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제청 ‘패싱’, 대통령 임명권 무력화 노렸을까 [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취재진은 대법관 제청 과정의 패싱 논란에 대해 사흘째 코멘트를 요청했지만 조 대법원장은 의례적인 인사말 말고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2026.8.21 연합뉴스
돌아볼수록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과 벌인 입씨름은 간단치 않은 무게와 위험성을 지닌다. 노경필 처장은 지난 5월 임기가 종료된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으로 추천된 4명의 대법관 후보들에게 지난 주 초에 추천 절차를 되돌리는 데 찬동하는지 묻는 초유의 월권 행위를 했음을 순순히 인정해 여권 의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노 처장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은 어느 것이 더 상위 개념이냐 고 묻는 박균택 민주당 의원에게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고 당당히 답했다. 박 의원이 놀라 그러면은 결국은 제청권자가 임명을 하는 것이란 뜻이냐 고 묻자 노 처장은 그렇지 않다 고 답하긴 했다.
다시 박 의원이 그러면 임명권자가 왜 필요한 거냐 고 묻자 임명권자는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는 답이 돌아왔다. 제청권은 제청권이고, 임명권은 임명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쪽은 청와대가 만남을 거부했고 서면 제청도 협의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김용민 의원은 서면 제청하자는 아이디어는 대법원장이 낸 건가? 아니면 처장님이 낸 건가 라고 물었고, 이에 노 처장은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만남의 기회가 없었다 고 엉뚱한 답을 했다.
김용민 의원이 다시 그거는 요구하면 되는 거고 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요구했는데 안 됐다 는 답이 돌아왔다. 김 의원이 그런데 서면 제청하자는 그 아이디어는 누가 냈냐고요 라고 쏘아붙이자 노 처장은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하는 과정 속에서 나온 얘기 라고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과정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8.19 연합뉴스
보다 못한 서영교 법사위원장이 나서 서면으로 보내는 걸 누가 제안한 거냐고요 라고 소리를 지르자 이번에는 원래 서면으로 보낸다 는 답이 돌아왔고, 서 위원장이 협의해서, 합의해서 제청하는 거 아니냐 고 캐묻자 노 처장은 두 분이 만나서 합의한 이후에 서면으로 보낸다. 그런데 두 분이 만나 합의할 기회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남은 방법밖에 없었다 고 답했다.
서 위원장이 뭐를 합의해서 했다는 것이냐 고 다시 캐묻자 노 처장은 서면 제청하는 걸 합의했다 고 되받았다. 거짓말하지 마시고 에 거짓말하지 않는다 는 답이 이어졌다.
이 장면이 간단히 보이지 않는다.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의 심중을 가장 잘 헤아려 처신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경필 처장의 이런 답변과 그 태도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그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제청권과 임명권을 같은 것으로 보고, 일치하지 않을 때는 각자 권한대로 행사하면 그만이며, 국회의 동의 절차는 요식 행위나 절차로 여긴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그렇게 비칠 수 있고,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도 그마저 감수하겠다는 결연함마저 엿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에게 제청 권한이 있지만, 청와대와 사전 협의를 거쳐 대통령과 면담 형식을 통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면 국회가 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게 일종의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장치로 수십년 작동해 왔다.
그런데 직접 당사자도 아닌 법원행정처장이 제청권과 임명권을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하고 나섰고, 사흘째 출근길에서 취재진의 의견 표명 요청에 답하지 않은 조희대 대법원장도 노 처장의 발언이 자신의 뜻과 달리 국회 법사위에 전달됐다고 해명하거나 하지 않았다. 적어도 21일 아침까지 이런 상황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청권과 임명권으로 나눈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면서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함께 반영하기 위한 장치다. 그리고 이번 논란의 핵심은 대통령실과의 사전 협의 여부였는데 헌법이나 법원조직법 어디에도 대법원장이 대통령실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조 대법원장은 이 틈을 정확히 비집고 들어 적어도 자신의 제청권을 임명권 아래 두려는 시도를 저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임명직에 불과한 대법원장이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의 권한을 짓누르는 결과가 발생한다. 적어도 그런 뜻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오해를 살 수 있을텐데, 적어도 이 시점에 그런 오해가 빚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인 것으로 보인다. 사흘째 침묵하는 그의 굳게 다문 입에서 그런 의지가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6.6.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면 조 대법원장의 모험수에 과연 두 대법관의 후임을 임명하는 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결의만 담겨 있는 것일까? 두 가지 점에서 우려된다. 첫째는 이번 충돌을 통해 대법관 대폭 증원 시 신규 대법관 임명 절차를 더욱 분명하게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2028년부터 시작되는 대법관 증원과 맞물려, 향후 대법관 인선의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이번 사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한 부장판사는 매체에 대법관이 증원되더라도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에게도 계속 적용된다 며 이런 식의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대통령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대법원을 구성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고 말했다.
마지막 표현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것 아닌가 는 대법원장이 압박하는 것 아닌가 로 조사 하나만 바꿔도 성립된다.
2028년부터 1년 간격으로 4명씩, 3차례 모두 12명의 대법관이 늘어난다. 이들 대법관은 모두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기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대통령은 2030년 3월까지 임기가 끝나는 기존 대법관 9명의 후임까지 포함해 재임 중 모두 22명의 대법관을 뽑게 된다.
내년 6월 임기를 마치는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기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뜻을 맞춰 대법원을 구성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강구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해서 이번 충돌은 향후 몇 년 동안 사법부와 행정권력의 충돌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다. 물론 그 수단은 대통령의 임명권 무력화 내지 유명무실화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두 번째로 이번 대법관 제청 패싱 논란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내란 재판이 무한정 지연될 위험성이다. 조 대법원장도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 대통령과의 정면 충돌에 나서더라도 잃을 것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왕에 한덕수와 이상민 상고심, 김건희 3대 의혹 상고심이 대법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상태다. 애초에 갑작스럽게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저의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이진관 부장판사 류의 법원 내 진보적인 판결, 예를 들어 위로부터의 반란 같은 법리를 뒤집으려 한다는 해석, 역사적인 무게를 지닌 판결을 조 대법원장이 낭독함으로써 탄핵 재판 이후 헌법재판소에 뒤진 대법원의 위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한다는 일차원적 해석,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김건희씨 등의 재판을 지연시켜 보석 석방의 발판을 만들려 한다는 해석 등 여러 갈래였다.
사실 대법원장이 어떤 의도를 갖고 서면 제청한 것인지 너무 깊이 파고드는 일 자체가 사법부 불신이 적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진영에 따라 대법관 제청권과 임명권의 무게와 비교 우위를 재량하고 입맛대로 분석하는 일이 벌어지는 자체도 우리 헌정사에 불행한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사법부 수장과 행정부 및 국가 수반의 불신이 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그림은 조 대법원장이 서면 제청한 것을 반려해 달라고 청와대에 전달하고 다시 협의 절차에 나서는 한편, 대법관 증원 시 협의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도록 합의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내년 6월 퇴임하는 조 대법관에게도 명예로운 일이 될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왼쪽)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2026.8.18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청와대, 손봉기 대법관 재제청 요구하는 방안 검토
한편 전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청와대 일각에서 임명 절차를 밟지 않고 재제청 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손 후보자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두 명의 후보자에 대해 여러 의견이 갈리고 있다 면서도 둘 중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다른 후보자로 제청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이 경우 사실상 조희대 대법원장의 제청 요구를 반려하는 모양새가 되는 만큼 이번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한층 격해질 수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청와대 역시 손 후보자 임명을 반려할 것인가 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공지 메시지를 통해 (손 후보자에 대한 제청은)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사태,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 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만 다른 관례들과 법률을 충분히 먼저 검토해야 하는 사안으로 본다 며 반려 방침에 대한 확답은 내놓지 않았다.
만일 청와대가 최종적으로 손 후보자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이 대통령은 조만간 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만 국회로 보낼 것으로 보인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