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별식 국수 탐식 경계하는 스님도 미소 짓는 승소 [사회혁신] 산을 즐겨 찾아 절집 신세를 지는 일이 적지 않다. 설악산에는 오세암, 봉정암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고. 지리산에 가면 실상사에 들르는 편이다. 남덕유에 가면 영각사가 있다. 오세암 공양주에게 마등령 해돋이 보러 가야 한다며 새벽 밥 내놓으라고 되바라진 짓도 한 적이 있다. 마라톤 탁발 에다 요즘은 게이트볼 탁발 로 이름난 진오 스님과의 인연으로 전북 무주 적상산 자락의 안국사에서 옛날 요정집보다 더 떡벌어진 저녁 밥상을 받아 본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그런데 절집에서 국수를 먹어 본 기억은 미미하다. 30여년 전 쯤, 연중에 부처님 오신 날에만 산문을 여는 문경 봉암사에서 후루룩 한 사발 먹은 기억 밖에 없다. 훨씬 많은 국수를 사찰에서 먹었겠지만 기억에 각인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스님들을 웃게 만든다는 뜻으로 국수를 승소(僧笑)라 한다는 얘기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사찰음식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커다란 관심을 모으는 이즈음에 국수 스물네 그릇에 얽힌 스님들의 삶을 엿보는 책 『스님의 맛』(장보배 지음, 조계종출판사)을 국수 면발 삼키듯 후루룩 펼쳐 봤다. 탐식을 경계할 것이 분명한 불가에서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이 갖는 의미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국수 한 끼도 수행’이라고 여긴다는 얘기에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을 세계인에게 불러 일으킨 정관 스님의 ‘능이 배추 칼국수’를 시작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이 이어진 덕조 스님의 ‘불일암 국수’, 현대인에게 안식과 회복을 선물하는 다채로운 계절 국수까지 군침을 흘리며 읽다 보며 스물네 곳의 산사를 두루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님들의 인연, 수행, 삶의 레시피는 덤이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고 안정되는 느낌마저 갖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삶아낸 면발을 정성껏 찬물에 비벼 동그란 모양으로 채반에 담고, 그저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만 얹어 뚝딱 내온 국수 한 사발, 팽팽하게 매여 있던 마음을 조율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따뜻한 힘을 전하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이 책은 결국 좁게는 스님, 넓게는 뭇 사람을 얘기한다. 국수 면을 삶는 시간보다 인연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조리법보다 삶의 모습을 더 깊이 기록한다. 어떤 스님에게 국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맛이었고, 어떤 스님에게는 출가를 결심하던 날의 기억이었다. 또 다른 스님에게는 수행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한 끼였으며, 함께 나누는 공양의 기쁨이었다. 국수 한 그릇을 매개로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도반과 신도, 산과 계절, 절집의 풍경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읽는 이들을 다사롭게 보듬는다.
사찰의 공양간은 단순한 부엌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배고픔을 달래고 마음을 닦는 치열한 수행의 공간이다. 전국의 명찰과 산중 암자를 지키는 다양한 수행자들의 솔직하고 울림 있는 사연을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책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출가와 함께 마주했던 겨울 산사의 풍경,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은 깊은 선문답, 절망 끝에서 스님의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이의 이야기 등 국수 가닥마다 얽힌 삶의 서사가 아련하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스님들에게 국수 한 그릇은 수행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는 ‘제도 밖의 자유’이자, 세상을 향해 자비와 온기를 전하는 가장 낮은 문턱의 포교 방편이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국수 한 상 조계종출판사 제공
실제로 절에서 먹는 음식을 소개한다. 산사의 부엌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일상, 수행자의 검박한 생활,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재료와 공양 문화, 그리고 욕심을 덜어내며 살아가는 삶의 철학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음식을 설명하기 위해 삶을 끌어온 것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음식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찰음식 책들과 분명 다른 결을 이룬다.
오늘날 우리는 넘쳐나는 음식 속에서도 쉽게 허기를 느끼고, 풍족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은 자주 메말라간다. 더 좋은 것을 먹으려 애쓰지만 정작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먹는지는 잊고 살아간다. 『스님의 맛』은 바로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보인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삶의 맛을 결정한다고 조용히 힘주어 말한다.
자연이 약이 되고 치유가 됨을 오롯이 보여주는 사찰의 국수 보양식이기도 하다. 조계종출판사 제공
지은이 장보배는 절집의 공양주로 계시던 외할머니를 따라 매년 여름과 겨울의 방학을 산중 암자에서 지냈다 한다. 그 인연으로 계간 《템플스테이》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10년 가까이 이 땅의 산사를 둘러보며 귀한 절밥을 맛보았다. 그렇게 《현대불교》에 연재했던 〈사찰국수기행-스님이 웃는다〉를 책으로 엮어 냈다. 다른 책 《108 명상집-가만히 눈을 감고》를 엮었고, 《현대불교》에 〈스물네 번의 계절〉을 연재했다.
책은 다섯 부로 나누었는데 위로의 맛, 기억의 맛, 수행의 맛, 자연의 맛, 다시 나누는 맛이다. 화려한 리스트를 좍 늘어놓자면, 1부는 전남 장성 천진암에 머무르는 정관 스님의 능이 배추 칼국수, 주호 스님의 쑥칼국수, 진묘 스님의 잔치국수, 경북 상주시 묘견암 동화 스님의 들깨칼국수, 여거 스님의 백김치물국수, 2부는 덕조 스님의 불일암 국수, 명천 스님의 상추찔레 국수, 지견 스님의 김치진물 국수, 육통 스님의 수박동치미 국수, 충남 천안시 제화사 우담 스님의 시래기 국수, 3부는 서준 스님의 배국수, 동원 스님의 사과냉면, 반결제 산행 봉사자들의 메밀국수, 성화 스님의 팥칼국수, 승현 스님의 국수라면, 4부는 진허 스님의 콩나물 비빔국수, 백거 스님과 장혜지 씨의 솔잎칼국수, 능가 스님의 얼갈이콩물김치 국수, 선오 스님의 도토리 손칼국수, 마하연 보살의 과채두부면, 5부는 우일 스님의 바질 페스토 스파게티, 지인 스님의 오이만두, 정우 스님의 도토리 묵사발, 혜성 스님의 고구마 빼떼기죽 등이다.
스님의 말씀을 찬찬히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정관 스님- 하루 저녁이지만 제도 밖의 자유를 느끼는 겁니다. 그 자유로움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요. 어떤 악기든 조율을 잘해야 오랫동안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늘 팽팽히 매여만 있어선 제소리를 낼 수 없어요. 쉼 없이 자기 수행을 반복하면서도 가끔은 국수 한 그릇의 자유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거예요. 음식은 그렇게 긴장된 자기 마음을 조율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동화 스님- 음식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자기를 낮춰야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할 수 있어요. 구정물에 빠지고 부엌데기 취급도 받으면서요(웃음). 저는 이 음식을 드시는 스님들이 부디 확철대오(廓徹大悟, 확연히 꿰뚫어 크게 깨우침) 하시길, 배고픔이 달래지기를, 편안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아요.”
덕조 스님- 반찬은 세 가지가 넘지 않게 하고, 간단명료하게 먹는다.” 지금도 술술 외워질 만큼 제자에게 강조한 법정 스님의 먹을거리 원칙은 아직도 유효하다. 가짓수가 많은 식탁을 대하면 생각이 흐트러져 ‘먹이는 간단명료하게’라는 부엌훈을 걸어놓기도 했다던 법정 스님,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불편함은 그대로 수행자로서의 삶을 제련하는 기치로 이어지고, 여전히 이곳에 살아 흐른다.
선오 스님- 레시피에 집착하지 마세요. 주어진 재료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당신은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담담히 전하는 스님의 이야기에 주저하던 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지인 스님- 돌고 돌아 다시금 선禪 수행, 명상 수행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어요. 내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워야 대중에게도 좋은 길을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간 살면서 배운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늘 기도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온전한 행복 그 자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기를요.”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