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분류한 사나이 아리스토텔레스 [칼럼] 스타게이라의 수재, 아테네로 유학 가다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의 작은 도시 스타게이라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라는 한 아이가 태어난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주치의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주치의 아들쯤 되는 셈이니 출발부터 금수저다. 열일곱 살에 아테네로 유학을 떠나 플라톤(Plato, 기원전 427~347)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간다. 스무 해 가까이 그곳에 머물렀으니 요즘 기준으로도 상당한 장기 유학생이다. 플라톤은 그를 두고 아카데미의 정신 이라 불렀다는 말도 있고, 반대로 너무 따지고 드는 성격 탓에 골치 아픈 제자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스승이 죽자 후계자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떠난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자기 아들의 가정교사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러들인다. 그 아들이 훗날 세계를 정복하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323)이다. 스승과 제자의 조합치고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력이지만, 정작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가 권력을 쥔 뒤에도 정치적 한자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아테네로 돌아가 리케이온이라는 학당을 세우고 강의와 산책을 병행했다. 그래서 그의 학파를 소요학파 라 부른다. 걸으면서 강의했다니, 요즘 회사로 치면 워킹 미팅의 원조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 흉상을 본뜬 로마 시대 복제품(위키피디아)
세상 모든 것을 분류하려 한 남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저작은 논리학, 생물학, 물리학, 윤리학, 정치학, 시학을 아우른다. 동물을 해부해 분류하고, 논증의 형식을 체계화하고, 비극이 왜 사람을 울리는지까지 분석했다. 한마디로 백과사전을 혼자서 쓴 사람이다. 물론 오류도 수두룩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고,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 적었으며, 노예제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정당화했다. 천재도 시대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그의 분류체계와 논리학은 이후 2천년 넘게 서양학문의 뼈대로 쓰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중용 사상 때문이다. 용기는 만용과 비겁 사이에 있고, 절제는 방종과 무감각 사이에 있다는 식이다. 극단은 늘 위험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정치체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틀을 세웠다. 군주정이 타락하면 참주정(폭군정)이 되고, 귀족정이 타락하면 소수의 이익만 챙기는 과두정이 되며, 민주정이 타락하면 대중의 감정에 휘둘리는 중우정, 즉 우민정치가 된다고 보았다. 좋은 정치체제란 저절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늘 타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미에자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학당(위키피디아)
죽어서도 쫓겨난 철학자
알렉산더가 갑작스레 죽자 아테네에는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들끓었다. 마케도니아 왕실과 가까웠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성모독 혐의로 고발당한다. 앞서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399)가 비슷한 혐의로 독배를 마신 사실을 잘 알았던 그는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 죄를 짓게 하지 않겠다 는 말을 남기고 도시를 떠난다. 이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끝까지 정치적 광풍을 피해 다닌 셈이다.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유럽에서 그의 저작 상당수는 잊혔다. 그런데 이슬람 학자들이 이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보존했다. 그중 이븐 루시드(Ibn Rushd, 1126~1198)의 주석은 훗날 유럽으로 역수입되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같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지혜가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돌아온 셈이니, 문명이란 것이 애초에 한 곳의 독점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1895년 장 레옹 제롬 페리스의 알렉산더를 가르치는 아리스토텔레스 (위키피디아)
한국에 주는 시사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 타락론을 오늘의 한국에 대입해 보면 섬뜩할 정도로 들어맞는다.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것은 제도가 무너져서가 아니라, 감정과 진영논리가 이성을 압도할 때 벌어진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령이라는 초헌법적 카드를 꺼내 든 사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경고한 참주정으로의 타락 이 21세기에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중용이 아니라 극단을 먹고 자란다.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알고리즘 시대에 중용 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다시 꺼내 드는 일이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극단을 거부하고 균형을 되찾아야 할 때다. 정치체제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시민이 감시하고 따져 묻지 않으면 어떤 체제든 타락한다. 그것이 2400년 전 그리스 북부 스타게이라 출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 한국에 남긴 숙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흉상. 리시포스가 제작한 소실된 청동상을 로마 제정 시대(서기 1세기 또는 2세기)에 모작한 것이다. (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