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기형적 증언이 남긴 나치즘의 흉터 [뉴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신체적 성장의 거부와 기괴한 증언의 미학을 통해 집단적 죄의식, 역사적 위선, 그리고 서구 근대 이성의 파산을 철학적으로 해체하는 거대한 문학적 비판극이다. 정신병원의 흰 철제 침대에 갇힌 주인공 오스카 마체라트가 두드리는 양철북 소리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 문명의 도덕적 몰락과 그 한복판에 자리한 서구 인간상의 부조리를 비추는 참혹하고도 차가운 거울이다. 세 살의 나이에 스스로 지하 계단으로 몸을 던짐으로써 신체적 성장을 정지시키기로 결심한 오스카의 행위는 단순한 아이의 투정이 아니라, 파시즘과 부르주아적 가식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세계에 던지는 실존주의적 거부권 행사이자 근대적 발전 및 성장 담론에 대한 결정적인 모독이다.
오스카가 택한 성장의 정지는 기독교적인 아동기 순수함으로의 도피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라는 매끄러운 이름 뒤에 숨은 야만에 참여하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의식적인 반항이자, 비정상성을 도구화하여 정상의 가식을 폭로하는 고도의 생정치적 전략이다. 그는 세 살 아이의 체구라는 무해한 위장 막 뒤에 어른보다 더 영악하고 냉혹한 관찰자의 의식을 숨긴다. 어른들은 그를 도덕적 판단력이 없는 무지한 존재로 간주하며 자신들의 욕망과 추악함을 가림 없이 드러내지만, 오스카는 그들의 불륜과 이기심, 그리고 나치즘의 광기에 점진적으로 중독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늘하게 관조한다. 이로써 오스카는 역사의 비극을 증언하는 주체인 동시에, 어른들의 무관심과 기만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잔혹한 공범으로서 20세기 비극의 중심에 서게 된다.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상징인 양철북과 유리를 깨뜨리는 고함 소리는 아도르노적 의미에서의 비판적 부정성의 미학을 명확히 구현한다. 나치당의 대규모 집회장 단상 아래에 숨어 들어간 오스카가 제복 입은 군중의 절도 있는 행진곡에 맞서 양철북을 두드려 박자를 왈츠와 폴카의 무질서한 카오스로 유도하는 장면은, 파시즘이 창출한 엄격한 집단적 기율과 광기를 무력화하는 예술적 교란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교하게 조직된 정치적 선동과 권력의 미학화가 한 아이의 우스꽝스럽고 일탈적인 북소리 하나에 허무하게 깨어져 나가는 모습은, 집단적 광기가 의존하고 있는 이념적 토대가 얼마나 허약하고 자의적인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또한 날카로운 고함으로 투명한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는 오스카의 초능력적인 목소리는 일상의 안전망 뒤에 숨어 평온을 누리려는 부르주아 소시민들의 가식적 삶을 깨부수는 절대적 부정의 언어이다. 유리는 안과 밖을 분리하면서도 내부의 안온함을 보장하는 문명화된 사회의 가시적 장치이지만, 오스카의 목소리에 의해 분쇄됨으로써 그 파편은 소시민들의 이기주의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그러나 그라스는 이러한 북소리와 고함을 세상을 구원하는 숭고하고 도덕적인 저항의 도구로 절대 신화화하지 않는다. 오스카의 북소리는 종종 사적인 복수나 개별적인 욕망을 관철하기 위한 이기적 수단으로 사용되며, 이는 숭고한 영웅주의마저 해체해 버리는 그라스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회의주의를 반영한다.
그라스가 구축한 오스카라는 인물의 윤리적 모호성은 전후 독일 사회가 짊어져야 했던 집단적 죄의식의 복잡한 층위를 정확히 겨냥한다. 오스카는 자신의 친부이자 외삼촌인 얀 브론스키가 나치에 의해 처형되도록 방조하고,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알프레드 마체라트가 나치 당원 배지를 삼키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그는 나치 극단의 위문공연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전선의 광기에 일조하기도 하며, 전후에는 석공, 누드 모델, 재즈 음악가로 전전하며 시대의 기회주의적 흐름에 몸을 맡긴다. 이처럼 오스카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저항자이자 방관자라는 이중성을 띤다. 칼 야스퍼스가 구분한 형사적, 정치적, 도덕적, 형이상학적 죄의식의 구도는 오스카라는 기형적 인물 안에서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파시즘의 비극은 몇몇 악마적인 지도자들의 광기 때문만이 아니라, 일상의 평온을 위해 눈을 감고 소소한 이익을 위해 타인의 비극을 묵인했던 대다수 평범한 소시민들의 집단적 방관과 무감각 위에서 피어난 것임을 오스카의 모호한 행적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 오스카는 마침내 성장을 재개하지만 그 성장은 아름다운 성인으로의 완성이 아닌 기형적인 척추장애인이 되어가는 왜곡된 성장에 불과하다. 1950년대 독일 사회가 아데나워 정부의 경제적 번영, 즉 라인강의 기적 을 이루며 과거의 죄의식과 수치를 물질적 풍요 속에 손쉽게 묻어버리려 했을 때, 오스카의 구부러진 등과 흉측하게 비틀린 신체는 과거의 기억이 결코 깔끔하게 매장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물질적 흉터로 기능한다. 과거의 죄와 참상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은 채 단행된 급작스러운 물질적·외형적 성장은 결코 정상적인 인간성의 회복을 가져올 수 없으며, 오직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의 역사적 부채감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사실을 오스카의 굽은 등은 강렬하게 경고한다.
마침내 살인 누명을 쓰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수감되기를 선택하는 오스카의 마지막 행보는 자유와 광기에 대한 역설적인 담론을 완성한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 과 광기 의 경계는 권력의 기획에 의해 구축된다. 집단적 광기가 정상 의 탈을 쓰고 세계를 파괴하던 야만의 시대에, 사회 전체는 이미 거대한 정신병원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철창과 흰 벽으로 둘러싸인 진짜 정신병원이야말로 가식적인 세상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진실을 기록하고 진정한 정신적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망명지가 된다. 흰 침대 프레임의 창살 사이에서 과거의 참상을 반추하며 끊임없이 양철북을 두드리는 오스카의 모습은, 망각을 강요하며 번영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 맞서 기억의 의무를 다하려는 서구 지성사의 고독하고도 참담한 몸부림이다.
《양철북》은 하이퍼리얼리즘과 마술적 사실주의, 그리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결합하여 인간 존재의 도덕적 한계와 역사의 비극성을 직시하게 만든다. 스스로 성장을 멈춤으로써 시대를 관찰하고, 척추장애를 안음으로써 과거의 짐을 짊어지며, 정신병원에 갇힘으로써 기억을 기록하려 했던 오스카의 왜곡된 실존은, 거대한 시스템의 야만성에 마주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저항의 한계와 그에 따른 비극적 대가를 서늘하게 되묻는다. 역사의 광기 속에서 완전한 무죄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굽은 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북을 두드리는 지치지 않는 증언만이 인류가 구원에 다다를 수 있는 유일하고 아득한 길임을 이 소설은 묵직하게 증명한다.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년 10월 16일 ~ 2015년 4월 13일)는 나치즘의 역사적 과오를 신랄하게 고발해 199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지성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양철북》, 《고양이와 쥐》, 자서전인 《양파 껍질을 벗기며》 등이 있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