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허락된 환락가가 21세기에 금지된 이유 [뉴스] 파주메디컬클러스터 조감도 파주시 제공 연합뉴스
최근 파주는 수도권에서 가장 눈부시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다. 기존 경의중앙선에 더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개통으로 획기적인 교통 접근성을 갖추게 되었다. 헤이리 예술마을의 문화적 특색, 양대 프리미엄 아울렛(롯데·신세계)과 더불어 최근 운정신도시에 들어선 스타필드 마켓까지, 수도권 여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다채로운 상권을 자랑한다. 계획도시의 이점을 살린 운정호수공원 등 풍부한 녹지, 출판도시 라는 명성에 걸맞게 곳곳에 자리한 출판사와 문화 공간, 도서관 등은 파주의 내실있는 성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인프라 확충에 힘입어 파주시의 인구는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대비 최근 10년 새 약 10만 명의 인구가 유입되었으며, 21세기 들어 단 한 번도 인구 감소를 겪지 않은 이례적인 지자체로 발돋움했다. 오랜 숙원이었던 대형병원 부재 문제 역시, 최근 파주타임스 의 보도대로 파주메디컬클러스터 내 종합병원 건립 사업에 조선대학교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어 2032년 개원을 목표로 닻을 올리면서 도시 팽창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교통 혁신과 문화와 상업의 융성은 지역 공동체를 살찌우고 주민 복지를 증진한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지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현재의 성장은 그 대가를 은폐하고, 발전을 명목으로 누군가를 소외와 폭력으로 몰아넣었던 과거를 지우려 한다. 나아가 그 소외의 피해자들을 다시 억압의 굴레로 밀어 넣는 작금의 현실을 철저히 합리화한다. 즉, 파주의 성장은 자본주의의 장밋빛 미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개념 이 잉태한 자본주의적 폭력성을 고발하는 무대다. 이 씁쓸한 본질은 2020년대 들어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선 파주 용주골 폐쇄 사태 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용주골의 궤적을 짚어보자. 파주읍에 위치한 용주골은 화려한 신도시(운정)나 구도심의 중심부(금촌·문산)에서 비껴난, 과거 파주 안에서도 규모가 작았던 변방의 소도시다. 이 조용한 촌락의 운명을 통째로 바꾼 것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 주한미군의 주둔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휴전선과 맞닿은 파주에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흥 시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용주골은 거대한 환락가로 변모했다. 1970년대 초반 미군기지 이전으로 달러벌이 유흥 산업이 쇠퇴하자, 이곳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성매매 집결지로 명맥을 이어갔다.
주한미군 철수 이후 내국인을 상대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용주골은, 2000년대 운정신도시와 출판도시 개발, 그리고 성매매특별법 제정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으며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신도시 개발로 젊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교육 환경 정화 요구가 빗발쳤고, 문화와 출판의 도시 라는 새로운 상징성은 용주골의 환락과 양립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법원읍 대능리, 문산읍 선유리 등지에 산재하던 성매매 집결지들이 강력한 공권력의 철퇴를 맞고 뿔뿔이 흩어졌다. 용주골 역시 완전한 해체를 면했을 뿐 그 규모는 크게 쪼그라들었다.
경기 파주시가 2023년 11월 22일 업주와 종사자들의 반발에도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파주읍 연풍리 이른바 용주골 의 법규 위반 건축물에 대한 강제 철거에 나선 가운데,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이 통유리를 철거하고 위험 글자가 새겨진 테이프를 두르고 있다. 2023.11.22.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용주골은 단순한 성매매 집결지를 넘어 끊임없는 사회적 갈등과 담론의 최전선이 되었다. 전국적인 집결지 폐쇄 흐름 속에서 마지막 상징처럼 남은 용주골은, 2010년대 후반 부상한 여성주의 진영 내 성매매를 자발적 노동과 자기결정권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 라는 쟁점과 맞물렸다. 문화적 자유주의와 가부장적 보수주의가 혼재된 한국 사회의 복잡한 지형 속에서 용주골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여기에 2022년 취임한 김경일 전 파주시장이 용주골 전면 폐쇄 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고 밀어붙이면서, 이곳은 작은 소도시의 환락가에서 현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논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용주골의 흥함과 쇠퇴는 철저히 산업과 자본의 필요에 의해 재단됐다. 과거 국가 안보와 달러벌이라는 자본적 필요에 의해 환락가로 조성되었던 공간이, 이제는 신도시 개발과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또 다른 자본의 필요에 의해 규제되고 철거되는 것이다. 자본은 자신의 잉여가치 증식을 위해 용주골을 이른바 부도덕의 온상 으로 방조하고 조장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는 도시 개발이라는 더 큰 가치 증식을 위해 돌연 도덕적 심판자 를 자처하며, 그 공간에 남겨진 개인들을 억압하고 비난의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상품 사회가 낳은 이 지독한 모순은 제도적 폭력을 넘어 야만적인 사회 풍토까지 조성한다. 교양 과 도덕 이라는 번지르르한 명분 아래, 용주골의 여성들은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 , 돈에 눈이 멀어 도덕성을 상실한 인간 이라는 날 선 모욕과 낙인에 시달린다. 결국 이들은 극심한 빈곤에 내몰리거나 쏟아지는 경멸을 견뎌야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정작 그들을 그곳으로 밀어 넣은 것은 그들의 자발적인 일탈이 아니라, 자본의 냉혹한 이해관계와 그 자본에 종속되어 묵인했던 사회의 철저한 무책임이었음에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파주시가 보여주는 눈부신 성장과 개발의 이면에는 단순히 기술 진보로 인한 소도시의 성공 신화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품 개념 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른바 도덕과 부도덕의 기준은 오직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된다. 그리고 그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은 필연적으로 타자화되고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이것이 20세기의 용주골은 국가의 묵인하에 허락 되었고, 21세기의 용주골은 철저히 금지 되는 진짜 이유다. 20세기에 자본이 여성들을 용주골로 밀어 넣었다면, 지금의 자본은 그들을 다시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상품 사회에서 도덕의 척도는 곧 가치 증식의 척도와 다름없다. 도덕과 교양이라는 위선적인 명목으로 힘없는 개인을 단죄하고 혐오하는 작금의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반성과 비판의 이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투명한 비판적 이성만이 자본의 탐욕과 상품 개념 너머의 흉측한 본질을 비출 수 있다. 벼랑 끝에 선 용주골은, 소외되고 억압받는 스스로의 아픈 민낯을 통해 이 뼈아픈 진실을 우리에게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