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모니터링&뉴스레터   페투미X사회혁신
페투미X사회혁신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루이 16세, 자물쇠는 고쳤는데 나라는 못 고쳤다

루이 16세, 자물쇠는 고쳤는데 나라는 못 고쳤다
[뉴스]
열쇠 뜯는 것이 취미였는데 왕좌에 오르다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 마지막 왕이다. 1774년, 스무 살 나이로 왕좌에 앉았다. 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죽자 얼떨결에 왕관을 물려받은 셈이다. 원래 왕이 될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형도 어릴 때 죽었다. 순서가 밀리고 밀려 얼떨결에 최고 권력자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이 사람, 취미가 남달랐다. 정치보다 자물쇠 만지는 걸 더 좋아했다. 궁 안에 작업실을 두고 손수 자물쇠를 뜯고 고쳤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나랏일은 뒷전이고 열쇠 구멍만 들여다봤다는 조롱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다. 열여섯 살에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와 정략결혼을 했는데, 이 결혼도 훗날 그의 발목을 잡는다. 프랑스 민중에게 그녀는 늘 오스트리아 X 이었다.   앙투안 프랑수아 칼레가 1779년경에 그린 루이 16세 초상화(위키피디아) 빚더미 위의 왕관 루이 16세가 물려받은 나라 곳간은 이미 바닥 나 있었다. 할아버지 대의 사치와 잇단 전쟁 비용, 게다가 미국 독립전쟁을 도와준다며 쏟아 부은 돈까지 겹쳤다. 재무장관 튀르고(Anne Robert Jacques Turgot, 1727~1781)와 네케르(Jacques Necker, 1732~1804)가 차례로 세금 제도를 뜯어고치려 했지만, 귀족과 성직자들이 자기 몫을 내놓을 리 없었다. 루이는 그때마다 개혁안을 들었다 놨다 하며 결단을 미뤘다. 옳은 말을 듣고도 힘 있는 자들 눈치를 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1789년, 150년 넘게 열리지 않던 삼부회를 소집한다. 세금 걷을 방법을 논의하자고 부른 자리였는데, 정작 평민대표들이 우리가 국민의회다 라고 선언하며 판을 뒤집었다. 왕은 막을 힘도, 막을 의지도 없었다. 우유부단이 위기를 키우고, 위기가 다시 우유부단을 낳는 악순환이었다.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들의 세 자녀 마리 테레즈, 루이 샤를, 루이 조제프를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이 1787년 화폭에 옮겼다. (위키피디아) 도망치다 잡힌 남자 1791년 6월, 루이 16세와 가족은 변장을 하고 파리를 몰래 빠져나간다. 국경 너머 오스트리아군의 도움을 받아 반격을 노리겠다며 달아난 것이었다. 그런데 시종 옷을 입은 왕의 얼굴이 지폐에 새겨진 초상과 너무 닮았다는 이유로 국경 마을 바렌에서 붙잡히고 만다. 도망치던 왕이 자기 얼굴이 찍힌 돈 때문에 잡혔다는 이 대목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이 사건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왕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백성을 버리고 외국군을 끌어들이려 한 왕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청년기의 루이 16세(위키피디아) 단두대, 그리고 침묵의 대가 1792년 왕정이 폐지되고, 루이는 재판에 넘겨진다. 반역죄였다. 1793년 1월 21일,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아홉 달 뒤인 그해 10월 16일에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같은 자리에서 처형당했다. 재판을 주도한 급진파 지도자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는 왕을 살려두면 혁명 자체가 죽는다 고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도 이듬해 여름, 같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남을 벤 칼이 결국 자기 목으로 돌아온 셈이다.   혁명 광장에서 거행된 루이 16세의 처형 장면. 그의 앞에 보이는 빈 받침대에는 원래 그의 할아버지인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었다(위키피디아) 한국이 새겨야 할 것 루이 16세를 단순히 무능한 폭군으로만 그리면 이야기가 너무 쉬워진다. 그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온화하고 신중한 편이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곳간이 비었다는 걸 알면서도, 백성이 굶주린다는 보고를 받으면서도, 정작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마다 뒤로 물러섰다. 개혁안이 올라오면 귀족 눈치를 보고, 민심이 들끓으면 군대 눈치를 봤다. 누구 말도 끝까지 듣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침묵과 미룸이 쌓여 결국 나라를 무너뜨렸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에서도 권력을 쥔 윤석열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군대를 동원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국회와 시민이 몸으로 막아섰고, 윤석열과 김건희는 왕정시대처럼 단두대로 가는 길은 피했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왜 권력은 반복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가. 왜 눈앞의 위기신호를 보고도 못 본 척하다가 결국 파국을 자초하는가. 루이 16세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건 단순하다. 권력이 시민의 소리를 듣지 않을 때 무너진다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은 세월이 지나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파리 생드니 대성당에 있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기념비. 에드므 골과 피에르 프티토의 조각상이다. (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