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막을 유일한 힘은 민주주의의 실력 [뉴스] 국민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증명해내는 것, 그것만이 극우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힘이다.
극우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극우를 가르는 기준은 이념의 색채나 얼마나 보수적인가에 있지 않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하는가에 있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함께 살아가는 질서다. 그러나 극우는 다르다. 자신의 신념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고, 반대하는 사람을 동등한 시민이 아닌 적으로 취급한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규칙마저 부정한다.
한국 극우의 역사적 뿌리에는 반공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반공을 명분 삼아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선택적으로 취해 왔다. 권력을 잡았을 때는 국가와 안보를 앞세워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권력을 잃었을 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무너졌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순을 반복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만 수용하는 제도가 아니다. 지지하는 정치인이 패배해도 결과를 인정하고, 불리한 판결도 법적 절차에 따라 다투며, 반대편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과거의 극우가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국가권력의 품에 안겼다면, 오늘날 극우는 피해의식을 부추기고 음모론을 퍼뜨리며,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사회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진보세력과 언론, 사법부, 선거관리위원회가 국가를 장악했다는 음모론을 확산하며 스스로를 ‘국가를 구할 선택받은 시민’으로 포장한다.
더 큰 경고등은 이 흐름이 제도권 정치 안으로 뚫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최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행보는 우려를 자아낸다. 이승만·박정희를 앞세운 역사 상징 정치, 윤석열 내란 세력과의 모호한 절연, 부정선거 의혹 공세, 대북 강경론은 강경 보수층을 결집하는 데 맞춰져 있다. 여기에 이진숙·김태규·주진우 의원 등 강경파 인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은 단순한 개별 행보를 넘어 당의 중심축 자체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도부 재편이 강경파 중심으로 현실화한다면 국민의힘은 전통 보수정당을 넘어 극우적 세계관을 당의 이념으로 수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보수의 재정비인지, 극우의 제도권 장악인지 냉정하게 물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정치의 흐름도 극우 세력의 거센 확산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방향인 것은 아니다. 극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시민들은 대선 결선투표에서 룰라를 선택했고, 프랑스는 2024년 총선에서 정당 간 연대로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이 의회 과반을 점하는 것을 막아냈다. 우리 사회 역시 배타적 권위주의를 선뜻 수용할 만큼 정서가 기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극우에 반대한다는 명분만으로 민주주의가 저절로 지켜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민주당이 보여주는 안일함과 무능은 더욱 우려스럽다. 국민의 삶을 개선할 비전도, 변화를 이끌어낼 정치적 역량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실망과 분노는 언제든 극우가 파고들 틈이 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극우가 아닌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다. 극우의 위협을 경계하는 것만큼이나, 이에 맞서는 세력이 스스로의 무능과 안일함을 돌아보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증명해내는 것, 그것만이 극우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힘이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