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환수, 더 미룰 수 없다 [뉴스]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책임이며, 전작권 전환은 그 책임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동맹에 의존하는 안보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우리가 주도하고 동맹과 함께하는 안보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의 영토는 비무장지대(DMZ)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또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전에도 한반도를 미국의 전략적 거점인 ‘고정된 항공모함’에 비유하고, 중국의 관점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심장부를 겨누는 ‘단도’로 표현한 바 있다. 군사전략적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일 수 있지만, 한국의 안보와 주권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앞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보다 더 주목할 대목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관한 그의 소신 발언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안보환경이 달라졌고 계획에도 변화가 생긴 만큼 새로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변하는 만큼 대비태세를 점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안보환경의 변화가 곧 전환 조건의 변경이나 추가를 뜻한다면 전환 시점은 거듭 늦춰지고, 전작권 전환은 기약 없는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한국군은 병력과 무기, 장비, 지휘 역량 등 전반적인 군사력에서 북한군에 열세였다. 전쟁이 급속히 확대되자 이승만은 효율적인 전쟁 수행과 지휘체계의 통합을 위해 7월 14일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했다. 이후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기까지 작전지휘권 환수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다가, 전작권 전환 논의는 노태우 정부에서 본격화됐고, 김영삼 정부는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본격적인 정책 과제로 추진한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노 대통령은 이를 단순한 군사적 절차가 아니라 군사주권과 자주국방을 실현하는 과제로 보았다. 한국군이 자국 방위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미국과 협력하는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한미 양국은 전환에 합의하고 2012년을 목표 시점으로 정했지만, 이후 일정은 거듭 연기됐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피격 사건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전환 시점을 2015년으로 늦췄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전환 시한을 없애고, 한국군의 군사적 능력과 한반도 안보환경 등 합의된 조건이 충족돼야 전환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전환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미 연합훈련과 군사적 검증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필요한 능력 검증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윤석열 정부 역시 조건 충족을 우선하면서 임기 내 전환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쟁 직후의 나라가 아니다. K방산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군도 첨단 무기체계와 상당한 군사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5위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무기 수출 실적이나 군사력 순위만으로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모든 역량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주도적으로 지휘하기 위한 정보·감시·정찰 능력과 연합작전 수행 능력,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역량은 계속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역량을 완벽하게 갖출 때까지 전환을 미룬다면 자주국방은 기약 없는 목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동북아의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자주국방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제 한국은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 안보를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책임이며, 전작권 전환은 그 책임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동맹에 의존하는 안보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우리가 주도하고 동맹과 함께하는 안보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