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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앞에 놓는 흰 국화 송이 어디서 유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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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례식장은 언제부터인가 하얀 국화꽃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고인의 영정 아래에 흰 국화를 한 송이 바치고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오늘날 한국인에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조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평범해 보이는 관습 뒤에 가려진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늘상 접하는 장례식장의 흰 국화는 근본적으로 한국의 전통 유교 문화나 고유한 민속적 애도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세기 말 서양 제국주의의 상례가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일본을 거쳐 전해진 것이다. 상업화된 현대 장례 산업이 만들어낸 왜곡된 정형화의 산물이다. 본 글은 오늘날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장례식장의 흰 국화 헌화 관습이 지닌 역사적 유래와 문화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나아가 우리의 고유한 애도 정서와 주체성을 되찾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선 헌화(獻花)라는 행위 자체의 역사적 유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 절차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핵심적인 상징 행위는 향을 피우는 분향(焚香)과 술을 올리는 헌주(獻酒), 그리고 절을 올리는 절차였다. 유교적 상례에서 향은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통해 고인의 혼을 위로하고 영혼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신성한 수단이었다. 또한 향나무의 그윽한 향은 죽음으로 인한 현장의 부정함을 씻어내는 정화의 의미를 지녔다. 조상들은 상여에 꽃을 달았을 뿐 시신이나 영정 앞에 생화를 바치는 일은 없었다. 불교의 영향으로 상여에 매다는 꽃은 연꽃이었지만 대부분 조화를 썼다. 전통적인 한국의 정서에서 생화는 생명과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었기에, 죽음의 공간에 꽃을 바치는 행위는 자연의 이치와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이 흰 국화는 어디서 왔는가. 서양 문화권에서 흰색은 순결, 거룩함, 고결함을 상징하며, 흰 백합이나 흰 국화는 고인의 영혼이 평안히 안식하기를 바라는 상징물로 쓰였다. 이러한 서양의 장례 문화는 19세기 말 개화기 당시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서구화를 급격히 추진하던 메이지 유신은 장례 제도 역시 서구식 요소를 적극 도입했다. 특히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 국화라는 점에 착안하여, 서양의 헌화 문화와 결합해 흰 국화를 장례의 공식적인 조화(弔花)로 규정하고 이를 제도화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러한 일본식·서양식 혼합 장례 문화가 조선 땅에 강제로 유입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전통적인 상장례 절차가 지나치게 번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구실을 내세워, 1934년 의례준칙 을 제정하고 조선 고유의 장례 문화를 통제하고 간소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 유교식 분향과 함께 일본식 헌화 방식이 은연 중에 이식되었으며, 흰 국화는 장례식의 필수적인 소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결국 우리가 아무런 의구심 없이 고인 앞에 바치는 흰 국화 한 송이에는식민지 의례 통제의 흔적과 일본 황실 문화의 그늘이  드리운 셈이다. ​ 문화적 주체성의 관점에서도 장례식장의 흰 국화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 민족의 장례는 단순한 형식이나 의례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생사관, 세계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숭고한 정서가 집약된 문화적 결정체다. 삶과 죽음을 하나의 순환으로 바라보고, 떠나가는 이의 영혼을 기리며 남은 이들이 슬픔을 나누던 우리의 장례 정서는 오늘날 차갑고 정형화된 흰 국화의 배열 속에서 마모되고 있다. 꽃을 바치는 행위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꽃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한 채, 단지 남들이 하니까 혹은 장례식장에서 준비해 놓았으니까 관성적으로 국화를 집어 드는 행위는 문화적 무감각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나라 가정의례준칙은 전통적인 관혼상제의 번잡성과 허례허식을 지양하고 의례의 간소화를 위하여 제정·공표됐다. 이 준칙은 1957년 국민 재건운동 본부의 「표준 의례」와 1961년 보건사회부의 「표준 의례」를 모태로 하여, 1969년 1월 16일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반포되면서 시행되었다. 흰 국화를 바치는 일이 기독교 문화의 영향도 없다고 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현대 장례 산업의 상업주의는 이러한 국화 헌화 관습을 더욱 고착시키고 왜곡시켰다. 오늘날 장례식장에서 사용되는 국화는 대부분 대량 생산되어 유통되는 상업적 재화에 불과하다. 제단 전체를 흰 국화로 도배하는 화려한 꽃 장식은 고인에 대한 진정한 애도보다는 상주의 재력이나 세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장례가 끝나면 수백, 수천 송이에 달하는 그 하얀 국화들은 순식간에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는 고인의 삶을 온전히 추모하는 숭고한 정신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소비 행태일 뿐이다. 슬픔과 애도의 공간이어야 할 장례식장이 규격화된 국화 꽃장식의 전시장이 되어버린 현실은 우리 시대 상례 문화가 얼마나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비판적 성찰은 단순히 과거의 유교식 장례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성적으로 받아들인 다른 문화의 잔재와 상업주의적 형식을 경계하고, 고인을 향한 진정성 있는 애도 방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만약 헌화라는 형태를 유지하더라도, 왜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의심을 받는 흰 국화여야만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꽃, 고인의 삶과 인품을 담아낼 수 있는 꽃, 혹은 계절에 맞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주체적이고 뜻깊은 애도가 될 수 있다. ​꽃을 바치는 대신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글이나 사진을 공유하거나, 고인이 평소 아끼던 유품을 중심으로 제단을 꾸미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애도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죽음은 삶의 거울이며, 한 사회의 장례 문화는 그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나타낸다. 아무런 비판 없이 다른 나라의 전통과 상업주의가 빚어낸 흰 국화 헌화 관습을 고수하는 것은 우리의 애도 문화를 스스로 빈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장례식장의 흰 국화에 투영된 맹목적인 관습화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고인을 떠나 보내는 자리는 관성적인 의식의 이행지가 아니라, 고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깊이 저울질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거룩한 공간이어야 한다. 흰 국화라는 일률적인 틀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애도 정서를 되살리고 고인의 개성과 삶을 존중하는 주체적인 장례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장례식장의 흰 국화를 반대하고 새로운 추모 문화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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