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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개천절에 얽힌 오해와 비밀…거꾸로 읽는 단군신화

개천절에 얽힌 오해와 비밀…거꾸로 읽는 단군신화
[뉴스]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백두산 높은 터에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목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1978년 정부가 지정한 단군 표준 영정. 홍숙호(석창) 그림. 정인보가 지은 개천절(開天節) 노래 1절부터 3절까지의 가사 전문이다. 역사학자 겸 교육자이자 시조 시인이기도 한 정인보는 5대 국경일 가운데 한글날을 빼고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 노래를 모두 작사했다. 이 중에서 개천절만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한글날도 중간에 날짜가 한 차례 바뀌고 남한(반포일)과 북한(창제일)이 서로 다른 날을 기념하긴 하지만 ‘세종 25년 12월(음력) 훈민정음 창제, 28년 9월 상순 반포’라는 역사적 기록이 뚜렷하다. 창세기나 건국신화는 세계 곳곳에서 전승되고 있지만 우리처럼 국경일로 제정해 기념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설상의 진무(神武) 초대 천황 즉위일(2월 11일)을 1872년 기원절(紀元節)로 제정한 일본이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군국주의 이념에 활용됐다는 이유로 1948년 기원절을 폐지했다가 1966년 건국기념일이란 이름으로 부활시켰다.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 노랫말을 모두 지은 정인보. 출전 따라 다른 단기 원년: 기원전 2333년. 2357년 혹은 2145년 올해는 단기로 4359년이며 개천절은 제4358주년이다. 단군왕검이 요임금 재위 25년에 조선(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동국통감』 기록에 따른 것이다. 『사기』가 전하는 요임금 즉위년은 기원전 2357년이어서 기원전 2333년이 단기 출발점이다. 단군신화를 담은 사서 중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는 당고(唐高·요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했다”라고 밝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요임금 원년은 무진년이고 50년은 경인년이 아니라 정사년이어서 신빙성이 의심된다. 『제왕운기』와 『응제시주』 등은 요임금이 즉위한 날 나라를 세웠다고 기록해 기원전 2357년이 단기 원년이다. 하지만 『사기』에 나타난 요임금 즉위년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못 된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212년 뒤인 기원전 2145년이 즉위년이다. 조선 시대에는 공식 기록에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 연호를 쓰다가 1896년 건양(建陽)이라는 독자 연호를 처음 썼다. 1895년 양력을 채택하면서 ‘양력을 세운다’는 뜻으로 제정했다. 이듬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광무(光武)로 바꿨고 순종은 융희(隆熙)란 연호를 썼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 연호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 천황 연호에 반발해 단기 사용 이에 반발해 단기 사용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1909년 나철이 창교한 대종교에서 가장 활발했다. 1919년 2월 만주에서 작성된 무오독립선언서에서 단군기원을 쓴 데 이어 1919년 삼일절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도 ‘조선 건국 4252년’이라고 단기 연도를 명기했다. 그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로는 1919년을 원년으로 삼은 대한민국 연호를 썼다.   대종교를 중창한 나철.(대종교) 1945년 해방 후 실시된 미군정은 서기(서력기원)를 채택했으나 민간에서는 단기를 애용했다. 단기는 제헌국회가 대한민국의 공용 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는 내용의 ‘연호에 관한 법률’을 1948년 9월 25일 제정 공포함으로써 공식화했다. 이로써 모든 공식 문서에는 단기로 연도가 표시됐으나 국제적 추세와 현실적인 불편 등을 이유로 서기를 병용했다. 1960~1970년대에는 낡은 방식을 낮잡아 부르는 ‘쌍팔년도’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는 서기 1988년이 아니라 단기 4288년(서기 1955년)을 가리키는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그해 12월 법률을 개정해 이듬해 1월 1일부터 서기를 시행했다. 개천절 10월 3일은 원래 양력 아닌 음력 단기는 기원전 2333년에 시작하지만 올해 개천절은 4358주년에서 124년을 더한 4482주년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정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열고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는 기록처럼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기에 앞서 기원전 2457년(상원 갑자년)에 환웅이 하늘을 열었다는 것이다. 10월 3일이라는 개천절 날짜는 개천절 노랫말에서 나오는 ‘시월 상달 초사흘’에서 비롯됐다. 한민족은 고대 부족국가 시절부터 음력 10월 3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을 치렀다. 음력 10월은 곡식과 과일을 모두 수확한 다음이고, ‘3’은 예로부터 길하게 여기며 신성시해온 숫자였다.   광복회가 2025년 10월 3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 건국기원절 기념식을 열고 있다. 광복회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가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기념한 전통에 따라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광복회) 1909년 나철이 중창한 단군교(1910년 대종교로 개칭)는 이날을 성조개극절(聖祖開極節)로 명명해 환인·환웅·단군에게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임시정부도 ‘태황조(太皇祖) 성탄(聖誕) 및 건국기원절(建國紀元節)’이란 이름으로 기념해오다가 미군정을 거쳐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해방 후 한동안은 개천절을 음력으로 기념했다. 1949년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심의회’는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날짜를 바꾸는 방안을 심의한 결과 정확한 기원을 따질 수 없어 환산이 불가능한 데다 날짜가 갖는 의미가 소중하다”는 이유로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하자고 건의했다. 이에 따라 1949년 10월 1일 제정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양력 10월 3일로 명시됐다.   사단법인 현정회가 2025년 11월 22일(음력 10월 3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단군성전에서 개천절 대제전을 봉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정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개천절 기념식을 비롯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개천대제, 강원도 태백산 천제단 천제를 양력으로 치르고 있다. 대종교도 양력 변경 취지를 존중해 개천절 경하식을 양력으로 개최하고 있으나 천제는 전통에 따라 음력으로 봉행한다. 현정회도 음력 10월 3일 서울 사직단 단군성전에서 개천절 대제전을 지낸다. 선교(仙敎) 등 일부 단체도 이날을 기념하며 음력 개천절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단군릉으로 알려진 평양 근교 대박산 무덤에서 양력 10월 3일 개천절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다.   단군릉으로 알려진 북한 평양 근교의 대박산 무덤 앞에서 개천절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단군은 한민족 시조 아닌 고조선 건국 시조 개천절 노랫말 1절은 단군을 ‘이 나라 한아버님’ 즉 국조(國祖)로 떠받들고 있다. 각종 동요나 동화 등에서도 ‘단군 할아버지’라고 표현하며 한민족이 단군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단군신화를 엄밀히 뜯어보면 한민족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단군의 후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환웅이 인간 세상을 구하기를 탐내자 환인이 천부인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도록 했다”는 말에서 보듯이 환웅이 내려오기 전부터 세상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들도 후손을 남겼을 것이고 환웅이 이끌고 온 무리 3000명도 마찬가지다. 단군의 직계 후손보다는 이미 살던 사람과 환웅 무리의 후손이 훨씬 많았다고 추산하는 게 상식적이다. 단군은 한민족 혈통의 조상이라기보다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시조인 것이다. 개천절 노래 2절 ‘부자요 부부’란 가사는 환웅 단군 부자와 환웅 웅녀 부부를 뜻한다. 환웅은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와 결혼해 아들 단군을 낳는다. 학자들은 천신(天神)을 신봉하며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는 천손족(天孫族) 이주민과 곰을 숭배하는 선주민 부족의 결합으로 풀이한다. 범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말라는 당부를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은 천손족이 곰 토템족과 연합해 호랑이 토템족을 몰아내고 고조선 강역을 차지했음을 은유한다. 따라서 단군은 역사상 최초의 다문화가정 자녀이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 국가라는 서사의 바탕이 된 단군신화가 반대로 부족(민족) 간 융합을 뜻하는 설화인 것이다. 난생설화도 업둥이형과 사생아형으로 갈려 우리나라 고대 건국신화를 보면 알에서 태어난 시조가 많다. 이를 난생설화라고 하는데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다. 알은 씨앗이라는 말로도 쓰이며 신성함을 뜻한다. 씨앗을 보관했다가 싹이 트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해지니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어학자들은 알이란 말이 아리를 거쳐 아기란 단어로 변했다고 유추한다. 같은 난생설화라 해도 알이 어디서 비롯됐느냐에 따라 하늘에서 스스로 내려온 자연천생란적(自然天生卵的) 설화와 인간에 의한 인위인생란적(人爲人生卵的) 설화로 나뉜다. 다른 말로는 업둥이형과 사생아형이라고도 부른다. 신라 박혁거세와 김알지, 가야 수로왕 등은 전자에 속한다. 고구려 동명왕(주몽)과 신라 석탈해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업둥이형 설화의 주인공이 알일 때부터 신성하게 떠받들어져 깨어나자마자 큰 어려움 없이 왕으로 등극하는 반면 사생아형 설화에 등장하는 알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져 내버려졌다가 짐승들의 보살핌 속에 깨어난 뒤 온갖 시련을 딛고 건국 시조가 된다. 자연천생란적 설화는 천손 신화를 믿는 북방 유목민족과 알을 신봉하는 남방 농경민족의 결합을 뜻한다.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품고 있던 알에서, 김알지는 나뭇가지에 걸린 궤짝의 알에서 태어난다. 말은 유목민족 상징이고 나뭇가지는 하늘을 빗댄 것이다. 수로왕을 비롯한 가야 6국의 왕들도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깨어난다. 동명왕 신화는 인위인생란적 설화에 속하긴 하나 하백(河伯·압록강의 신)의 딸 유화부인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가까이했다는 이유로 유폐됐다가 햇빛을 받고 임신해 알을 낳았다는 줄거리가 천손족과의 결합을 암시한다. 바다를 건너온 궤짝의 알에서 태어난 석탈해는 전형적인 인위인생란적 설화의 주인공으로 남방계 이주민으로 추정된다.   경남 밀양시 영남루 경내에 있는 천진궁 내부. 가운데 고조선 시조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양옆으로는 부여,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발해, 고려, 조선 8왕조 시조의 위패를 봉안해놓았다. (밀양시) 수로왕비 허황옥은 최초의 결혼이주여성 김해 김씨 시조이기도 한 수로왕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는다. 허황옥이 타고 온 배에 실렸던 돌로 파사석탑을 세웠는데,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돌이라고 한다. 경남 김해시 구산동 수로왕릉비 옆에 세워져 있다. 아유타국은 인도 아요디아왕국이라고 추정한다. 인도가 아닌 동남아시아나 일본이라는 설도 있다. 허황옥은 기록상 최초의 결혼이주여성이다. 김수로와 허황옥 부부는 아들 10명을 낳았고 이 가운데 2명은 어머니 성을 따라 김해 허씨 시조가 됐다. 김해 허씨는 양천·하양·태인 등의 본관으로도 갈려 나갔으나 모두 허황옥 후손으로 믿고 있다. 지금도 김해 김씨와 허씨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 전통을 지킨다. 7700년간 ‘악마의 눈’ 동굴에 묻혀있던 난생설화의 비밀 부족 간 결합을 통한 한민족 형성 과정은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된다. 1973년 러시아 동쪽 끝 두만강 북부 ‘악마의 문’ 동굴에서 7700년 전 신석기 유골이 발견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가 2017년 러시아·영국·독일 등과 국제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이곳에서 발견된 20대와 40대 여성 유골의 게놈(유전체)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오늘날 한국인과 비슷한 유전적 특징을 지닌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신석기 시대 인류의 유골이 발견된 러시아 연해주 두만강 유역의 ‘악마의 문 동굴’ 입구. (연합뉴스) 갈색 눈, 삽 모양 앞니에다가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고혈압에 약하고, 몸 냄새가 적고, 귓밥이 마른 유전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인근 원주민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가까웠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게놈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지닌 것과 일치했다. 조사단이 악마의 문 동굴인과 아시아 50여 인종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을 계산한 결과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대만에 고립된 원주민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인 특성에 가장 가깝게 나타났다. 이는 수천 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뒤섞이면서 한반도의 조상이 형성됐음을 뜻하는 것으로 자연천생란적 설화가 주류를 이룬 고대 건국신화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현대 한국인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된 흔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에 더 가깝다. 수렵·채집이나 유목 생활을 하던 북방계보다는 정착해 농사를 짓던 남방계가 더 많은 자식을 낳아 빠르게 확산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방계가 지배계급을 형성했으므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는 금관, 비파형 동검, 호랑이 모양 띠고리 등 북방계가 많다.   단기 4348년 개천절을 맞아 단군 탈과 옷차림을 한 국학원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종로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2015.10.3. 연합뉴스 나라 어려울 때 민족의 힘 결집시킨 단군신화 단군신화와 개천절은 민족적 자부심의 상징이다. 고려시대 몽골족 침입을 받았을 때 단군신화를 담은 기록물이 속속 등장하고, 구한말 일본이 한반도 병탄 야욕을 노골화하자 단군 신앙이 널리 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세에 대항해 민족의 힘을 결집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 해도 좋을 만큼 민족의 동질성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하지만 모든 민족이 그렇듯이 그 원형은 다문화적 결합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는 민족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흠결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민족이 살아남은 비결이기도 했다.이희용 줌렌즈 hoprav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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