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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동화 속에 계급의식 숨겨 넣은 이디스 네스빗

동화 속에 계급의식 숨겨 넣은 이디스 네스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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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가 알고 보니 사회주의자였다는 반전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 1858~1924)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철도 위의 아이들』 같은 동화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사람, 알고 보면 19세기 말 영국 사회주의 운동의 창립 멤버다. 동화 작가와 혁명가라는 조합이 뭔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원래 역사는 이런 부조화를 즐긴다. 네스빗은 1858년 런던 케닝턴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을 따라 프랑스와 독일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80년, 은행원이던 후버트 블랜드(Hubert Bland, 1855~1914)와 결혼했는데 이미 임신 7개월이었다.   네스빗, 1890년경(위키피디아) 거북이가 세상을 바꾼다는 발상 1884년 네스빗과 블랜드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페이비언 협회를 창립한다. 로마의 장군 파비우스가 강한 적을 상대로 정면충돌 대신 지구전과 소모전으로 승리한 전략에서 이름을 따왔다. 혁명이 아니라 개혁으로, 폭력이 아니라 설득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 애니 베전트(Annie Besant, 1847~1933), 그리고 후일 런던정경대를 세우는 시드니 웹(Sidney Webb, 1859~1947)과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 1858~1943) 부부도 여기 모였다. 급진적 구호 대신 정책 문서를 쓰고, 바리케이드 대신 강연회를 열었다. 오늘날 영국노동당의 뿌리가 여기서 나왔으니, 이 느릿느릿한 거북이 협회가 결국 승리한 셈이다.   1897년경의 애니 베전트(위키피디아) 이상과 살림살이는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네스빗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이 개혁적 이상과는 영 딴판인 장면이 펼쳐진다. 남편 블랜드는 결혼 후에도 한 주의 절반을 홀어머니 집에서 보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에 얹혀살던 매기 도런이라는 여성과 이미 관계를 맺어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네스빗은 그해 여름 남편이 천연두를 앓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신혼 초부터 남편에게는 이미 두 집 살림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86년 무렵, 이번엔 네스빗의 친구였던 앨리스 호우트슨이 남편 블랜드의 아이를 임신했다. 보통 이쯤 되면 절교를 선언할 만한데, 실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호우트슨은 오히려 네스빗의 집에 가정부 겸 페이비언 협회 사무직원으로 들어와 살게 됐고, 1899년에는 블랜드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더 낳았다. 네스빗은 두 아이 모두를 자기 자식으로 거두어 키웠다. 남편의 애인이 안방 옆방에 살림을 차리고, 그 자식들을 본처가 기른다는 이 구도는 소설로 써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사회주의라는 게 원래 생산과 분배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지, 남편의 애정을 나눠 가지라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더 얄궂은 대목은 그렇게 진보적인 여성 으로 불리던 네스빗이 정작 여성참정권 운동에는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정치적 발언권 확대에는 소극적이었던 셈이다. 원고료로 가족 생계를 홀로 책임지면서도 정작 자신의 한 표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은 이렇게 여러 겹으로 모순되게 산다.   네스빗의 남편, 후버트 블랜드(위키피디아) 동화 속에 숨긴 계급이야기 그럼에도 네스빗이 남긴 유산은 가볍지 않다. 그녀는 아동문학에 처음으로 현실의 무게를 들여놓은 작가로 꼽힌다. 이전까지 아이들 이야기는 요정과 마법나라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 네스빗은 돈 걱정하는 가족, 아버지의 몰락, 이사와 궁핍을 그대로 다뤘다. 『보물을 찾는 아이들』 연작이나 『철도 위의 아이들』에는 부의 몰락과 이웃 간 연대, 권력을 가진 자의 부당함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스며있다. 아이들에게 마법 양탄자를 태워주면서 계급의식을 슬쩍 심어준 셈이니, 이건 거의 은밀한 사상교육이라 할 만하다.   네스빗의 저서, 철도 위의 아이들 , 첫 삽화판 표지(위키피디아) 한국이 곱씹어볼 대목 지금 한국 진보진영이 곱씹을 만한 지점이 여기 있다. 첫째는 거북이 전략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사회는 다시 한 번 급진과 점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단호한 심판이 필요한 순간과, 제도를 촘촘히 고쳐가는 지구전이 필요한 순간을 구분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페이비언들은 뜨거운 혁명의 열기가 없이도 백 년에 걸쳐 서서히 영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둘째는 말과 삶의 간극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일수록 사생활에서도 일관성을 요구받는다. 겉으로 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자기 집안의 위계와 특권은 눈감아주는 인물들을 우리는 이미 여럿 봐왔다. 네스빗과 블랜드 부부의 이야기는 이상을 내세우는 사람도 자기 삶에서는 얼마든지 모순덩어리일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니 진영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셋째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다. 네스빗은 아이들에게 마법이야기를 들려주는 척하며 불평등의 감각을 심어주었다. 한국의 교육과 문화 콘텐츠도 다음 세대에게 역사의식과 사회정의감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은근하게, 그러나 꾸준히 심어줄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거창한 구호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재미있는 이야기다.   영국 켄트 세인트 메리 인 더 마시(St Mary in the Marsh) 교회 묘지에 있는 네스빗의 무덤에는 나무 표지판이 있다. 교회 내부에도 그녀를 기리는 기념 명판이 있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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