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도 검찰개혁도 흔들리는 씁쓸한 제헌절 [뉴스] 14일 서울 광화문스퀘어 대형 전광판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가 나오고 있다. 2026.7.14.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제정·공포를 기념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되새기는 제헌절이 18년 만에 공휴일로 부활했지만, 2026년 7월 17일 마주한 현실은 국경일이라는 단어에 담긴 경축 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12·3 내란을 극복하고 시민의 손으로 국민주권정부를 출범시킨 만큼, 헌법 정신을 다시 세우는 일은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제헌절에 국정과제 1호인 국민 중심 개헌 을 강조했지만, 새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맞는 제헌절에도 개헌 논의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그와 더불어 두 대통령의 탄핵을 겪은 6공화국을 넘어 새로운 7공화국에서 살게 될 것이란 기대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삐삐 (무선호출기)조차 없었던 1987년 헌법 체제에 머물러 있다.
그런 가운데 내란에 책임이 있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 강화,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에 대한 국가 의무 명시 등 정치적 합의가 가능한 최소한의 원포인트 개헌마저 지방선거를 이유로 무산시키더니, 윤석열 내란 정부에 부역했던 인사들을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부활시켰다. 윤석열의 체포를 막기 위해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까지 방해했던 정치인들에게 12·3 내란은 이미 과거 한때의 실수쯤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다행히 선관위 투표용지 사태를 계기로 시민들과 청년층 사이에서 개헌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완전한 내란 청산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올림픽공원 시위를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 세력들이 결집하고,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이에 편승하는 현실을 보면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시도됐던 원포인트 개헌은 향후 더 큰 개헌을 위한 마중물 이자 최소한의 출발점이었지만, 그조차 무산된 상황에서 저출산·고령화, 기후위기, 지역소멸, 선거개혁, 권력기관 개편, 국민 기본권 등 시대적 과제를 담아낼 전면 개헌을 추진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타임캡슐. 2026.6.25. 연합뉴스
제헌절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검찰개혁
더욱이 윤석열 정부 3년간 조작 수사·기소 등 법비(法匪)들의 만행을 지켜본 민주당 등 제정당과 시민사회가 빛의 혁명 광장에서 합의한 검찰개혁의 기본 정신조차 흔들리는 현실은 제헌절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출범을 불과 3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보완수사권 예외적 존치 주장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통한 검찰개혁의 핵심 원칙을 흔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완수사권이라는 뒷문 을 열어 수사관이 그대로 남게 되는 공소청이라면, 어렵게 수사·기소 분리를 왜 하는 것이며 중수청·공소청은 왜 나누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수많은 검찰의 조작수사 사례, 보완수사 실패 사례에는 침묵했던 기득권 언론들이 검찰개혁 막바지에 이르러 유독 장윤기 사건 을 보완수사권 존치의 근거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데에 여당 의원들까지 호응하는 모습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사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보완수사권 폐지로 우려되는 현장의 공백도 보완수사요구권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검찰의 폐단을 개혁하자는데, 경찰의 수사가 문제라면서 이를 확대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난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피해자 보호 절차와 수사 시스템을 보완하는 게 우선이지, 그것이 곧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할 이유 자체는 될 수 없다.
살인 누명을 쓰고 15년을 복역했던 부녀가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일명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이들 부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장기 복역한 이유는 검찰의 조작 수사 때문이었다. 검찰은 지적 장애가 있는 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했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은폐한 사실이 법원에서 확인됐다. 보완수사권 존치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하는 정의로운 형사부 사건에서도 조작이 이뤄진다는 점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경찰 수사를 통제하거나 보완하는 절대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5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진보당 손솔 의원이 준비한 수사 기소 분리 원칙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검토 및 의견 문서가 놓여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2026.7.15. 연합뉴스
더군다나 최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여성과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 등에 한해 보완수사권을 인정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지만, 등 이라는 표현을 남겨 예외를 확대할 여지를 두고 있다. 2022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윤석열·한동훈 검찰이 시행령을 통해 수사 범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장했던 사례를 떠올리면 우려가 적지 않다. 윤석열 정권 당시 검사들이 등 한 글자만 가지고도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의 자택 문을 빠루 로 뜯어가며 명예훼손 혐의 사건까지 무차별적 수사를 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예외를 통한 원칙 파괴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애초 검찰개혁은 정권의 하수인이 된 검찰이 기소권, 영장청구권, 수사권을 독점하면서 발생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됐다. 대통령도 탄핵하는데 검사는 잘못을 저질러도 탄핵은커녕 징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수사·기소를 분리해 상호 견제하고 보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경찰 수사의 일부 문제를 이유로, 개혁 마무리 단계에서 사실상 수사권과 다름 없는 보완수사권을 부여하자는 것은 개혁의 원칙 자체를 흔드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원칙과 방향을 지키면서 현실을 놓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문제는 지금 여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의가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한 숙의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로 원칙 자체를 흔든다는 점이다. 1987년 헌법을 넘어서는 일도, 검찰 권력을 헌법 정신에 맞게 재설계하는 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권력은 분산되고, 서로 견제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이 흔들린다면 공휴일이 된 제헌절은 그저 하루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18년 만에 공휴일이 된 제헌절이 그다지 고맙지도 반갑지도 않은 이유다.김성진 기자 mindle1987@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