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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식탁에서 만난 경제학, 사람을 생각하다

식탁에서 만난 경제학, 사람을 생각하다
[사람들]
장하준 교수 식탁에서 시작하는 경제학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경제학을 숫자와 그래프의 세계에서 꺼내 우리의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책이다. 경제학자에게 경제는 복잡한 이론과 통계의 영역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경제는 매일 먹고 일하고 사고파는 생활 그 자체다. 장하준은 이 사실을 마늘, 멸치, 새우, 국수, 당근, 소고기, 바나나, 고추, 호밀, 닭고기, 라임, 향신료, 딸기, 초콜릿 같은 음식과 식재료를 통해 풀어낸다.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장과 국가, 노동과 기술, 무역과 복지, 불평등과 환경이라는 경제학의 중요한 문제와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경제학이 결코 전문가들만의 학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금리와 물가, 세금과 임금, 주택과 교육, 의료와 연금은 모두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경제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누군가는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벼랑으로 밀려날 수 있다. 시민이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장하준이 어려운 경제학을 음식이라는 친숙한 소재로 설명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늘 이야기는 경제적 사고에도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늘이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낮게 평가되었다. 무엇을 맛있다고 느끼는지조차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에 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경제질서나 정책을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이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하준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시장을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질서로 보는 시각이다. 시장에는 가격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사고팔 수 있는지, 노동자는 어떤 권리를 갖는지, 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독점은 허용되는지, 환경을 훼손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 정하는 법과 제도가 함께 존재한다. 우리가 시장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 위에서 작동한다. 시장과 국가, 성장의 이면 따라서 시장과 정부를 서로 적대적인 것으로만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실제 경제에서는 시장과 정부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정부는 화폐와 금융제도를 만들고,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며, 교육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기업 활동의 규칙을 정한다. 시장 역시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원과 정보를 배분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개입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제도를 만들고 누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가이다. 이런 관점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다. 그 과정에는 기업가의 도전과 노동자의 희생뿐 아니라 교육 확대, 국가의 산업정책, 금융정책, 사회간접자본 건설, 국제경제 환경 등이 함께 작용했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국민성이나 근면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의 복잡성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장하준은 자유무역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서로 다른 산업 수준과 기술력을 가진 나라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한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공정한 경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기술과 자본을 축적한 나라와 이제 산업화를 시작한 나라가 같은 규칙 아래 경쟁한다면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선진국이 산업을 보호하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사실도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보호정책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니다. 보호가 장기화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고, 국가의 잘못된 산업정책이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것은 장하준의 주장 전체를 하나의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원리를 다시 살펴보고, 각각의 정책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따져보는 데 의미가 있다.   기업에 대한 시선도 달라진다. 성공한 기업을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기업가의 능력과 결단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기업은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교육받은 노동자가 있어야 하고, 도로와 통신망 같은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며, 금융시장과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축적된 지식도 기업의 기술혁신에 기여한다. 기업의 성공에는 사회 전체가 축적해 온 자원이 함께 들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특허와 기술에 관한 이야기도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 일정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혁신을 촉진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독점권이 지나치게 강하면 기술의 확산과 후속 혁신을 막을 가능성도 있다. 지식은 한 사람의 머리에서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의 발견과 수많은 사람의 연구가 쌓여 만들어진다. 창의성을 보호하면서도 사회 전체가 지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과 복지, 기술과 환경 이 책에서 특히 의미 있게 읽은 부분은 돌봄 노동에 관한 문제다.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며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일은 사회가 유지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제활동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쉽다. 국내총생산 같은 경제지표가 증가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가 성장했다면 누가 그 성과를 누리는지도 물어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이윤이 증가했는데 노동자의 임금과 삶의 안정은 제자리라면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돌봄과 가사노동처럼 통계에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활동까지 바라보아야 사회의 실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복지에 대한 생각도 새롭게 다가온다. 복지를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으로만 이해하면 사회적 안전망의 의미를 놓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질병을 경험할 수 있고, 실직할 수도 있으며, 나이를 먹는다. 교육과 의료, 보육과 실업보험, 연금제도는 특정 계층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위험을 함께 감당하기 위한 제도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위험을 공동체가 어느 정도 분담할 것인가는 경제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장하준은 기술의 발전과 일자리 문제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비롯한 자동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노동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는 중요한 문제다. 기술 발전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생산성 향상을 사회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사람이 여유와 문화생활을 누리는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고, 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기술의 미래는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환경 문제 역시 경제와 분리할 수 없다. 자연을 훼손하면서 생산을 확대하면 당장은 경제성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비용은 결국 사회가 부담하게 된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자원 고갈은 미래 세대의 삶과 직접 연결된다.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성장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바나나와 향신료의 역사에서는 세계화의 이면도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식품 하나에도 식민주의와 국제무역, 노동과 자본의 역사가 들어 있다. 세계시장은 상품과 자본을 국경 너머로 이동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와 기업 사이의 힘의 차이도 존재한다. 세계화가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지, 그 이익과 비용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경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의 핵심은 결국 사람의 삶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경제성장률과 주가지수, 수출액과 기업이익은 중요한 지표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회의 건강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있는가, 아픈 사람이 치료받을 수 있는가,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가, 노인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가, 노동자가 일한 만큼 존중받고 있는가, 자연환경이 미래 세대에게 남겨질 수 있는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경제는 숫자로 표현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 GDP가 1% 증가했다는 말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시간이 있고, 물가가 올랐다는 통계 뒤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부담이 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을 받은 가정의 삶이 흔들리고, 실업률이 상승하면 한 사람의 계획과 한 가족의 미래가 달라진다.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의 삶을 읽는 일이다. 그래서 『경제학 레시피』는 경제학 책이면서 동시에 시민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를 전문가에게 맡겨두지 말고 시민이 직접 질문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시장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성장의 열매는 어떻게 분배되는가.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가.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기업은 사회에 무엇을 돌려주어야 하는가. 기술의 발전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경제와 환경을 남길 것인가. 장하준은 이런 질문을 거창한 이론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의 식탁에서 출발한다. 마늘 한쪽에서 문화적 편견을 생각하고, 멸치와 국수에서 산업화를 바라보며, 소고기와 바나나에서 무역과 세계화를 만난다. 고추와 닭고기를 통해 노동과 평등을 생각하고, 호밀에서 복지를 살피며, 라임을 통해 환경과 기후를 고민한다. 딸기에서는 자동화와 일자리의 미래를 만나고 초콜릿에서는 경제발전의 조건을 돌아본다. 이 방식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음식은 누구에게나 친숙하지만 그 음식이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는 농부의 노동, 공장의 생산, 운송과 유통, 금융과 무역, 국가의 정책이 작용한다. 한 끼의 식사가 세계경제의 축소판인 셈이다. 책을 덮으며 경제학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경제란 돈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시장의 효율성도 중요하고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성장도 필요하고 분배도 중요하다. 기업의 자유도 필요하지만 노동과 환경에 대한 책임도 요구된다. 기술혁신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가 사회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좋은 경제는 얼마나 많은 돈을 만들어내느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 돈과 생산의 결과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경제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바로 그곳에서 경제학은 다시 사람의 학문이 된다. 『경제학 레시피』는 경제학을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흔든다. 익숙한 음식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경제의 원리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마늘 한쪽과 국수 한 그릇, 바나나 한 송이와 초콜릿 한 조각이 세계경제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경제는 더 이상 뉴스 속 어려운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식탁과 노동, 가족과 이웃, 그리고 미래 세대의 삶을 결정하는 현실이 된다. 결국 경제학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얼마나 많이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장하준의 책은 그 질문을 우리 앞에 차려놓는다. 그리고 독자는 식탁에 앉아 천천히 그 질문을 음미하게 된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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