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망령들 의 국회 과방위 습격 [뉴스] 국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상대 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가로막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권력의 불공정과 불합리여야 한다.
정치에도 망령이 있다. 끝난 줄 알았던 과거의 갈등이 존재의 위치를 바꿔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다. 과거의 상처와 분노가 새로운 자리에서 되살아날 때, 정치는 미래를 향하기보다 다시 또 과거를 상기한다. 최근 국회를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윤석열 정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투톱 으로 함께했던 이진숙 전 위원장과 김태규 전 부위원장이 나란히 국회에 입성한 것은 우연한 정치적 이동으로만 보기에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방통위에서 국회와 치열하게 충돌했던 주체들이 이제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회 한복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진숙 의원은 최근 자신이 국회에서 주최한 포럼을 둘러싸고 야당과 거센 공방을 벌이며 표현의 자유 를 내세워 맞섰고, 이로 인해 상임위는 업무보고와 결산 심사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파행을 빚었다. 김태규 의원 역시 방통위 부위원장 시절 국회와 겪었던 날 선 대립의 기억을 안고, 법사위에서 과격한 투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회의 과정에서 논쟁의 본질보다 상대를 자극하는 거친 언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모습은, 두 사람에게 국회가 새로운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라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갈등을 되갚는 연장선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당사자들의 국회 활동을 곧바로 복수 로 연결짓는 일은 지나칠 수 있겠으나, 지나치게 거친 행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국회의원의 권한은 개인적인 감정을 풀거나 과거의 수모를 되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방송과 통신의 공공성을 다루던 국가기관 출신들이 국회에 들어와 과거의 적대와 불신을 재현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이들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국회에 왔다고 보이겠는가.
표현의 자유나 정부를 향한 비판 권한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이지만, 논란을 야기한 뒤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상대 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가로막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권력의 불공정과 불합리여야 한다.
결국 과거 방통위를 둘러싼 방송장악 논쟁과 탄핵의 기억, 서로를 향했던 불신이 사람을 따라 감정 그대로를 안은 채 국회로 들어오는 순간 정치는 미래를 잃고 만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이상 과거의 직함과 상처는 내려놓아야 하며, 방통위의 험한 망령이 국회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 국민은 두 사람이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국회의원이 된 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고 싶어 한다. 정치는 복수혈전 이 아닌 오직 국민을 위한 무한한 책임이어야 한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