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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고립은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가

고립은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가
[칼럼]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넷플릭스 신작 영화 는 흥미로운 점이 있는 작품이다. 집에 갇힌 한 가족의 얘기이고 4명의 구성원이 5년 이상을 집 안에서 살아가는 걸 보여줘야 하는 내용인데 집안 내부를 완벽하게 세트로 만들어서 그려 나갔다는 것이다. 세트 미술, 프로덕션 디자인이 완벽하다. 심지어 나중에는 집이 물에 잠겨야 하기 때문에 실내 세트를 수조 세트로도 병행해서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영화는 시나리오, 연출, 연기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술 설계가 애초부터 완벽하게 준비돼 있어야 한다. 는 바로 그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제공  어느날 갑자기 집에 갇힌 채 5년을 살아가는 네 가족 앤(그레타 리)과 제이슨(바그네르 모우라) 부부는 8살 딸 루스(라일리 청)와 12살 아들 그레이엄(노아 알렉산더 소스노스키)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집에 갇힌다. 모든 문이 잠긴다. 아무리 해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동네의 모든 집들이 같은 처지에 놓인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한 달, 1년이 지난다. 결국엔 5년이 지난다. 그 사이에 루스는 13살이 되고(에마 호) 그레이엄은 17살이 된다(가브리엘 바르보사). 그나마 처음엔 물과 전기가 들어온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끊기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다. 엄마 앤은 집안의 바닥을 뜯고 그 밑의 얄팍한 토양으로 애초에 갖고 있던 과일이나 곡물의 찌꺼기에서 씨를 추출해 식물을 재배한다. 홍당무도 먹고 옥수수도 먹는다. 아빠인 제이슨은 지붕 굴뚝 위로 난 작은 구멍을 이용해 도르래로 덫을 바깥으로 내보낸다. 다람쥐도 잡고 이런저런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 그는 꽤 실력 있는 낚시꾼이었다. 이들이 사는 곳은 시애틀 외곽의 해변 마을이다. (영화 도입부에 제이슨이 바닷가에서 낚시하고 돌아오다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방송이 워싱턴주의 지역방송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바닷물에 잠긴, 거의 파괴된 시애틀 타워가 보인다.) 미국에서 시애틀은 바깥 세계에 개방되고 연결된 도시를 대표한다. 록그룹 너바나가 여기를 바탕으로 활동한 곳인 만큼 문화적으로도 대안적인 것을 추구하는 곳으로 인식된다. 바다 요정 세이렌을 상표로 한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가 1호점을 낸 곳도 바로 시애틀이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한 가족이 집에 갇힌다. 나갈 수가 없다. 폐쇄된 집 안에서 지독하게 고립된다. 그것도 시애틀에서, 라고 영화는 초장부터 운을 뗀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제공  MAGA가 미국민들을 집 안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닌가 는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기이한 정치성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지금의 트럼프 시대가 지닌 때아닌 신먼로주의(고립주의)가 만들어 낸 극한의 공포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미국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구호를 내세워 외부의 적이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을 현혹하고 국경을 폐쇄한 후 내부의 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을 일삼으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들을 집 안(미국이라는 나라)에 가둬 놓고 거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그 ‘집 안’이라고 하는 곳, 그 집 자체가 가장 무서운 곳이며 생존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님을 알게 된다. 결국 앤과 제이슨의 집은 동네의 마지막(라스트) 집이 된다. 동네의 모든 사람이 굶어 죽는다. 건너편 집, 은퇴한 흑인 치과의사는 수기로 쓴 메모지를 창문으로 보여 준다. 이렇게 쓰여 있다. 먹을 것이 있나요? 나는 없어요.” 결국 사람들(국민)은 ‘집 안’(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굶어 죽는다. 영리하고 지혜롭게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가족은 제이슨네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혜로운 가족이 백인들이 아닌, 이민 2세대들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두 부부는 각각 아시아계와 라틴계다. 당연히 아들과 딸도 혼혈이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제공  앤 역을 맡은 그레타 리는 한국계이고 제이슨 역의 바그네르 모우라는 브라질인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 주요한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 지역 사람들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하게도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이민세관단속국(ICE), 세관국경보호국(CBP)의 과잉 진압 행위가 자꾸 연상된다. MAGA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폐쇄 국가에서 감금 고립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는 그런 식의, 비교적 명백한 정치 영화이거나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큰 작품이다. 지금 우리 생존 자체가 미스터리 공포-괴수-재난의 범벅 아닌가 그러나 영화가 너무 정치성을 앞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넷플릭스와 이 영화의 감독인 루이 르테리에는 영악하게 자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뤽 베송의 적자인 이 프랑스 감독은 그간 시리즈와 을 만들며 현대 영화는 세트 미술과 촬영의 기술(짧은 컷의 연결, 빠른 편집 등을 통한 일종의 눈속임), 분장과 의상,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와 액션을 통해 그 어떤 것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온 ‘수공업적’ 장인 감독이다. 루이 르테리에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에서 장르 간 혼합을 추구하며 정치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기묘한 경계를 만들어 냈다. 는 미스터리 공포로 시작해 크리처물(괴수 영화)이 됐다가 나중에는 재난영화로 끝을 맺는다. 그 이음새를 매끈하게 만들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고, 사실 말이 안 되는 영화적 설정(갑자기 집안에 갇힌다는 식의)을 지금 살아가는 생존방식에 빗대어 사람들 스스로가 수긍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다들 어디선가 갇혀 살고 있으며 그만큼 고립되어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제공  이 영화에서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제이슨 부부의 집이 종국에는 붕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족은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해 표류에 나선다는 점이다. 는 어쩌면 세상을 새로 ‘리빌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의 미국이든 어디든 새로 고치려면 일단 붕괴시키는 게 옳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영화 속 괴물처럼 외부 요인이든 사실은 내부의 무엇이든 (영화의 괴수는 대왕문어의 변형으로 보이며 바다에 사는 우리 ‘안’의 존재이다) 일단 무너뜨리고 새로 만들거나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스터리 액션 괴수 영화인 척, 는 은근히 급진적인 이념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고립주의에서 불안과 공포를 본 할리우드 할리우드의 진보적인 작가나 감독, 제작자는 망가진 국가나 사회의 ‘폐기 이데올로기’, 곧 무정부주의적 관점을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빌드업해 왔다. 2023년 팬데믹 막바지에 나온 는 뉴욕의 고급 별장에 머물던 중산층 백인 부부 아만다와 클레이(줄리아 로버츠, 에단 호크)에게 어느 밤 흑인 부녀 조지와 루스(마허샬라 알리, 마이할라 헤럴드)가 들이닥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갑작스러운 사이버 테러로 정전사태가 빚어지고 국가재난방송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아만다 부부는 조지 부녀에게 왠지 모를 공포감을 느낀다. 아만다 부부는 때아닌 사슴 떼의 공격을 받는다. 둘은 결국 조지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지하 벙커로 피신한다. 남편 클레이는 이후 고립돼 살아가고 있는 노인 대니(케빈 베이컨)의 말을 듣고 경악한다. 노인은 씹어뱉듯 이렇게 말한다. 서부 해안(웨스트 코스트)에 전단이 떨어졌다는군. 거기에 중국어하고 한국어로 이렇게 쓰여 있대. 미국에 죽음을, 이라고 말야.” 공격성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 노인은 약을 구하러 온 클레이에게 절대 줄 수 없다며, 내 땅에서 나가라며, 철커덕 장전하고 총을 겨눈다. 와 이번 신작 는 다 미국의 내면적 붕괴를 그리고 있다. 두 영화는 연결점이 있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제공 미스터리 공포영화는 그 사회의 불안증, 공포심리를 반영해 내는 좋은 도구이다. 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세상 전체를 붕괴시키고 수몰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프랑스인 감독이 한국계 배우와 브라질 배우를 기용해 만든 미국의 불안한 초상화 같은 작품이다. 친 민주당(미국) 노선인 넷플릭스가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거리다. 이 영화는 섬뜩하면서도 재미있다. 정치적 메시지는 그렇게 전달되는 게 효과적이다. 영화에서 보면 미국은, 적어도 이미, 붕괴한 상태이다. 미국 MAGA 지지자들만이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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