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속에 남아 있는 우리말, ‘바심하다 [뉴스]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가을이 되면 들판에서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입니다. 벼를 베고, 콩을 털고, 보리를 훑어 낟알을 얻습니다. 이렇게 가을걷이를 하는 여러 일 가운데 곡식의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 내는 일을 ‘바심하다’라고 합니다.
[오늘의 토박이말]바심하다
요즘은 흔히 ‘타작하다’라고 하지만 ‘바심하다’라는 우리 토박이말도 있습니다. 낯설게 느끼는 분이 많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말이 들어 있는 ‘조바심’은 자주 쓰고 있습니다.
타작하다 와 같은 뜻을 가진 ‘바심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바심하다’를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
1.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다.
2. 채 익기 전의 벼나 보리를 미리 베어 떨거나 훑다.
첫째 뜻의 같은말로 ‘타작하다’를 들고 있습니다. 둘째 뜻과 같은말로는 ‘풋바심하다’가 있습니다. 두 말은 비슷해 보여도 쓰임을 가려야 합니다.
‘바심하다’는 곡식의 이삭을 떨어 낟알을 거두는 일을 두루 가리키지만, ‘풋바심하다’는 채 익기 전의 벼나 보리를 미리 베어 떨거나 훑는 일을 가리킵니다. 풋보리를 거두는 일처럼 아직 다 익지 않은 곡식을 거두는 상황이라면 ‘풋바심하다’라고 하는 것이 알맞습니다.
보릿고개를 견디게 한 풋바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풋바심하다’의 쓰임을 보여 주는 보기글도 실려 있습니다.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는 농민들은 그래도 심어 놓은 보리를 풋바심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참고 살았지만….(문순태, 『타오르는 강』)
이 문장을 읽으면 ‘풋바심’이 단순한 농사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리가 충분히 익기를 기다릴 형편이 못 되어,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라도 거두어 끼니를 이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에는 봄철 먹거리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 집이 많았습니다. 심어 놓은 보리를 풋바심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문장에는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이 배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전처럼 풋보리를 거두어 목숨을 이어야 하는 일이 드뭅니다. 장난으로라도 풋바심할 일이 없는 세상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그 말에 담긴 옛사람들의 삶까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조바심’ 속에 남아 있는 바심
‘바심’이라는 말이 더욱 아쉬운 까닭은 우리가 지금도 흔히 쓰는 ‘조바심’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조바심 을 아래와 같이 풀이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조바심’은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이거나 그렇게 졸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본디 조를 거두어 이삭을 털어 낟알을 얻는 일과 관련된 말입니다. 조를 털어 낟알을 거두는 일이 ‘조바심’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는 마음을 졸이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조를 털 때는 낟알이 잘 떨어지도록 하면서도 작은 알갱이가 사방으로 튀지 않게 살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농사일의 모습이 마음을 졸이는 오늘날의 뜻과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우리는 ‘조바심이 난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 속에 곡식을 거두던 옛사람들의 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익숙한 말의 말밑을 살펴보면 잊혀 가는 생활과 낱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낯선 말도 알아두면 쓸모가 있습니다
‘바심하다’와 ‘풋바심하다’는 요즘 삶에서 자주 듣기 어려운 말입니다. 농사짓는 모습이 달라지고 먹을거리를 얻는 방식도 바뀌면서 말이 쓰일 자리 역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쓰지 않는 말이라고 여기며 지나쳐도 괜찮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에는 예전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먹거리가 부족할 때 어떻게 버텼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조바심’처럼 오늘날에도 쓰이는 말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농사일을 직접 하거나 ‘바심하다’라는 말을 날마다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타작하다’와 같은 뜻을 가진 말이 있다는 것, 익지 않은 곡식을 미리 거두는 일은 ‘풋바심하다’라고 한다는 것쯤은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말을 안다는 것은 낱말 하나를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말이 살아온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함께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익숙한 말에서 잊힌 말을 만나다
‘조바심’은 지금도 우리 입에 익숙한 말입니다. 그 말밑에 있는 ‘바심’을 함께 알아두면, 오래된 낱말 하나가 새롭게 보입니다.
‘바심하다’와 ‘풋바심하다’의 쓰임을 가려 알고, 기회가 있을 때 이 말들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말은 쓰는 사람이 줄면 낯설어지지만, 누군가 뜻을 알고 다시 이야기하면 다음 사람에게 건너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바심’을 쓰면서 그 말밑에 있는 ‘바심’도 함께 기억한다면, 잊혀 가는 우리말을 이어 가는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요?
[마음 나누기]
여러분은 ‘바심하다’나 ‘풋바심하다’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한 줄 생각]
익숙한 ‘조바심’ 속에서 잊혀 가는 ‘바심’을 다시 만나 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바심하다
뜻: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다.
채 익기 전의 벼나 보리를 미리 베어 떨거나 훑다.
비슷한 말: 타작하다(첫째 뜻), 풋바심하다(둘째 뜻)
보기: 가을이 되자 농부들은 곡식을 바심하느라 바빴습니다.
오늘 한마디: ‘조바심’에 담긴 ‘바심’의 뜻도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토박이말 길잡이]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