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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지순례’ 대전, 언제까지 ‘빵’ 터질까[사회혁신]
MBC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여름방학 과제로 제출한 르포기사를 이봉수 교수(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의 첨삭을 거쳐 에 연재한다.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두셋씩 짝을 지어 친구의 고향 도시를 방문해 익숙하거나 낯선 시선으로 사람들 삶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다리가 놓인 뒤 섬마을 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한다. 모교 주변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을 살펴보는가 하면 분당·일산 신도시 상가의 영고성쇠를 비교한다. 서울마음편의점에서 고립된 이웃에 시선을 돌리는가 하면 스스로 도심의 사찰에 머물며 청춘의 불안을 다스리기도 한다. (편집자)
천주교 신자에게 성지가 바티칸이라면, 빵을 사랑하는 이른바 ‘빵순이’와 ‘빵돌이’에게 성지는 대전이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빵을 찾아온 이들이 기차에 몸을 싣고 대전역으로 몰려든다. 목적지는 단연 인기 빵집 성심당. 교황이 방문해 축복을 내린 이곳은 이름부터 ‘거룩한 마음’을 뜻한다. 갓 구운 빵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대전 도심은 어느새 거대한 순례지가 된다. 성심당에서 시작한 발길은 주변 작은 빵집으로 이어지고, 방문객들은 저마다 ‘빵지’를 찾아 골목 곳곳을 누빈다. 빵을 향한 열정이 대전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대전은 어떻게 빵의 도시가 됐나
경부선∙호남선 개통과 함께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대전역.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 서나은
지난달 15일 오전 9시, 대전역은 아침부터 붐빈다. 대합실 한쪽에는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왼편으로 난 계단로는 반층 아래부터 줄이 이어진다. 줄을 따라가자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성심당 대전역점. 역사 밖으로 나와도 빵집을 찾아가는 사람들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늘날 대전역을 거치는 이들은 빈손으로 왔다가 빵을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돌아간다.
이처럼 밀가루를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 빵집과 칼국수집이 들어선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대전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열었다. 1912년에는 호남선이 개통했고, 대전역은 자연스레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분기역이 됐다. 철도를 따라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었다. 그렇게 대전은 물류와 상업의 중심지가 됐다.
1950년 6·25전쟁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의 구호물자인 밀가루가 교통의 요지인 대전으로 모여든 것이다. 밀가루는 빵과 국수, 수제비 등으로 가공돼 시민들의 식탁에 올랐다. 대전역 주변에는 제면공장과 빵집이 자리잡았다.
1960~70년대에는 서해안 간척사업 등 국가사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현금 대신 밀가루를 노임으로 지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동자들이 받은 밀가루를 대전역 주변에서 되팔면서 밀가루가 다시 대전으로 모였다.
밀가루 보급으로 시작된 빵과 칼국수는 그렇게 대전의 대표 식문화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선명하다. 대전세종연구원이 전국 인허가 및 개·폐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12월 기준 대전에는 칼국수 가게 727곳, 빵 가게 849곳이 있다. 인구 1만 명당 칼국수 가게는 5.0개로 전국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가장 많고, 빵 가게는 5.9개로 서울과 대구에 이어 세 번째다.
이런 흐름의 가운데서 한 빵집이 탄생했다. 1956년 12월, 임길순 씨는 서울로 가려고 기차에 올랐지만 대전역에서 열차 고장으로 발이 묶였다. 대전에 정착을 결심한 임 씨는 대흥동성당을 찾았다가 구호물자인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았다. 그 밀가루 두 포대는 찐빵이 됐고, 대전역 앞에서 처음 사람들과 만났다. 찐빵 천막 옆에는 작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거룩할 성(聖), 마음 심(心), 집 당(堂). 그 이름 아래는 피란길에서 살아남는다면 남은 생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임 씨의 다짐이 있었다. 두 포대의 밀가루로 시작한 작은 빵집은 그 마음을 나눔으로 이어가며 70년 가까이 대전과 함께 성장했다.
성심당만 보고 대전 왔죠”
성심당은 대전에만 6개의 빵 판매 지점을 두고 있다. 그중 본점은 중구 은행동에 있다. © 서나은
본점, 케익부띠끄, 옛맛솜씨, 성심당문화원, 우동야 등이 도보 3분 거리 안에 모여 있다. 일대 거리는 ‘성심당 스트릿’으로 불린다. © 서나은
대전역에서 15분 남짓 걸어가면 성심당 본점이 있다. 8월 중순의 후덥지근한 날씨는 비까지 동반했지만 빵을 사러 온 인파는 여느 때 못지 않았다. 예상 대기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본점 바로 옆 케익부띠끄 대기줄은 건물을 둘러싸고 250여미터 늘어서 있었다.
케익부띠끄는 ‘딸기시루’ ‘망고시루’ 등 ‘시루’ 케이크 시리즈로 SNS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시루 케이크는 시루떡처럼 제철 과일과 크림을 겹겹이 쌓아 올린 성심당의 시그니처 디저트다. 2023년 2월, ‘딸기시루’가 처음 출시됐다. 이 딸기시루가 SNS에서 일명 ‘가성비 케이크’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었고, 성심당은 밤·귤·망고 등 제철 과일을 활용한 시루 케이크를 잇따라 출시했다. 시루 케이크의 화제는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2023년 매출은 1243억원으로 전년(817억원)보다 50% 넘게 늘었다.
인스타에 블루베리 시루가 떠서 이틀 전에 갑자기 오기로 결심했어요.”
김모 씨(28·여)는 원주에서 첫 차를 타고 대전에 왔다. 대전 방문 목적은 오직 성심당이다. 빵을 산 뒤 일정은 이제 줄을 서면서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성심당의 무엇이 먼 타지 사람들을 대전까지 오게 만드는 걸까? 그녀는 요새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성심당 빵은 싸고 재료가 많이 들어있지 않냐”며 즉답했다.
역시 동탄에서 2시간 30분 걸려 왔다는 박진원 씨(56·여)는 다섯 번 정도 왔는데 올 때마다 30만원씩은 사가는 것 같다”며 성심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빵을 산 뒤에는 주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주변 맛집이 많아서 매번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어요.”
성심당 옆에서 살아가는 법
성심당 근처 빵 보관소. 성심당의 인기는 새로운 서비스와 소비 행태까지 만들어냈다. © 염지원
‘성심당 스트릿’을 걷다 보니 성심당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바로 ‘빵 보관소’. 들고 다니기 무거운 빵과 케이크를 냉장고에 보관해주는 곳이다. 지상에도 있고, 케익부띠끄 대로변 계단으로 내려가는 지하상가에도 몇 곳이 있다. ‘빵 보관소’를 지도에 검색해보니 도보 5분 거리에만 10개가 있다. 직접 지상의 두 곳, 지하의 세 곳을 확인해봤다. 냉기가 가득 나오는 냉장고에는 대부분 초록색, 노란색 가방이 들어 차 있다. 성심당 케익부띠끄의 보냉백이다. 성심당 근처에서 만난 박모 씨(28·여)는 빵 보관소가 있어서 여름에도 마음 놓고 케이크류를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심당 본점 맞은편에 있는 ‘으능이랑 성심이랑 상생센터’는 빵 보관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내부에는 대전 관광 책자와 명소 사진이 배치돼 대전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 메모지와 펜이 놓인 쪽 벽면에는 방명록, 빵 추천, 꿈돌이 그림 등 이곳을 오간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빵을 먹을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직원 이모 씨는 하루 100명 정도는 이용하러 오는 것 같다”며 거의 다 성심당 빵”이라고 덧붙였다.
성심당과 주변 상권은 서로 존재를 활용하는 식으로 상생하고 있다. © 서나은
‘성심당 빵 취식 가능’. 근처 카페 배너에 써 있는 큼지막한 글씨가 눈길을 끈다. 카페 ‘넬롱’은 올해 1월, 개업할 때부터 ‘성심당 빵 취식 가능’을 대대적으로 내걸었다. 성심당 임영진 대표가 오픈 축하 화분을 보내오기도 했다. 직원 최모 씨에 따르면 성심당 빵을 가져오는 손님이 전체의 반 이상이다. 그는 일부러 신메뉴를 개발할 때도 성심당 빵이랑은 안 겹치게 한다”며 상생의 비결을 설명했다.
이처럼 성심당 빵을 먹을 수 있는 ‘빵키지’ 가능 카페는 곳곳에 있다. 이는 오프라인 현수막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카페의 차별화한 홍보 요소로 활용된다.
‘노잼도시’에서 ‘빵의 도시’로… ‘빵시투어’
‘이천 하면 쌀, 예산 하면 사과’라는 말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도시의 이미지를 만든다. 한때 ‘노잼도시’라는 별명이 따라붙던 대전에도 새로운 공식이 생겼다. ‘대전 하면 빵’이다. 일부는 성심당의 압도적인 인기를 빗대 대전을 ‘성심광역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대전의 빵 열기를 성심당 하나의 성공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대전을 여러 차례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제 성심당만 찾는 게 아니다.
대전 트래블라운지 앞 ’빵시투어’ 버스와 코스 간판. © 서나은
대전시는 이런 흐름에 주목해 지난해부터 공식 시티투어 프로그램인 ‘빵시투어’를 운영한다. 하루 동안 대전의 대표 빵집 네 곳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성심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전의 빵 관광 수요를 도심 곳곳의 지역 상권으로 연결하려는 시도이다. ‘빵시투어’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참여해 보았다.
오전 10시 30분. 대전 트래블라운지 앞 버스 승강장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흐린 하늘 아래 밝은 파란색 ‘빵시투어’ 버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참가자들의 표정에도 기대감이 번진다. 버스에 오르기 전부터 어디서 무슨 빵을 살지 묻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참가자들이 향한 곳은 대전의 유명 빵집 네 곳. 첫 목적지는 대덕구 한남대 인근 ‘몽심’이다. 아직 오전 11시가 안 됐지만 가게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매장 문이 열리자 달콤한 빵 냄새가 퍼진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주문한 빵을 받아 들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인천에서 온 최고은 씨(32·여)는 평소 빵을 좋아해 인터넷으로 빵집을 검색하다 ‘빵시투어’를 알게 됐다고 한다. 최씨는 교과서에서 지역마다 대표 특산물이 있다고 배웠는데 대전은 이제 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빵만을 사러 대전까지 오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빵시투어’ 중 만나볼 수 있는 몽심의 인기 빵들. © 서나은
버스는 달콤한 냄새를 가득 안고 달린다. 다음 목적지는 슬로우브레드, 콜드버터베이크샵, 하레하레 둔산점. 투어 참가자들은 매장에 들어갈 때마다 진열대를 천천히 살피며 가게의 대표 메뉴를 골랐다. 천연 발효종을 활용한 빵부터 가루쌀을 활용한 제품까지 빵집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경북 구미에서 온 황우찬 씨(24·남)는 대전에는 성심당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투어를 통해 다른 동네 빵집도 많이 알게 됐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빵시투어가 단순히 유명 빵집을 돌아보는 관광 프로그램을 넘어, 관광객에게 대전의 새로운 빵집과 골목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전, ‘빵’ 터졌다
지역 상인들도 변화를 체감한다. 하레하레 둔산점 김민경 대리는 빵 도시로 입소문이 난 뒤 최근 몇 년 사이 매장을 찾는 손님이 확실히 늘었다며 현장에서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성심당에서 시작된 관심이 다른 빵집으로 옮겨가고, 다시 지역 상권으로 퍼지는 흐름이다.
하레하레 둔산점에서 인기 빵을 구매하려 줄 선 사람들. © 염지원
실제 수치에서도 대전의 ‘빵 인기’는 확인된다.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의 ‘2025 여행자·현지인 국내 여행지 평가 및 추천 조사’에서 대전은 디저트 여행지 추천율 46.9%를 기록하며 전국 광역시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서울은 28.6%, 제주도는 27.2%였다. 대전이 서울을 18.3%포인트, 제주를 19.7%포인트 앞선 것이다. 전통적인 관광 강자인 서울과 제주를 제치고 특정 먹거리 분야에서 대전이 압도적인 추천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빵을 매개로 한 도시의 축제도 성장하고 있다. 2021년 시작된 대전 빵 축제에는 2025년 약 16만 명이 방문했다. 빵집 하나의 인기를 넘어 도시 전체가 빵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전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빵의 수도다.
빵 너머에 답이 있다
빵의 도시로 떠오른 대전 앞에는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대전을 찾는 관광객이 빵만 사서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과거 대전역은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기차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승강장에서는 뜨거운 가락국수 한 그릇을 빠르게 비운 뒤 다시 기차에 오르는 풍경이 익숙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온 방문객이 빵을 사기 위해 대전에 내리고, 양손 가득 종이가방을 든 채 다시 기차에 오른다.
성심당 빵 봉투가 가득한 대전역 대합실. © 서나은
그러나 대전의 본질은 잠깐 들렀다 떠나는 정거장에서 변하지 않았다. 빵을 사고 떠나는 사람을 더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성심당의 명성과 빵시투어의 인기가 대전의 다른 문화로 이어져야 한다. 빵을 사기 위해 대전에 온 사람이 하루 더 머물며 골목을 걷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다시 찾고 싶은 장소를 발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전은 이미 사람을 불러모으는 강력한 이유가 하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강력한 이유에 홀린 발걸음을 빵집 밖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달콤한 빵 냄새를 따라온 여행객이 종이가방만 들고 떠나는 도시가 될 것인지, 빵을 계기로 도시 곳곳에 짐을 풀고 오래 머무는 여행지가 될 것인지. ‘빵의 도시’ 대전의 다음 과제는 이제 빵 너머에 있다.
서나은·염지원 기자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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