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수출 막았더니 쌓이기만 …美 언론, 3만5000톤 정제 절벽 조명 [환경] 미국 정부가 핵심 광물 안보를 이유로 배터리 분쇄 분말인 블랙매스(Black Mass) 수출을 틀어막았지만, 정작 이를 소화할 국내 정제 설비가 태부족해 심각한 병목 현상에 직면했다는 현지 언론들의 진단과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자원 순환 전문 매체 리소스 리사이클링(Resource Recycling)은 14일(현지시각) 분석 보도를 통해, 미 상무부의 블랙매스 수출 통제 이후 배터리 재활용 산업이 직면한 최대 과제로 정제 인프라의 처리 격차를 지목했다.
미 상무부(DOC)는 지난달 회수 가능한 핵심광물 및 소재 에 관한 임시 최종규칙을 발표했다. 8월 27일부터 미국 내 블랙매스와 텅스텐 폐스크랩 판매자는 연방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해외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규칙은 현재 기준 1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지난 7월 미 대통령이 상무장관에게 핵심 광물 수출 통제 권한을 부여한 행정 조치의 후속 조치다.
미국 정부가 핵심 광물 안보를 이유로 배터리 분쇄 분말인 블랙매스(Black Mass) 수출을 틀어막았지만, 정작 이를 소화할 국내 정제 설비가 태부족해 심각한 병목 현상에 직면했다는 현지 언론들의 진단과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자금난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 어센드 엘리먼츠/ 어센드 엘리먼츠 홈페이지
문제는 수출을 막는다고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이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 에너지 분석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배출하는 블랙매스는 연간 6만톤에 달하지만, 미국 내 정제 시설이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은 2만5000톤에 불과하다. 매년 3만5000톤가량의 배터리 분말이 갈 곳을 잃고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에너지 광물 전문 분석기관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 역시 현지 정제업계가 이 같은 처리 격차를 메우는 데 최대 10년이 걸릴 수 있다 고 분석했다. 프레더릭 블룸필드(Frederick Bloomfield)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 수석 분석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출 금지로 원료가 미국 내로 묶이면서 아시아 정제소들의 수요가 줄어 글로벌 블랙매스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면서도 정책이 실제 정제 설비 증설로 이어질지, 규제 우회 경로만 늘릴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짚었다.
잇단 스타트업 파산 충격… 민간 독자 기술로 정면 돌파
현지 매체들은 정제 인프라 지연의 배경으로 최근 1년 사이 북미 주요 재활용 스타트업들이 겪은 연쇄 자금난을 꼽았다. 캐나다 배터리 재활용 기업 리사이클(Li-Cycle, NYSE: LICY)과 미국의 어센드 엘리먼츠(Ascend Elements) 등 시장을 이끌던 선도 업체들이 대규모 정제 공장 건설 과정에서 비용 급증과 광물 가격 폭락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처리 용량 확충 계획에 급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민간 기업들의 공백 메우기 행보도 외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이드 리사이클링 솔루션스(Gloyd Recycling Solutions)는 완제품 상태의 배터리 내장 기기를 현장에서 직접 분쇄하는 BIDS 시스템 을 가동해 위험물 운송 비용을 대폭 줄였으며, 사이클릭 머티리얼스(Cyclic Materials)는 애리조나주에 희토류 광물 재활용 공장을 가동했다.
파산한 어센드 엘리먼츠의 자산을 인수한 신생 법인 R3 리튬(R3 Lithium)은 조지아주 공장에서 블랙매스를 원료로 배터리급 탄산리튬을 상업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에릭 그라츠(Eric Gratz) R3 리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운용 중인 배터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고농도 리튬 광산”이라며 상업적 추출 역량을 이미 실증했다”고 전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배터리 광물 정제 기업 일렉트라 배터리 미네랄스(NASDAQ: ELBM)의 트렌트 멜(Trent Mell) 최고경영자도 미국은 배터리 파쇄라는 전반부 인프라만 빠르게 세우고 정제라는 후반부를 놓쳤다”며 원료를 자국에 묶어두는 1단계가 시작된 만큼 정제 시설 구축을 위한 민간 자본 유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폐기물 아닌 국가 안보 자산”… 의회·행정부 추가 입법 압박
미국 언론들은 단순한 수출 규제를 넘어 실질적인 완결형 공급망을 갖추기 위한 공공 지원의 필요성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글로벌 전자기기협회(GEA)의 켈리 스캔론(Kelly Scanlon) 지속가능성 전략 수석 디렉터 등 집행부는 성명을 내고 연방 차원의 인허가 단축과 연구개발(R&D) 지원, 공공 조달 시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 법안 도입을 촉구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소재 전자 스크랩 재활용 기업 모던 마이닝(Modern Mining)의 지트 바시(Jeet Basi) CEO 역시 과거 폐기물로 분류되던 물질이 이제 전략적 국가 광물 자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원료 확보에 이어 정제 생태계를 완성하지 못하면 가치 창출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미 상무부의 수출 통제라는 1차 빗장이 걸린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정제 플랜트 증설을 뒷받침할 연방 보조금 집행과 의회의 후속 법안 처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미국산 블랙매스가 자국 내 창고에 쌓여가는 또 다른 병목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