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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트럼프라는 정신적 재난에 대한 생각

트럼프라는 정신적 재난에 대한 생각
[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워싱턴DC 내셔널몰에서 열린 행사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2026.7.4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를 바라보면서 나는 정치적 혐오를 넘어 인간의 정신과 권력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떻게 한 인간의 자기애와 공격성, 충동과 오만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과 결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는 그러한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할 수 있는가. 흔히 트럼프를 사이코 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의 언어이지 정신의학적 진단은 아니다. 직접적인 임상 평가 없이 특정 인물에게 정신질환을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병명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심리적 특성과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한 인간의 자기애가 어떻게 정치적 폭력이 되고, 개인의 성격이 어떻게 세계의 위험으로 확대되는가 하는 문제다. 자기애의 끝에는 타인의 부정이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기존중과 자기보존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게 팽창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트럼프의 정치적 언어와 행동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과도한 자기과시, 승리에 대한 집착, 비판에 대한 공격적 반응, 자신의 위대함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태도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불가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이 올린 트럼프 조롱 만평[X 갈무리] 정신분석학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취약한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과도한 자기확인의 가능성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을 추측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정치적 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묻는 일이다. 자기애가 권력과 결합하면 타인의 존엄은 쉽게 무시된다. 자신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인간에게 타인의 의견은 불필요하다. 자신이 언제나 승리해야 한다고 믿는 인간에게 패배는 학습의 기회가 아니라 굴욕이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인간에게 타인의 고통은 주변적인 문제가 된다. 그렇게 자기애는 개인의 성격을 넘어 정치적 위험이 된다. 프로이트의 그림자, 문명은 공격성을 통제할 수 있는가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인간의 공격성이 문명의 근본적인 위협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인간은 사랑하고 협력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욕망을 지닌 존재다. 문명은 이러한 공격성을 법과 윤리, 사회적 규범을 통해 억제하려 한다. 그러나 권력이 공격성을 억제하기는커녕 그것을 정당화하고 보상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정치지도자가 타인을 모욕하고 위협하는 행동을 강함이라고 부르고, 복수와 보복을 정의라고 포장하며, 자신의 충동을 국가의 의지로 내세운다면 문명은 그 순간 퇴행하기 시작한다. 트럼프의 정치에서 강함은 종종 절제와 책임이 아니라 상대를 굴복시키는 능력으로 표현된다. 협상은 상호존중의 과정이라기보다 힘의 과시가 되고, 국제관계는 공동의 규범보다 개인의 거래와 위협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공격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강자는 결코 강한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이 세계를 다스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문명의 역설이다. 아렌트, 권력자가 진실을 파괴할 때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서 사실적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사실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공동의 세계를 구성한다.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주장과 다른 사실을 반복적으로 부정하고, 비판자를 적으로 규정하며, 진실을 충성심의 문제로 바꾸면 시민들은 공동의 현실을 잃는다. 트럼프 정치에서 사실과 진실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언론과 정치인의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인식론적 기반에 대한 공격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사실을 바탕으로 논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도자의 말이 사실보다 중요해지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판단보다 앞서며, 비판이 배신으로 간주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진실을 자신의 권력 아래 두려는 인간은 결국 타인의 판단 능력까지 지배하려 한다. 레비나스, 타인의 얼굴을 잃어버린 정치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타인의 얼굴은 윤리의 시작이다. 타인은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나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존재다. 이 사유를 트럼프의 정치에 적용하면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그의 세계에서 타인은 얼마나 자주 인간으로 존중되는가. 이민자와 난민,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 정치적 반대자, 국제사회의 약소국들은 종종 위협과 거래, 비용과 이익의 언어로 다루어진다. 인간의 존엄은 국가의 이익이나 권력자의 판단에 따라 축소되거나 유예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협상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권력은 아무리 효율적이고 강력해도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은 타인을 보지 못하는 인간이다. 타인의 얼굴에서 책임을 읽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에서 자신의 의무를 발견하지 못하며, 타인을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이해하는 인간이다. 그러한 정치에는 윤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칸트,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권력 칸트는 인간을 언제나 목적 그 자체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정치에 적용될 때 더욱 엄중해진다. 국가의 경제적 이익도,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도, 어느 집단의 민족적 자부심도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정치가 오직 거래와 이익, 승리와 지배의 논리로 움직이면 인간은 쉽게 수단으로 전락한다. 약소국은 협박의 대상이 되고, 노동자는 비용으로 계산되며, 이민자는 제거해야 할 문제로 취급되고, 시민은 지도자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숫자로 변한다. 이것이 내가 트럼프 정치에서 발견하는 가장 심각한 인문학적 문제다.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하는 정치. 타인의 존엄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 권력자의 욕망을 국가의 운명으로 바꾸는 정치. 그것은 자유의 정치가 아니라 지배의 정치다. 트럼프를 만든 것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라는 인물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미국 사회는 그를 선택했는가. 왜 그의 공격적 언어와 과장된 자기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양극화, 문화적 소외와 정치적 불신은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등장하는 토양이 된다. 자신의 삶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강한 지도자는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해 주는 인물처럼 보일 수 있다. 트럼프가 상대를 공격할 때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분노가 대리 표현되는 경험을 한다. 그의 거친 언어는 그들에게 정치적 해방의 언어로 들리기도 한다. 여기에는 집단적 자기애의 문제가 있다. 지도자의 과장된 자기확신이 지지자들의 집단적 자부심과 결합하면 지도자의 실패는 집단의 실패가 되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자신들에 대한 모욕이 된다. 이렇게 정치적 충성은 비판적 판단을 대신한다. 그러므로 트럼프의 문제는 트럼프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트럼프를 필요로 하는 사회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선량한 지도자를 기다리는 제도가 아니다 나는 트럼프의 인격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선량하고 지혜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도자가 오만하고 충동적이며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을 전제로 그 권력을 제한하는 제도다. 권력분립과 법치, 언론의 자유, 시민의 비판권, 독립적인 사법제도는 지도자의 선의에 기대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대통령이 자신을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법은 그를 제약해야 한다. 대통령이 비판을 적대시한다면 시민의 자유는 더욱 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언론과 시민사회는 진실을 지켜야 한다. 지도자의 인격적 결함을 민주주의의 제도적 결함으로 확대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책임이다. 한 인간의 오만이 세계의 불안이 될 때 트럼프를 바라보면서 나는 인간의 오만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을 절대화하는 인간은 타인을 작게 만든다. 타인을 작게 만드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쉽게 외면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인간이 권력을 가지면 그 고통은 국가의 정책이 되고 세계의 불안이 된다. 그렇기에 트럼프를 분석하는 일은 한 정치인의 성격을 평가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인간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부르는가에 관한 질문이어야 한다. 강함이 절제 없는 공격성으로 대체되고, 자신감이 진실에 대한 무시로 변하며, 성공이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권리로 오해되는 사회는 이미 인간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나는 트럼프에게 어떤 정신의학적 진단명을 붙이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보여주는 정치적 행태를 통해 권력의 심리와 인간의 윤리를 묻고 싶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생각을 하는 사회가 아니다. 권력자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수 있고, 시민이 지도자를 비판할 수 있으며, 약자의 고통이 강자의 욕망보다 중요하게 취급되는 사회다. 트럼프라는 인물 앞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한 인간의 자기애만이 아니다. 자기애를 숭배하고 오만을 강함으로 착각하며 타인의 고통을 정치적 비용으로 계산하는 문명 전체의 병리다. 어쩌면 진정한 정신적 재난은 사이코라고 불리는 한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기고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회에 있는지 모른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권력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자신의 확신을 의심할 수 있는 겸손, 그리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멈출 수 있는 윤리적 감수성이다. 그것을 잃어버린 권력은 아무리 강해도 위대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린 문명은 아무리 번영해도 건강하지 않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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