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90% 수입하는 싱가포르, 7500억 기후적응기금 만든다 [환경] 식량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싱가포르가 극단적인 이상기후로부터 역내 식량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해 5억달러(약 7500억원) 규모의 기금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 금융감독기구인 통화청(MAS)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농업 및 양식업 부문을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후적응 펀드(Adaptation Fund)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현재 민간 금융권에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지 농수산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싱가포르가 2027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 만큼 이르면 내년 초 기금이 출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로런스 웡(Lawrence Wong) 싱가포르 총리도 2027년 의장국의 주요 의제로 아세안의 ‘집단적 회복력(collective resilience)’ 강화를 제시한 바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이 싱가포르가 극단적인 이상기후로부터 역내 식량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해 5억달러(약 7500억원) 규모의 기금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MAS 웹페이지
‘30 by 30’에서 방향 틀었다…자급보다 공급망 회복력
싱가포르 정부는 당초 2030년까지 국민의 영양 수요 30%를 국내 생산으로 충당하겠다는 ‘30 by 30’ 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땅이 좁은 만큼 수직농장과 첨단 양식, 대체단백질 같은 애그테크가 핵심 수단으로 꼽혔다.
하지만 높은 토지·인건비와 에너지 비용 때문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싱가포르 정부도 2025년 의회에서 투자 감소와 높은 에너지 가격, 국내 농장의 높은 생산비용 등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30 by 30’ 전략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결국 싱가포르는 지난해 기존 목표를 ‘싱가포르 푸드 스토리 2’로 바꿨다. 새 전략의 핵심은 국내 생산 하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수입선 다변화, 글로벌 파트너십, 비축, 국내 생산 등 네 가지 축을 동시에 구축한다. 국내 생산 목표도 2035년까지 채소·버섯 등 식이섬유 식품 소비량의 20%, 계란·수산물 등 단백질 소비량의 30%를 공급하는 것으로 좁혔다.
싱가포르 식품청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식량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지만 조달처는 180개가 넘는 국가와 지역으로 분산돼 있다. 즉 ‘얼마나 많이 자급하느냐’에서 ‘한 지역이 무너져도 다른 공급망으로 얼마나 빨리 전환할 수 있느냐’로 식량안보의 개념을 바꾼 셈이다.
에너지 전환 모델을 식량에 적용
이번 싱가포르 발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금융 조달 방법이다. 개발금융기관(DFI)과 민간 자본을 매칭하는 방식으로 조달될 계획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자선 재단 등을 참여시켜 초기 투자 손실 위험을 흡수하는 위험 분담 메커니즘을 적용하고, 저금리 자본을 공급해 일반 상업은행과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혼합 금융(Blended Finance) 방식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이미 비슷한 모델이 있다. 2023년 출범시킨 ‘아시아 전환금융 파트너십(Financing Asia s Transition Partnership·FAST-P)’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최대 5억달러(약 7500억원)의 양허성 자본을 제공해 최종적으로 50억달러(약 7조5000억원)의 민간·공공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다.
FAST-P 산하 에너지전환 가속금융 파트너십(ETAF)은 지난 6월 1차로 2억5000만달러(약 3750억원)를 확보했다. 전력망 현대화와 석탄발전 대체 등 일반 금융기관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자금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 프로젝트가 투자 대상이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그룹(DBS Group)도 선순위 대출기관으로 참여했다.
싱가포르가 이번에 검토하는 식량 기금 역시 이 구조를 농업과 수산업에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