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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정신병자 사슬 끊고 구속복 입힌 필리프 피넬

정신병자 사슬 끊고 구속복 입힌 필리프 피넬
[사람들]
미친놈으로 태어난 죄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정신병에 걸린다는 건 형벌을 받는 것과 같았다. 팔다리에 쇠사슬을 채워 벽에 묶어두고, 짚더미 위에 던져놓고, 심지어 돈을 받고 구경까지 시켰다. 지금으로 치면 동물원 우리에 사람을 가둬놓고 입장료를 받던 셈이다. 병이 아니라 죄로 취급했고, 치료가 아니라 구경거리로 삼았다. 정신병자를 대하는 태도만 놓고 보면, 인류는 계몽주의니 이성의 시대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면서도 정작 이성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는 몽둥이만 들이댄 셈이다. 이 야만적 관행에 처음 정면으로 손을 댄 사람이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이다. 툴루즈에서 신부가 되려고 공부하다가 마음을 바꿔 의사가 된 사람으로, 이발사 겸 외과의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정작 정신의학에 발을 들인 계기는 좀 뒤늦고 씁쓸했다. 가까운 친구 하나가 정신병을 앓다가 발작을 일으켜 숲으로 뛰쳐나갔고, 결국 늑대에게 잡아먹혀 죽었다는 것이다. 친구를 살릴 방법이 세상에 없다는 걸 절감한 뒤에야, 피넬은 광기라는 것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필리프 피넬, 안나 메리메가 그린 초상화(위키피디아) 혁명의 광풍 속에서 얻은 자리 파리에서 개업 허가를 받지 못해 한동안 번역가와 수학 과외교사로 밥벌이를 하던 피넬은, 1786년부터 벨롬(Belhomme)이라는 사설 정신병원에서 일하며 조용히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혁명이 모든 걸 뒤집었다.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장면을 의무적으로 지켜봐야 했던 그는 몇 달 뒤 뜻밖의 승진 통보를 받는다. 파리 등 였다. 나이 마흔여덟, 늦깎이 출세였다. 이 병원엔 범죄자와 부랑자, 매독 환자들과 함께 정신병자 200여 명이 뒤섞여 수용돼 있었다. 혁명이 왕의 목은 잘랐지만, 정신병자에게도 뜻밖의 선물을 하나 던져줬다. 낡은 권위가 무너지자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정의할 여유가 생긴 거다. 마침 그해 5월엔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마저 단두대에서 사라졌으니, 혁명기 파리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면서 동시에 낡은 통념도 파리 목숨처럼 우수수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토니 로베르-플뢰리(Tony Robert-Fleury)의 그림. 1795년 파리의 여성 정신질환자 수용소에서 피넬이 환자들의 쇠사슬을 제거하도록 지시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슬을 끊은 것은 누구인가? 교과서에는 피넬이 광인을 쇠사슬에서 손수 풀어준 은인으로 나온다. 그림도 남아 있다. 자애로운 표정의 의사가 손수 쇠사슬을 끊어주는 장면. 그런데 사실을 들여다보면 조금 민망해진다. 실제로 비세트르에서 사슬을 먼저 풀기 시작한 사람은 장바티스트 퓌생(Jean-Baptiste Pussin, 1745~1811)이라는 병동관리인이었다. 그는 의사도 아니었고 정규교육도 못 받았지만, 오랜 현장경험으로 폭력보다 대화가, 사슬보다 자유가 환자를 낫게 한다는 걸 몸으로 터득했다. 피넬이 부임하기 이미 3년 전인 1790년부터 그는 조용히 사슬을 풀고 있었다. 즉 현장에서 몸으로 답을 찾은 건 학위 없는 실무자였고, 그 경험을 관찰하고 이론으로 정리해 세상에 알려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건 학위와 인맥을 가진 의사였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 아닌가. 회의에서 막내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부장이 정리해서 임원 앞에서 발표하는 그 익숙한 풍경 말이다. 피넬 본인은 생전에 퓌생의 공을 여러 차례 인정했다고 하니 적어도 양심은 있었던 셈이나, 후대의 위인전 작가들은 그런 각주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미담을 단순화해버렸다. 게다가 사슬 대신 도입된 것도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구속복이었다는 점 역시 잘 언급되지 않는다. 인권진보의 역사는 대개 이런 식이다.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 조금 덜 잔인한 구속으로 바뀌는 것, 그리고 그 절반의 진보조차 신화로 포장돼야 비로소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것. 또한 피넬이 활동하던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빈첸초 키아루지(Vincenzo Chiarugi, 1759~1820)가 이미 1785년부터 피렌체의 병원에서 비슷한 개혁을 실행하고 있었고, 영국 요크에서는 퀘이커 상인 윌리엄 튜크(William Tuke, 1732~1822)가 사슬도 매질도 없는 요양원을 세우고 있었다. 한 사람의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깨달음이 동시에 번지고 있었던 셈이다. 역사는 흔히 이 여러 갈래 흐름 중 가장 기록을 잘 남긴 사람 한 명에게 훈장을 몰아준다.   1876년 토니 로베르-플뢰리의 그림 (위키피디아) 광인에서 환자로, 생각의 틀을 바꾸다 그럼에도 피넬의 공을 완전히 깎아내릴 수는 없다. 그의 진짜 업적은 사슬을 물리적으로 풀어준 것보다, 정신병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꾼 데 있다. 그는 광기를 악령의 저주나 도덕적 타락으로 보던 오랜 관습을 버리고, 이를 치료가 필요한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했다. 채찍질과 사혈, 물집을 내는 치료법 대신 대화와 관찰을 처방으로 삼았다. 매일 환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몇 년에 걸쳐 꼼꼼히 기록했다. 지금 보면 당연한 방법이지만, 광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이라 여기던 시절엔 이것부터가 혁명적 발상이었다. 1794년 그는 여성 정신병자를 수용하던 살페트리에르(Salpêtrière) 병원의 책임자로 옮겨가 같은 개혁을 이어갔다. 이곳엔 6천 명이 넘는 여성이 수용돼 있었고, 그중 정신병자들 역시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는 여기서도 퓌생을 데려와 함께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의 제자 장에티엔 도미니크 에스키롤(Jean-Étienne Dominique Esquirol, 1772~1840)은 스승의 방식을 이어받아 프랑스 전역에 정신병원 열 곳을 새로 세웠다. 낙인을 벗기는 작업은 한 사람의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고, 다음 사람이 이어받아야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장에티엔 도미니크 에스키롤(위키피디아)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에서도 정신질환은 여전히 숨겨야 할 흠결로 여겨진다. 정신과 진료기록이 취업이나 보험에서 불이익으로 돌아올까 봐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자녀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숨기는 부모도 흔하다. 200년 전 파리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사슬에 묶어 구경거리로 삼았듯, 오늘날 한국사회는 낙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건 광기라는 낙인이 정치의 무기로 쓰인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골치 아픈 상대를 향해 정신 나간 소리 라 몰아붙이며 상대의 주장을 논리로 반박하는 대신 정신상태를 문제삼아 버린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무장병력을 투입한 윤석열이 있었다. 이후 윤석열을 옹호하려는 쪽에서는 오히려 저항한 시민과 국회의원들을 향해 흥분했다느니 선동에 놀아났다느니 하는 식으로 이성을 잃은 쪽은 저항자들이라 몰아세우려 했다. 누구를 미쳤다고 규정할 권력을 쥔 자가 결국 누구를 사슬에 묶을지를 정하는 법이다. 비상계엄이라는 것 자체가, 정권이 국민전체를 향해 너희는 지금 정상이 아니니 우리가 대신 판단하겠다 고 선언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피넬의 이야기가 남기는 교훈은 단순하다. 광기를 정의하는 권력을 특정계급이나 정권이 독점하게 두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묵묵히 답을 찾은 이름 없는 사람의 공을 역사가 지워버리기 쉽다는 것. 퓌생 같은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위인전이 감춰온 진짜 역사를 되찾는 길이다. 사슬을 누가 잘랐는지 보다 중요한 건, 애초에 누가 그 사슬을 채웠는지를 잊지 않는 일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스코틀랜드의 로열 에든버러 병원 피넬 기념비에 있는필리프 피넬의 흉상(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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