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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여왕이 인정한 짠물, 제트엔진 발명가 낳은 레밍턴 스파

여왕이 인정한 짠물, 제트엔진 발명가 낳은 레밍턴 스파
[사람들]
구두장이와 여관주인이 찾은 짠물 샘 영국 중부 워릭셔(Warwickshire)에 인구 5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가 있다. 이름은 레밍턴 스파(Leamington Spa)다. 스파 는 약수나 온천을 뜻하는데, 이곳 물은 뜨끈하지 않고 차갑고 짜다. 한국사람 열에 아홉은 처음 듣겠지만, 이 도시는 짠물로 왕실 칭호를 얻었고, 마당 공놀이로 세계 첫 잔디 테니스 동호회를 낳았고, 제트엔진 발명가를 키웠다. 본래는 레밍턴 프라이어스(Leamington Priors)라는 이름 없는 농촌마을이었다. 짠물 샘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땅 주인인 백작이 쥐고 있었다. 1784년 구두수선공 벤저민 새치웰(Benjamin Satchwell, 1732~1810)과 여관주인 윌리엄 애벗츠(William Abbotts, 1736~1805)가 애벗츠의 땅에서 두 번째 샘을 찾아냈다. 새치웰은 마을 첫 우체국장이기도 했다. 목욕탕은 1786년 문을 열었고 병자들이 몰려들었다. 맛이 고약할수록 약효가 크다고 믿기 쉬운 법이니, 짜고 쓴 물맛은 오히려 광고가 되었다. 요즘 쓴 한약광고와 족보가 같다. 새치웰은 돈만 좇지 않았다. 1806년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로 목욕과 치료를 베푸는 자선기관을 세웠고, 이는 훗날 워니퍼드 병원(Warneford Hospital) 설립으로 이어졌다. 마을을 일으킨 사람이 부자로 죽지는 못했으니 장사솜씨는 영 신통치 않았던 셈이다. 지금 도시에는 그의 이름을 단 술집이 있다. 평생 가난했던 사람이 술집 간판으로 남았다.   레밍턴 스파에 있는 더 퍼레이드 거리위키피디아) 왕실 두 글자의 값 1830년 열한 살 공주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가 이 마을에 들렀다. 즉위한 여왕은 이를 기억했고, 1838년 마을이 왕실(Royal) 이라는 칭호를 쓰도록 허락했다. 여왕은 1858년에 다시 찾았다. 이름 앞에 두 글자가 붙자 숙소와 목욕탕과 번듯한 거리가 줄줄이 들어섰다. 시청 앞에는 지금도 여왕의 동상이 서 있고, 1840년에는 옛 마을과 새 마을을 잇는 빅토리아 다리가 놓였다. 대통령이 다녀간 국밥집 이라는 간판이 아직도 먹히는 우리사정과 비슷하다. 중심건물은 1814년 문을 연 왕실 약수관(Royal Pump Rooms)이다. 지금은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쓰인다. 짠물 대신 지난 시간을 마시는 곳이 된 셈이다. 1838~39년에는 훗날 프랑스 황제가 되는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 1808~1873), 곧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ouis-Napoléon Bonaparte)가 망명 살이를 하며 이 도시에 머물렀다.   1833년 빅토리아 공주 초상화(위키피디아) 의사 한 사람이 남긴 공원 도시의 얼굴은 의사 헨리 젭슨(Henry Jephson, 1798~1878)이다. 그는 1820년대에 이 도시로 와서 1828년 자리를 잡았고, 물마시고 채소 먹고 많이 걸으라고 처방했다. 비싼 약 대신 산책을 권했으니 건강보험 없던 시절의 착한 처방이다. 동료의사는 그의 20년을 두고 전례 없는 성공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1848년 눈이 멀어 일에서 물러났다. 도시는 그를 잊지 않았다. 지주가 시민에게 내놓은 터에 1846~48년 공원이 꾸려지고 그의 이름이 붙었다. 젭슨 정원(Jephson Gardens)이다. 1849년에는 지붕 얹은 둥근 정자 안에 그의 동상이 섰다. 정작 그는 허세도 낭비도 없이 장례를 치러 달라고 했다니, 동상과 유언사이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   헨리 젭슨의 초상화(https://www.leamingtonhistory.co.uk/wp-content/uploads/2013/06/Jephson-port.-for-website.jpg) 마당에서 시작된 공놀이 레밍턴은 테니스에서도 할 말이 있다. 변호사를 겸하던 해리 젬(Harry Gem, 1819~1881) 소령과 스페인 출신 상인 후안 바우티스타 루이스 아우구리오 페레라(Juan Bautista Luis Augurio Perera, 1822~1905)는 1859년 무렵 버밍엄 에지배스턴(Edgbaston)의 풀밭에서 공놀이를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은 1872~73년 레밍턴으로 옮겼고, 1874년 지역의사 두 사람과 함께 세계 첫 잔디 테니스 동호회를 꾸렸다. 같은 1874년 월터 클롭턴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 1833~1912) 소령이 비슷한 놀이로 특허를 냈으니 원조 입씨름은 애초부터 있었다. 페레라는 1884년 도시를 떠난 뒤 오랫동안 행적이 흐릿했다. 원조다툼에서는 힘센 쪽이 이름을 남기고 외국인 장사꾼이 잊히는 법이다. 이 도시는 윌리엄 렌쇼(William Renshaw, 1861~1904)와 어니스트 렌쇼(Ernest Renshaw, 1861~1899) 쌍둥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윔블던을 휩쓴 형제지만 갓난아기 때 첼트넘으로 떠났으니, 자랑은 태어났다 까지만 허락된다. 1881년에 시작된 지역대회는 젭슨 정원에서 열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졌다.   1868년 버밍엄 라이플 의용군(Birmingham Rifle Volunteer Corps) 군복을 입은 해리 젬(위키피디아) 제트엔진을 키운 소년 가장 큰 인물은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 1907~1996)이다. 코번트리(Coventry)에서 태어난 그는 1916년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작은 공장을 사면서 레밍턴으로 옮겼다. 장학금으로 중등학교(훗날 레밍턴 칼리지)에 들어갔지만 집안형편이 기울어 오래 다니지 못했고, 도서관에서 기계와 비행이론을 파고들었다. 1923년 공군견습생이 되었고, 1935년 동료들과 파워 제츠(Power Jets)를 세워 1937년 제트엔진 시험가동에 성공했다. 정부는 처음에 그의 구상을 외면했다. 회사는 전쟁 중인 1944년 국유화되었다. 국유화는 그 자신이 제안했다고 전하지만, 팀은 흩어졌다. 그는 1948년 군을 떠나며 기사작위와 10만 파운드 포상금을 받았다. 세상을 바꾼 발명의 값으로 작위 한 장과 목돈이 돌아온 것이다. 후한 대접인지 박한 대접인지는 지금도 영국에서 말이 갈린다.    프랭크 휘틀 1943년(위키피디아) 레밍턴에서 한국을 보다 첫째, 지역소멸의 해법은 물이 아니라 살 만한 도시 였다. 레밍턴은 짠물에서 시작했지만 정원, 산책로, 도서관, 박물관을 쌓아 샘이 식어도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되었다. 온양이나 수안보처럼 한때 북적였으나 지금은 한적한 온천고장이 많다. 목욕탕과 숙박업소만 키우던 방식을 되돌아볼 때다. 둘째, 가난한 이웃의 치료다. 새치웰의 무료치료는 지방의료 공백과 맞닿는다. 사는 곳에 따라 치료받을 길이 달라지는 지금, 가난한 이웃이 먼저 아프고 늦게 치료받는 일이 없도록 공공의 몫을 따져 봐야 한다. 셋째, 공유지다. 한 사람이 내놓은 땅이 시민공원이 되고 그 이름이 세월을 넘겼다. 개발이 곧 이익이라는 믿음이 센 우리 땅에서 시민공원을 지키고 늘리는 일은 값진 유산이다. 넷째, 발명가와 연구자 대우다. 휘틀의 사례는 나라가 연구를 키우고도 보상에는 인색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직무발명에 합당한 몫을 돌려주는 일은 우리에게도 숙제다. 다섯째, 이름값이다. 왕실 두 글자보다 그 이름에 걸맞은 내용이 중요하다. 우리도 원조 와 생가 간판경쟁에 열을 올리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 따져야 한다. 짠물 마시던 도시가 240년을 버틴 까닭은 물맛이 아니라 사람을 아끼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레밍턴 스파 지역의 리엄 강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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