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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총 대신 펜을 들었다가 국적 박탈된 E.M. 레마르크

총 대신 펜을 들었다가 국적 박탈된 E.M. 레마르크
[사람들]
열여덟에 총알받이, 스물아홉에 필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는 독일 오스나브뤼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리히 파울 레마르크(Erich Paul Remark)였는데, 나중에 프랑스계 조상을 기리며 성의 철자를 레마르크(Remarque) 로 바꿨다. 발음은 비슷해도 철자는 전혀 다른 성이다. 열여덟이던 1916년 징집되어 서부전선에 배치됐고, 이듬해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 총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훗날 세계문학사를 뒤흔들 소설의 씨앗이 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10년, 레마르크는 신문잡지 편집 일을 전전하며 무명작가로 살았다. 그러다 1929년 내놓은 소설 하나가 그의 인생과 조국의 운명, 나아가 세계문학의 흐름까지 바꿔놓았다. 제목부터가 서늘하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참호 속에서 하루에도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데, 사령부 보고서에는 그저 이상없음 이라 적힌다는 잔인한 반어법이다. 사람 목숨이 통계 숫자 뒤로 사라지는 순간을 이보다 더 냉정하게 포착한 제목이 있을까.   1929년의 레마르크(위키피디아) 1929년 『서부전선 이상없다』 초판(위키피디아) 애국심이 없다 는 죄목 소설은 나오자마자 독일에서만 백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순식간에 각국 언어로 번역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너무 잘 팔렸다는 데 있었다. 전쟁을 영웅담으로 포장하려던 이들에게 레마르크의 담담한 묘사는 눈엣가시였다. 훗날 나치 선전장관이 되는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는 이 소설을 비애국적 이라 낙인찍었다. 1930년 베를린 영화관에서는 나치 돌격대원들이 영화 상영을 방해하며 흰쥐를 풀고 최루탄을 던지는 소동을 벌였고, 1933년 5월 베를린대학 앞 광장에서는 이 책이 수만 권의 다른 책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이유 하나로 매국노 취급을 받은 셈이다. 나치는 결국 1938년 레마르크의 독일 국적을 박탈했다. 총을 든 적도, 정치조직을 만든 적도 없이, 그저 책 한권으로 국가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1939년의 레마르크(위키피디아) 동생의 목숨값 정작 나치의 복수는 더 잔인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레마르크가 이미 해외로 망명해 손이 닿지 않자, 나치 법정은 1943년 그의 여동생 엘프리데 숄츠(Elfriede Scholz, 1903~1943)를 패전주의 발언 을 했다는 죄목으로 처형했다. 판사는 재판정에서 네 오빠는 우리 손이 못 닿는 곳에 있으니, 네가 대신 벌을 받아야겠다 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오빠가 지은 죄를 여동생이 대신 갚는 연좌제 방식, 낯설지 않다.    래미르크의 여동생, 엘프리데 숄츠(Elfriede Maria Remark Scholz (1903-1943) - Find a Grave Memorial) 국적 없는 세계시민 레마르크는 스위스를 거쳐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가 1947년 미국시민권을 얻었다. 이후에도 『개선문』, 『생명의 불꽃』 같은 반전 소설을 계속 써냈고,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와 오래 연인 관계였으며 말년에는 배우 폴레트 고다드(Paulette Goddard, 1910~1990)와 결혼했다. 1970년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그는 끝내 독일 국적을 되찾지 않았다. 나라가 그를 버렸는지, 그가 나라를 버렸는지는 이제 와서 따지기 어렵다.   1961년 스위스 론코에서의 레마르크와 폴레트 고다드(위키피디아) 지금 한국에 묻는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진짜 무서움은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있다. 전쟁이나 국가폭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순간, 누군가는 이상없다 는 보고서 뒤에 숨고 싶어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숱한 문학과 영화가 국가안보 라는 이름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이 몰래 블랙리스트로 작성되어 정부 지원에서 밀려났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지시에 의해 국회에 무장병력이 투입되던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이상없다 는 말이 오갔을 것이다. 레마르크의 죄는 딱 하나, 죽어가는 사람을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그린 것뿐이었다. 진실을 말한 자의 국적을 빼앗고 가족까지 처벌한 나치의 방식은 야만이라 손가락질하기 쉽지만, 권력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택하는 셈법은 시대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놀랍도록 닮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셈법을 철저하게 기억하고 되짚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뿐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1972년 6월 22일 베를린 비텔스바허슈트라세 5번지에 제막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기념 명판(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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