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복수는 어른들의 폭력을 비춘다 [뉴스] 제3회 서울 국제휘슬러영화제 개막작 레인보우스 테일 (Rainbow’s Tale) 스틸샷. 2026.10.5.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취지의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가 제3회를 맞았다. 사회운동은 이데올로기나 신념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근원에서 시작될 때 진정한 동력을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인 이란 감독 살레 알라비자데(Saleh Alavizadeh)의 은 영화제의 취지에 맞는 수작이라 평한다. 이 작품은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어떻게 그 폭력을 증폭시키고 반복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2022년 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한 여성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 여성, 삶, 자유 운동(Women, Life, Freedom Movement) 이 한창이던 그때, 살레 감독은 불운하게도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한 아이의 죽음을 보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폭력이 어떻게 어린이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이를 트라우마로 간직한 채 반복하는가를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은 7편의 단편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여진 영화다. 무지개의 7가지 색처럼 영화의 각 에피소드마다 특정하는 색감이 스크린을 물들이고 있어 영상미도 뛰어나다.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7가지의 색감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7편의 단편 모두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들에게 복수하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이 영화를 본다면 아이들이 폭력을 당하는 영화가 아닐까 오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영화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주체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어른들에게 복수를 하는데, 그 복수의 방식이 어른만큼이나 집요하고 고의적이라는 점이다.
제3회 서울 국제휘슬러영화제 개막작 레인보우스 테일 (Rainbow’s Tale) 스틸샷. 2026.10.5.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첫 에피소드인 편에 등장하는 소년은 아버지의 밀린 대금을 받기 위해 매맞음을 감수하고도 마침내 돈을 받아내는데, 폭력에도 불사하고 끝까지 밀린 돈을 받기 위해 애쓰는 소년이 등장한다. 편에서도 부모에 무관심과 항거하듯 자기 만의 세계에 빠진 채 물총으로 쏴 어머니를 죽게 만드는 아르가반(Arghavan)의 복수는 보다 직접적이다. 편 속의 제이다(Zheida)의 경우,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미술 선생님이 상황을 수습하려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만족해 그로테스크한 웃음을 짓는 장면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완성되지 못한 자아가 어른들이 자행한 폭력에 노출되거나, 잘못된 신념을 품게 되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무감각해진다. 편에 등장하는 3명의 어린아이들이 트럼프를 죽이겠다는 미션에 걸림돌이 된 공항 경비원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은 마치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을 연상시킨다. 보다 적극적인 어른들의 탐욕을 응징하는 장면은 자신의 할머니에게 자백을 받아내고 죽이는 편 속에 사라(Sara)다.
낡은 관습이나 종교적 신념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만든 비극을 보여주는 것은 편이다.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결혼을 하게 된 샤디(Shadi)는 어눌한 새 신랑을 꼬드겨 초야를 치를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손목을 잘못 그어 그만 죽게 된다. 샤디의 행동을 보면 어린이의 행동이라 믿을 수 없는 치밀함이 보이지만, 그 대가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또한 충격적이다.
제3회 서울 국제휘슬러영화제 개막작 레인보우스 테일 (Rainbow’s Tale) 스틸샷. 2026.10.5.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이 영화의 취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에피소드는 마지막 다. 살레 감독이 언급했던 여성, 삶, 자유 운동 에 참가한 소녀 자흐라(Zahra)는 경찰인 아빠의 눈을 피해 몰래 집안으로 잠입하는 것에 성공한다. 시위에 참가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넘치는 저녁 식탁 아래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자흐라의 다리가 노출된다. 폭력이 누구에게 시작되어 누가 피해를 보는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영화 속의 무지개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본다. 선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어른들의 세계는 언제나 이분법적 세계다. 흑백 논리와 피아가 구분되는 세계 속에서는 타협도 양보도 없이 대립한다. 폭력은 그러한 대립 속에서 필연적으로 잉태되는 비극이다. 반면 무지개는 스펙트럼이다. 어쩌면 일곱 색의 무지개라는 것도 인간이 만든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각각의 색의 구분은 모호하다. 빛은 구별된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세상은 이분법처럼 자명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지개는 우리들 마음의 양보와 타협이 싹틀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제3회 서울 국제휘슬러영화제 개막작 레인보우스 테일 (Rainbow’s Tale) 스틸샷. 2026.10.5.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비 온 뒤 날이 개면 무지개는 피어난다. 때문에 무지개는 여러 문화에서 희망을 상징한다. 이 영화 에 붙여진 이름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피상적인 스토리만 본다면, 분명코 불편한 장면들이 있을 수 있다. 어른들보다 더 영악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별히 그렇다. 하지만, 오히려 살레 감독은 아이들의 잔학성을 보여주면서 역설적으로 어른들을 꾸짖는 듯하다. 마치 자신들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아이들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자정 효과가 아닐까 싶다.
은 휘슬러 영화제의 취지와 가장 잘 맞는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인격이 형성되기 전인 어린이들이 사회 구조적 폭력에 노출됐을 때, 어떤 결말로 이끌 수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인 어린이들을 사회적 안전망으로 잘 보호하지 못했을 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준엄한 역설적 경고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는 사회적 부조리에 항거해 휘슬을 울리는 휘슬블로어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필자가 작년에 본 영화제의 출품작들은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고, 시민의 자발적 저항을 이끄는 작품들이었다. 출품작들의 문제 의식에 더해 영화제를 빛내 준 것은 영화제를 운영하는 분들이나, 자원 봉사로 동참한 분들이었다. 쉽지 않은 일정에도, 참여한 모든 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비쳤다. 진정한 영화제의 주인공들은 이 분들 아닌가 싶다. 이번 영화제도 그들의 희망의 미소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구일영 북칼럼니스트.
덧붙이는 글 :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는 시민언론 민들레·뉴스토마토와 공동주최로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개최된다. 올해는 18개국 47편의 다양한 장·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으며 풍부한 관객과의 대화로 영화 제작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텀블벅을 통해서도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다.
☞ 텀블벅 링크가기 https://airbridge.tumblbug.com/jc53648
☞ 레인보우스 테일(Rainbow’s Tale) 트레일러 영상 https://youtu.be/5soWCLbHhaI?si=yCiHRYtdW0PmwKlZ
구일영 북칼럼니스트 swff2024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