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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70m에 수놓은 윌리엄 정복역사 바이외 태피스트리

70m에 수놓은 윌리엄 정복역사 바이외 태피스트리
[사람들]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밖에서는 처음으로, 주무대인 영국으로 옮겨져 런던 대영박물관 특별 전시가 시작된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지난 2일 미리 관람하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2026.9.2 풀 기자단 AFP 연합뉴스 바늘과 실로 만든 전쟁 속보. 그게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다. 가로 70m에 세로 50㎝ 남짓한 아마포(리넨)에 모직실로 수를 놓았다. 엄밀히 말하면 태피스트리(직조물)가 아니라 자수다. 이름부터 틀렸는데 960년 가까이 아무도 정정하지 않았으니, 오보도 오래 버티면 고유명사가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2026년 9월 10일, 이 천 쪼가리가 런던 대영박물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완성 시점으로부터 949년 만의 첫 해외 나들이며, 자수가 그려낸 무대를 찾아온 것이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당시 오도 주교가 윌리엄 공작의 군대를 독려하는 모습을 묘사한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한 장면(위키피디아) 승자가 쓴 뉴스, 패자는 화살 맞은 눈으로 1066년 10월, 잉글랜드 헤이스팅스 벌판에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정복왕 윌리엄, William the Conqueror, 1028경~1087)이 잉글랜드 왕 해럴드 2세(Harold Godwinson, 1022경~1066)를 꺾었다. 해럴드는 화살에 눈을 맞아 쓰러졌다고 태피스트리는 기록한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도살당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 장면을 수놓게 한 것이 승자 쪽이라는 사실뿐이다. 그 전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 1003경~1066)이 자식 없이 죽자 왕위를 두고 해럴드와 윌리엄이 다퉜고, 태피스트리는 시종일관 해럴드가 원래 윌리엄에게 충성을 맹세해 놓고 배신했다 는 쪽으로 서사를 짠다. 재판도 없이 55~70개 장면의 만화로 유죄 판결을 내려버린 셈이다. 이걸 주문한 사람이 윌리엄의 이복형제 오도 주교(Odo of Bayeux, 1030경~1097)라는 설이 유력한데, 공교롭게도 이 오도가 태피스트리 속에서 유독 늠름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자기 돈으로 역사를 주문하면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   해럴드를 노르망디로 보내는 참회왕 에드워드(위키피디아) 실을 놓은 손은 정복당한 자의 손 이 대목에서 이 이야기의 진짜 반전이 나온다. 정작 1066년부터 1077년까지 수를 놓은 사람들은 노르망디 쪽이 아니라 잉글랜드 쪽, 아마도 캔터베리 인근 수녀원 여성 자수공들이었다는 게 학계 다수설이다. 즉 정복자의 선전물을 정복당한 이들의 손으로 짓게 한 셈이다. 오늘날로 치면 비상계엄을 선포한 쪽이 방송사 기자들에게 자기 정당성을 홍보하는 특집방송을 만들라고 시킨 꼴이랄까. 그런데 그 기자들이 은근슬쩍 화면 구석마다 이상한 벌거벗은 인물이나 우화 속 여우 같은 걸 그려 넣어 후대 연구자들 골머리를 썩게 만들었다. 권력자는 문장을 지시할 수는 있어도, 마침표 옆 낙서까지 통제하지는 못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바이외 태피스트리 공식 개막 전 언론 공개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길이 약 70미터, 높이 50센티미터에 달하는 자수 작품으로,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국왕 해럴드 2세에게 도전하여 벌인 1066년 노르만 정복의 전개 과정과 그 절정인 헤이스팅스 전투의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11세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10일 개막했는데 전석 매진됐다. 2026.9.7 AFP 연합뉴스 첫 장면은 1064년 에드워드 참회왕이 윌리엄에게 왕위를 넘기려 해럴드를 노르망디에 파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 1066년 10월 4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이 해럴드 2세를 꺾는 장면으로 끝난다. 연재만화처럼 칸을 나누지 않고, 모든 것이 한 장면처럼 2년의 역사를 이어 붙인다. 라틴어로 장면마다 설명이 돼 있어 마치 만화의 말풍선 처럼 기능한다. 이 작품은 15세기 말부터 바이외 대성당 본당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18세기 초 베르나르 드 몽포콩의 눈에 띄어 여러 차례 옮겨다니다가, 바이외 주교궁이었던 곳에 영구 전시실을 마련하게 됐다. 이 태피스트리가 특히 소중한 이유는 당시의 무기와 전술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생생하게 그 때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줄기 박음질과 레이드 작업의 세부 묘사(위키피디아)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탐낸 천 쪼가리 그 매력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1803년 영국 침공을 준비하며 이 태피스트리를 파리로 가져와 대중 앞에 전시했다. 봐라, 우리 조상도 저 섬나라를 정복했다 는 국뽕 마케팅이었다. 침공은 무산됐지만 천은 살아남았다. 더 섬뜩한 손님은 20세기에 왔다. 1941년, 나치 친위대 수장 하인리히 힘러(1900~1945)의 지시로 아넨에르베 라는 이름의 사이비 인종학 연구소가 태피스트리를 재측정 한다며 노르망디로 연구팀을 보냈다. 목적은 순수한 학문이 아니라, 이 천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게르만-바이킹 혈통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둔갑시키는 것이었다. 그 연구팀에 있던 직물학자 카를 슐라보(Karl Schlabow, 1891~1984)는 연구 도중 천 뒷면 조각을 몰래 떼어 독일로 가져갔고, 이 조각은 80년 넘게 행방불명 상태였다가 2024년에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어 2026년 1월 프랑스로 반환됐다. 나치가 떼어간 실오라기 하나조차 결국 역사 앞에서 숨을 곳이 없었던 셈이다. 확실한 증거로 역사를 왜곡하려던 자들이, 정작 그 증거자체가 되어 돌아온 아이러니다.   바이외의 오도 주교 상세 모습(위키피디아) 960년 만의 귀향, 그리고 오늘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1977~ )과 영국 총리였던 키어 스타머(1962~ )가 지난해 합의해 이 태피스트리는 마침내 국경을 건넜다. 대신 영국은 서턴 후 (Sutton Hoo)유물과 루이스 체스 말(Lewis Chessmen)을 노르망디 박물관에 맞바꿔 보냈다. 스타머는 지지율 폭락 끝에 지난 6월 총리 직에서 물러났고, 후임 앤디 버넘(Andy Burnham, 1970~ )이 지난 2일 개막 사전행사 도중 찰스 3세(1948~) 국왕, 마크롱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합의는 스타머가 하고 생색은 버넘이 낸 셈이니, 정치란 원래 계주 경기다. 정복과 침략의 기록물이 이제는 외교적 우호의 상징이 되어 전시회에 걸린 셈이니, 역사란 결국 누가 어떤 맥락으로 다시 꺼내느냐의 문제라는 걸 새삼 증명한다.   퐁티외의 기 1세(Guy I of Ponthieu)가 보낸 사절단과 테두리에 묘사된 중세 농경 생활(위키피디아) 한국이 읽어야 할 실낱같은 교훈 이 이야기에서 한국이 곱씹을 대목은 최소 세 가지다. 첫째, 권력을 쥔 자가 서사를 독점하려 할 때 생기는 일이다. 오도 주교는 돈을 대고 구도를 짰지만, 실제로 바늘을 든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몰래 여백에 남겼다. 누가 마이크를 쥐든, 기록하는 손이 완전히 복종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언론장악이니 방송통신위원회 장악이니 하는 시도가 매번 실패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이치다. 둘째, 사이비 학문을 앞세워 과거를 자기 정치에 끼워 맞추는 짓은 나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건국절 논쟁,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친일부역자 미화 시도 모두 같은 족보다. 나치독일 시절의 아넨에르베 라는 사이비 인종학 연구소가 실측자료라는 형식만 빌려 인종주의를 정당화했듯, 형식만 그럴듯하면 내용의 왜곡은 얼마든지 포장된다. 셋째, 그럼에도 진실은 조각으로라도 결국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80년 숨어 있던 천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갔듯, 2024년 12월 3일 밤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 뒤 벌어진 일들도 언젠가는 낱낱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지금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고 있는 반헌법행위자 기록물도, 어쩌면 천 년 뒤 누군가에게는 우리 시대의 태피스트리로 남을지 모른다. 다만 이번엔 승자가 아니라 시민의 손으로 짜고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스티간드 대주교에 의해 거행된 것으로 보이는 해럴드의 대관식(위키피디아)   바이외 태피스트리 대영박물관 전시 개막에 발 맞춰 지난 10일(현지시간) 티켓을 구매한 이들이 중세 복장을 한 채 입장을 기다리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9.10 AFP 연합뉴스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의 바이외 태피스트리 개막에 발맞춰 10일(현지시간) 뮤지엄 태번 펍 이 비어 태피스트리 로 꾸며져 개막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2026.9.10 로이터 연합뉴스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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