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이끄는 잠재성장률 약진…재분배 힘쓸 때 [뉴스]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상승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AI패권전쟁에 힘입은 반도체 메가 사이클 덕에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인 성장 잠재력까지 회복되는 흐름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반도체에 집중된 성장 과실을 다른 산업과 취약계층으로 나눠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민소득 증가분의 80%를 기업 등이 가져가고 노동자들의 몫이 너무 적은 것으로 드러난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도 나온만큼 정부는 재분배 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 것이다.
‘3저 호황’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2년 연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돼
18일 IMF의 10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4%에서 올해 2.14%, 내년 2.20%로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0.20%포인트(p) 반등하는 데 이어 내년에도 0.06%p 추가 상승하는 경로다. 2023년 2.06%에서 2024년 1.96%로 하락했다가 올해 다시 2%대로 올라서게 된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불안을 유발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생산 수준인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이다. 경기 부양으로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 실질 GDP 성장률과 달리 경제의 성장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IMF 한국경제 상승 전망 (PG) [장현경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이 수치가 반등한다는 것은 고령화와 노동 공급 감소 등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이례적으로 성장 여력이 확대된다는 의미다.
이번 잠재성장률 전망치는 IMF가 제시한 한국의 실질 GDP와 GDP갭률(실제 GDP가 잠재 GDP를 웃돌거나 밑도는 정도)을 토대로 역산한 결과다.
IMF가 한국의 연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3.33%, 내년 2.83%로, GDP갭률을 올해 0.548%, 내년 1.168%로 각각 전망한 점을 반영했다.
IMF 자료의 과거 시계열을 같은 방식으로 역산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높아지는 것은 ‘3저 호황’ 때인 1986∼1987년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에는 1985년 9.67%에서 1986년 9.77%, 1987년 9.91% 등으로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기저효과 등으로 2010년과 2021년 잠재성장률이 한해씩 반등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듬해까지 흐름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한국 잠재성장률은 장기간 하락 추세를 이어왔다.
2010년 4.05%에서 이듬해 3.67%로 하락했고, 2018년 2.97%로 2%대, 2020년 1.28%로 1%대로 내려앉았다.
올해 추산치인 2.14%는 2021년 2.23%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지난해 1.85%, 올해 1.66%, 내년 1.52%로 추산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IMF 크게 다른 수치를 내놨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말 2027년 NABO 경제전망 에서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2.14%에서 올해 2.22%, 내년 2.28%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실질 GDP 성장률 전망 상향과 AI·반도체 투자 확대, AI 확산에 따른 생산성 개선 효과 등을 반영했다.
한국의 아웃풋갭.잠재성장률.실질성장률, 자료 : IMF10월 세계경제전망 분석
내년 잠재성장률 27개국 중 7위…‘영프일독’보다 높아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잠재성장률을 계산할 수 있는 27개국 가운데 한국은 올해와 내년 모두 7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는 12위였다.
올해는 몰타(4.10%), 키프로스(3.39%), 덴마크(2.68%), 슬로베니아(2.53%), 스페인(2.50%), 미국(2.33%) 다음이다.
내년에도 몰타(4.04%), 아일랜드(3.88%), 키프로스(3.29%), 슬로베니아(2.53%), 덴마크(2.34%), 미국(2.29%) 뒤 순서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미국뿐이다. 한국은 올해와 내년 모두 영국(올해 1.29%, 내년 1.26%), 프랑스(0.85%, 0.85%), 일본(0.82%, 0.84%), 독일(0.64%, 0.70%) 등 주요 선진국을 크게 웃돈다.
잠재성장률 추산의 근거가 되는 한국의 GDP갭률 순위는 지난해 20위(-0.610%)에서 올해 6위(0.548%), 내년 1위(1.168%)로 올라선다. 내년 2위 그리스(0.750%), 3위 덴마크(0.737%)와도 격차가 크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공조를 통한 잠재성장률 반등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확장 재정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엇박자’ 지적에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높아지면 엇박자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잠재성장률 3%를 목표로 제시했다. 수출 세계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까지 포함한 ‘3·4·5 경제 대도약’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이어 가장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던 잠재성장률까지 반등하면서 3·4·5 목표에 성큼 다가서는 모습이다.
대한항공 화물기에 실려 세계로 향하는 K-반도체 [연합뉴스 자료사진]
IMF는 이번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를 4만 3512달러로 4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봤다.
나아가 내년 4만 9277달러에 이어 2028년에는 5만 2100달러로 2년 만에 5만달러까지 넘어선다는 전망을 내놨다. 2031년에는 5만 9919달러로 6만달러에 육박한다고 예상했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올해 수출 사상 첫 1조달러 돌파와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내다보며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로 잠재성장률 반등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을 방문, 신현송 총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9.28 [공동취재]
산업 및 계층에 대한 재분배 드라이브가 필요해
한편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노동·자본·총요소생산성(TFP) 가운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 확대와 AI 확산에 따른 생산성 개선에서 반등 요인을 찾았다.
고령화로 노동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려운 만큼 자본과 생산성이 반등을 이끈다는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AI가 불러온 ‘역류’ 현상”이라며 생산의 3요소가 노동·토지·자본이었는데 이제 AI가 더해진 4요소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본 투입 증가가 뚜렷하고, 총요소생산성도 AI가 투입 대비 산출을 늘려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 측면은 단기간에 크게 달라지기 어려운 만큼 잠재성장률 반등은 설비투자와 총요소생산성 쪽에서 설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시지표가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호황의 혜택이 일부 기업에만 집중되면서 체감경기와의 간극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었다.
김 실장은 취업자 2900만명 중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직원은 20만명도 안 되고, 공급업체까지 100만명이라 쳐도 나머지 2800만명은 참여하지 않는 구조”라며 완전히 AI 디바이드(격차)”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AI를 포함한 총량 지표와 제외한 지표를 함께 발표해야 경제를 고르게 진단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로 돈을 버는 것이지 국내 경제가 좋은 건 아닌 착시 현상”이라며 서비스업·중소기업·자영업자, 부채를 못 갚아 연체율이 오르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더 많이 투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반도체 호황에 맞춘 기계적 조정에 가깝다고 평가하며 본질적인 생산성이 증가할 요소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지표가 나쁘지 않더라도 물가와 금리, 내수 취약계층의 고통까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 가까이 코로나19 대유행과 소비 부진 충격을 금융기관 대출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속속 한계를 맞고 있다. 사진은 서울 명동 거리 모습. 2024.12.29.연합뉴스
상반기 GNI 증가분 중 피용자보수 17% 그쳐
18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7년 NABO 경제전망: 2026∼2030’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명목 GNI 증가분 284조원 중 총영업잉여 증가분은 224조원(78.7%)에 달했다. 총영업잉여 증가분은 기업과 자영업자 등이 자본을 투자해 얻은 소득을 뜻한다.
근로자가 일한 대가로 받은 소득을 뜻하는 피용자보수 증가분은 47조원(16.5%)이었다.
정부가 가져가는 ‘순생산·수입세’ 증가분은 11조 2000억원(4.0%)였다.
국외순수취요소소득(우리 국민과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간 소득의 차) 증가분은 2조 3000억원(0.8%)이었다.
2026년 상반기 국민총소득 증가분의 부문별 배분[자료=국회예산정책처]
상반기 명목 GNI 증가율(21.8%)로 보면 교역부문 기여분은 16.8%포인트(p)로 전체의 77%를 차지했다.
이중 ‘교역가격’ 기여는 15.1%로, 전체의 69%였지만 교역물량 기여는 1.7%p에 그쳤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가격 상승 등이 반영된 가격 요인이 상반기 GNI 증가율 급증을 주도했다는 의미다.
예정처는 GNI 증가와 가계 소득 증가 사이에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GNI 증가가 기업의 영업잉여로 먼저 반영될 가능성이 크고, 이후 일부가 임금·성과급, 배당, 세금 및 이전 등의 경로를 거쳐 가계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정처가 올해 상반기와 같은 ‘교역조건 개선기’를 분석한 결과, 피용자보수는 비교적 완만하게 움직인 반면 총영업잉여 증가율은 GNI 증가율을 웃돌았다.
역시 반도체 경기 회복 등에 따라 수출가격이 개선된 2023∼2024년에는 총영업잉여 증가율이 15.0%로, GNI 증가율(14.8%)과 피용자보수 증가율(10.5%)을 앞질렀다.
원자재 가격 하락(2009년), 국제유가 하락(2015∼2016년) 당시에도 총영업잉여 증가율은 GNI 증가율보다 높은 반면, 피용자보수는 GNI 증가율보다 낮은 경향이 있었다.
지난 달 24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2026.7.24, 연합뉴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도 기대만큼 가계살림이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예정처가 교역가격 요인 증가에 따라 각 소득항목의 반응을 8분기간 추정한 결과, 피용자보수와 가계총처분가능소득에서는 일부 시점에서는 양 (+)의 추정치가 나타났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총영업잉여는 비교적 크고 유의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 예정처는 최근의 높은 GNI 증가율을 가계 소득이나 가계 구매력의 동반 개선으로 곧바로 해석하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향후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있고, 기업실적 개선이 특별급여와 투자 확대로 이어질 경우, 가계소득으로의 파급효과는 본 분석에서 나타난 평균적인 반응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잠재성장률 전망치가 40년만에 2년 연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과 기업 등이 자본을 투입해 그 댓가로 가져가는 총영업잉여 증가분이 올 상반기 명목 GNI의 8할에 이르는 바가 지시하는 것은 자명하다. 반도체 메가 특수가 그 원인이자 배경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재명 정부는 허투루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반도체 메가 특수의 성과가 다른 산업과 전 계층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강력한 재분배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다 강력한 성장의 동력이 생긴다.
교역조건 개선기의 부문별 소득 증가율[자료=국회예산정책처]
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red196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