자가 재원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고아원은 거대한 빈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다. 섬 안으로 아이를 들여보내면 아이는 당장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섬 밖의 빈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아원 운영자들이 미군정의 구호물품을 암시장에서 팔고 있는 모습을 인공지능으로 재현. 우리는 고아원의 역사를 너무 아름답게 기억해왔다 고아원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를 품은 원장. 후원금을 보내온 독지가. 성탄절에 찾아온 사람들. 새 옷을 입고 웃는 아이들. 사진 속에서 줄을 맞춰 서 있는 아이들. 그러나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것도 있다. 배고픔과 매질, 강제노동과 착취, 그리고 사라진 후원물자.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않은 구호품. 시설을 떠난 뒤 아무도 찾지 않은 아이들의 삶. 고아원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이야기와 불편한 이야기를 함께 기록하자는 것이다. 아이를 살린 사람도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한 사람도 기록해야 한다. 밥을 준 사람도 기록해야 한다. 아이의 밥을 빼앗은 사람도 기록해야 한다. 후원한 사람도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후원물자의 행방도 함께 추적해야 한다. 고아원의 역사는 ‘시설’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록한 것은 대부분 시설의 역사였다. 몇 년도에 설립됐으며, 원장은 누구였는지, 몇 명을 수용했으며, 어떤 단체가 운영했는지, 정부는 얼마를 지원했는지. 그러나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은 왜 그곳에 갔는가. 누가 아이를 시설로 보냈는가. 아이의 부모는 왜 사라졌는가. 전쟁 때문이었는가. 빈곤 때문이었는가. 질병 때문이었는가. 국가의 행정조치 때문이었는가. 그리고, 시설에 들어간 뒤 아이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 질문까지 가야 비로소 고아원의 역사가 된다. 이제는 고아 한 명의 역사를 찾아야 한다. 고아원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고아 한 명의 기록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는지. 어머니는 살아 있었는지. 1946년 어느 시설에 들어갔는지. 그해 무엇을 먹었는지. 시설에 들어온 미국산 구호물자가 아이에게 돌아갔는지. 몇 살에 시설을 나왔는지. 그리고 시설 밖으로 나온 뒤 누가 그 아이를 기억했는지. 이 한 사람의 생애를 복원하는 것이 곧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다. 숫자 96개보다 한 아이의 목소리가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3285만 원이라는 예산보다 아이가 먹은 밥 한 끼가 더 정확한 증거가 될 수 있다. 4억 1천만 달러라는 원조 총액보다 그 원조로 만들어진 한 벌의 옷이 실제로 누구에게 갔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고아원이라는 단어 앞에서 쉽게 감동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쉽게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곳에는 아이를 살린 사람들이 있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구호물자를 아이에게 전달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물자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더 꼼꼼하게 써야 한다. 증언은 증언대로 기록하고, 장부는 장부대로 확인하고, 정부 문서는 정부 문서대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맞지 않는 기록이 있다면 그 불일치 자체를 남겨야 한다. 고아원의 역사를 선행의 역사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난한 아이들이 국가와 전쟁과 사회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하는 역사다. 고아원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고아원을 ‘아이들을 보호한 시설’이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기억해왔다. 하지만 고아원은 그보다 복잡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쟁과 빈곤으로 만들어진 사회문제를 수용한다면서,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과 병력, 그리고 여성의 전쟁참여를 부추기는 공간이었고, 해방 직후에는 기아와 질병, 가족해체 속에서 아이들의 생존을 돕는 긴급구호의 공간이라면서, 부정부패의 공간이기도 했다. 국가가 사회문제를 관리한다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생겨난 공간이기도 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는 과연 아이에게 도착했는가. 창고에는 식량이 있었는데 아이는 굶었다면, 창고에는 옷이 있었는데 아이는 헐벗었다면, 약품이 들어왔는데 아이가 치료받지 못했다면, 그때 우리가 기록해야 할 역사는 ‘구호의 역사’가 아니다. 구호가 사라진 역사다. 정작 그 돈과 물자가 누구의 손을 거쳐 어디로 갔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써온 고아원의 역사는 어쩌면 고아 없는 고아원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곳에 있었지만, 역사에는 없었다. 이제 그 아이들을 역사 속으로 다시 데려와야 한다.이득신 작가 dsshine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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