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천황 대신 38촌 남성이 승계 …일 우익 성차별 꼼수 [뉴스] 남계남자 대가 끊길 위기로 고심 중인 일본 천황가. 지난 2월 23일 나루히토 천황(왼쪽 세 번째)의 생일을 맞아 일반인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천황 일족. 왼쪽부터 나루히토 천황의 남동생 후미히토 황세제 부부, 천황과 마사코 황비 부부, 아이코 공주, 후미히토 황세제의 아들인 히사히토 왕자 부부. 아사히신문 7월 19일
지난 17일 ‘천황’ 계승권을 둘러싼 문제를 확정한 ‘개정 황실전범’이 일본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음날 일본 신문사들이 이와 관련한 국민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매우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번 개정을 자신들 주장대로 강압적으로” 관철시킨 자민당과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에 대한 지지도도 크게 떨어졌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 41%, 개정 황실전범 반대 60%
마이니치신문이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정부) 지지율은 지난번 조사(6월 20~21일) 때의 51%에서 10%p나 급락한 41%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44%)는 비율도 처음으로 ‘지지한다’보다 많아졌다.
아사히신문이 같은 기간에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전화)에서는 우선 이번 황실전범 개정이 국민의 이해를 얻었는지 여부를 물은 질문에 ‘얻었다’고 한 응답은 24%, ‘얻지 못했다’는 응답은 무려 60%가 넘었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53%로, 마이니치신문 조사 결과보다는 그래도 조금 나았으나, 역시 지난 6월 조사 때의 60%에서 7%p나 떨어졌다. 아사히는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뒤 줄곧 60%대를 유지해 오던 내각 지지율이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며,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비율은 35%로, 6월 조사 때의 27%에서 8%p나 올라갔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여론조사 응답자의 32%를 차지한 ‘자민당 지지층’의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87%로 기존의 90% 안팎 수준을 유지했지만, 응답자의 45%를 차지한 ‘무당파층’의 내각 지지율은 36%로, ‘지지하지 않는다’(42%)는 비율보다 6%p나 낮았다. 이처럼 무당파층에서 ‘지지하지 않는다’가 ‘지지한다’는 응답보다 더 많이 나온 ‘역전’도 이번이 처음이다.
황실전범 개정이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전체보다 낮은 42%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 49%보다 7%p 낮았다. 이는 이번 황실전범 개정이 내각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끼쳤음을 보여 준다.
내각 지지율 추이. 왼쪽은 전임 이시바 시게루 내각, 오른쪽은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빨간선은 지지하지 않는다 , 파란선은 지지한다 . 출범 초기 60%를 훨씬 넘겼던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이 7월에 53%로 떨어졌다. 같은 날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는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이 41%로 나왔다. 아사히신문 7월 19일
황실전범 개정의 핵심은 여성 천황 절대 불가”
이번 개정 황실전범의 핵심은 ①여성 황족은 결혼 뒤에도 황족신분을 유지한다는 것, 그리고 ②1947년 개정 때 황족에서 이탈한 구(옛)11황실가 남계남자(男系男子)를 양자로 맞을 수 있다는 2가지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개정의 진짜 목적은 ‘여자는 천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분명하게 못박은 것이다.
①의 경우 여성 황족이 평민 남성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여성은 황족 신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여성이 낳은 아이와 남편은 황족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 자식들은 남자라도 천황이 될 수 없다.
②의 경우는 더 기이한데, 세월과 함께 멀어진 옛 천황족 남성을 천황가가 양자로 맞아들일 수 있으나 그 남성은 천황이 될 자격이 없고 그 양자 부부가 남자아이를 낳을 경우에는 황위계승 자격이 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여자아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된 황실전범 개정안. 뒷 벽에 총241석 중 찬성 184, 반대 57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됐다. 마이니치신문 7월 20일
‘만세일계’ 천황에 대한 보수우익 집착이 만든 기형
이런 괴상한 규정을 만든 이유는 천황은 고대 1대 때부터 남계남자로 이어져 왔다는 자민당 등 보수우익 주류세력의 ‘만세일계(萬世一系)’ 신화에 대한 집착이다. 예컨대 지금 나루히토 천황에겐 아들이 없고 외동딸 아이코 공주가 있으나 여계(女系)에겐 천황 계승권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천황이 될 수 없다.
실은 이것이 황실전범 개정까지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나루히토(66) 천황이 남계 직계후손(아들)을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아이코 공주가 그 뒤를 이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본 보수우익 주류는 ‘그것은 절대 아니되옵니다’는 자세를 거둘 생각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현실 일본 정치사회의 실세들이고 천황은 현실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다. 이른바 ‘상징 천황’이 국민 사이에 구심력 발휘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나 일본을 통치하는 것은 정치권력이다.
‘남계남자’ 혈손 끊어질 위기에 대한 대비책
그러면 아이코 공주 외에 지금 천황가에 남계혈손이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루히토 천황의 친남동생(후미히토 황세제)이 있고 그의 아들이자 나루히토 천황의 조카(히사히토)도 있다. 이이코 공주가 안 된다면 다음 천황은 히사히토가 천황직을 계승할 수 있다.
문제는 만일 히사히토마저 남자 후손이 없을 경우, 일본 천황가는 계승자를 잃고 대가 완전히 끊길 수 있다. 옛황족 11가문 출신 남자를 양자로 들일 수 있게 하자는 얘기는 만일의 경우 황족 범위를 넓혀서라도 남계남손의 전통을 이어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후계자 풀을 넓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자는 계산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황족 범위를 넓힐 경우 지금 현재 양자가 될 수 있는 남성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나루히토 천황과 36~38촌의 먼 친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천황가와는 완전히 남이나 다름 없는 사실상 평민인 그 남자가 바로 천황이 되면 모양이 이상하게 되니, 일단 양자로 들어 온 바로 그 사람은 안 되고 그 양자와 천황가 또는 가까운 가문 여성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에게 천황계승권을 주자는 것이다. 그때도 물론 여자아이는 안 된다.
일본 나루히토 천황의 딸인 아이코 공주가 새해를 맞아 일본 도쿄 황궁 발코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26.1.2. [EPA=연합뉴스]
공주보다는 38촌 평민이라도 남자에 계승권
대다수 일본인들은 여야 합의사항까지 어겨가며 남계남자에 집착해 사실상 평민인 36~38촌까지라도 양자로 삼아 ‘만세일계’ 혈통을 잇게 하겠다면서 진짜 직계 친혈족 아이코 공주는 여자이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그리고 다카이치 총리의 시대착오적인 외고집에 화를 내고 있다. 그것이 이번 여론조사 결과로 어느 정도 드러난 셈이다.
일본 국민의 70~80% 이상은 아이코 공주의 천황 즉위를 찬성하고 있다. 성차별적인 남계남자에 집착하는 일본 지도부의 외고집은 일본 대다수 국민들에게도 고리타분한 시대착오로 비치고 있지만, 지도부의 흔들림없는 복고적·퇴행적인 ‘만세일계’ 집착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네덜란드 등 유럽의 왕가들 중엔 여왕들이 많다.
황실전범 개정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개정 찬성(이해를 얻었다) 24%에 비해 반대가 60%로 훨씬 더 많았다.(위) 옛황족 양자 입양자의 남성 천황계승자격에 대해서는 찬성(납득할 수 있다) 43%에 비해 반대 45%가 더 많았다.(아래) 아사히신문 7월 19일
국민여론 72% 여성 천황 인정해야 한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개정 황실전범에 대한 찬부를 묻는 질문에 ‘평가(찬성)한다’는 응답은 19%였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45%, ‘모르겠다’ 35%였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층은 평가한다가 38%, 평가하지 않는다가 20%, 모르겠다는 41%였다. 다카이치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는 개정 황실전범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한 사람이 77%로 압도적 다수였으며 ‘평가한다’는 5%에 지나지 않았다. 18%는 ‘모르겠다’고 했다.
여성 천황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는 전체의 72%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응답했으며,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지지층도 60% 이상이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는 응답을 했다. 보수우익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 지지자들 60~90%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답해, ‘인정할 필요 없다’를 훨씬 능가했다.
결혼 뒤에도 황족 지위를 유지한 여성에게 남자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천황계승자격이 인정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는 응답이 50%, ‘인정할 필요 없다’는 응답은 18%였다.
남성 위주 ‘선택적 부부별성제’도 논란거리
‘선택적 부부별성제’도 지금 일본에서 논란거리다. 선택적 부부별성제(選擇的 夫婦別姓制)란 결혼할 때 부부가 같은 성(姓)을 쓸지 남녀가 각기 다른 성을 쓸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제도인데, 지금 일본은 결혼하면 부부가 모두 남자의 성으로 통일하도록 법률적으로 규정해 놨다. 메이지 유신 30년 뒤인 1898년 이후 지금까지 법률로 부부동성(同姓)을 의무화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냥 부부동성이 아니라 남자 성으로의 통일이다.
이것이 개인 존엄이나 젠더 평등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고 해서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현행 법률하에서 95% 이상의 일본 여성들이 자신의 원래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꿨는데, 그 때문에 여성들은 기존의 성을 쓸 수 없어 경력 단절 외에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여권을 다시 신청할 때 여러 가지로 번잡한 절차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써 오던 성을 바꿔야 해서 혼돈과 저항감 등 정신적 고통도 적지 않았다. 이는 국제적인 흐름과도 어긋난다. 이 때문에 유엔 등 국제기구가 개선을 권고해 왔다. 주요국들 중에서 부부동성을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대다수 나라들처럼 결혼한 부부일지라도 각자의 성을 선택하게 하면 해소될 문제지만, 천황 계승문제처럼 일본 주류 지배세력의 ‘전통’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그 전통도 메이지 유신 뒤의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렇다. 그들 지배세력은 근대 이후 승승장구했던 ‘대일본제국의 영광’에 취해 여전히 그 부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주변국들에게는 얼마나 큰 손실과 고통을 안겼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들이 바뀌어 가는 여론을 의식해 그나마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부부동성제 폐지가 아니라 부부 별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것이다.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