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 대신 시위현장에 선 예술인, 수전 서랜던 [사람들] 수전 서랜던(가운데)과 다른 시위 참가자들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유엔본부 밖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유엔 연설을 앞두고 체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수전 서랜던이 또 체포됐다. 지난 9월 24일 뉴욕 유엔본부 앞.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유엔총회 연설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문제와 가자 전쟁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서랜던은 그 자리에 있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시위대 사이에 앉아 구호를 외쳤고,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가 경찰의 해산 요구에 응하지 않자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연행됐다. 함께 체포된 사람 가운데는 배우 한나 아인바인더와 뉴욕의 정치인들도 있었다.
서랜던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이 배우는 오래전부터 스크린 안에서만 연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과 명성,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영향력을 현실의 문제를 말하는 데 사용해 왔다. 그래서 나는 서랜던을 생각할 때 먼저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라는 말보다 행동하는 예술인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는 1970년 영화 《조》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1975년 《록키 호러 픽쳐 쇼》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1991년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여성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문제를 강렬하게 드러냈다. 《로렌조 오일》, 《클라이언트》 등을 거쳐 1995년 《데드 맨 워킹》에서 사형수의 영적 동반자인 헬렌 프리진 수녀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특히 《데드 맨 워킹》은 서랜던이라는 배우의 삶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영화는 사형제도라는 불편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이 작품에서 단지 역할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사형제 폐지라는 현실의 논쟁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에도 무죄 판결을 받은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참여하고,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했다. 무죄 프로젝트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사형제도와 형사사법제도의 문제를 알리는 데에도 목소리를 냈다.
여기에서 예술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일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일까. 물론 그렇다. 그런데 예술의 역할이 거기에서 끝난다면 예술은 너무 편안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 예술은 때때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고,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질서에 균열을 낸다. 좋은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한 편의 소설이 한 시대의 위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랜던은 자신의 연기뿐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그런 역할을 해왔다. 그의 사회참여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전쟁과 평화, 인권, 이주민 문제, 사형제도, 사회적 약자의 권리 등 여러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2018년에는 미국 정부의 이민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워싱턴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여성 활동가들과 함께 구금된 사람 가운데 그도 있었다.
유명 배우에게는 선택지가 많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정치적 논쟁을 피하고 작품 이야기만 하는 것도 선택이다. 시상식에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받고, 인터뷰에서 차기작 이야기만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삶이다. 그런데 서랜던은 자주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는 대가도 따른다. 이번 달 그는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자신의 정치적 발언 때문에 여전히 영화 일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이후 일부 영화계에서 고용을 꺼리는 분위기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2023년에는 소속사와의 관계가 끊어진 사실도 알려졌다. 물론 이러한 불이익의 구체적인 원인과 책임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주장과 영화산업 내부의 여러 입장을 구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안전한 방패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로 자신을 데려갔다. 나는 이것이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본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정치적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는 침묵도 있고,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도 있으며, 정치와 거리를 두는 자유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예술가에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할 수도 없다.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수전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
하지만 예술가가 양심에 따라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예술가에게 주어진 자유다. 그리고 그 자유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참여하는 예술 의 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SNS에 글을 하나 올리는 것과 거리로 나가는 것은 다르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과 경찰의 경고를 받고도 시위 현장에 남아 연행되는 것은 다르다. 물론 거리의 행동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시위든 그 방식과 목적, 결과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번 뉴욕 시위에서도 경찰은 도로를 막은 참가자들에게 해산을 요구했고, 참가자들이 이에 응하지 않아 체포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한 장면은 분명하다.
79세의 세계적인 배우가 자신의 이름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레드카펫이 아니라 경찰의 연행 차량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배우에게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젊은 시절에는 작품과 경쟁하고 배역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미 쌓아놓은 명성과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서랜던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예술의 나이를 생각한다. 예술은 늙지 않는다는 말보다, 예술가의 양심은 나이와 함께 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델마와 루이스》의 배우였던 사람이 이제는 유엔 앞 거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데드 맨 워킹》에서 사형수와 사형제도의 문제를 연기했던 배우가 현실에서는 사형제 폐지와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에 관심을 이어왔다. 스크린에서 인간의 고통을 연기했던 사람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도 완전히 침묵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행동하는 예술인 이다. 예술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이자 진보·반전 성향 배우인 수전 서랜던이 2018년 6월 28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 미 상원 의회 하트 빌딩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2018.6.28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 배우의 시위가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한 편의 영화가 사회의 모든 모순을 해결할 수도 없다. 유명인의 한마디가 언제나 진실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가 역시 틀릴 수 있고, 그의 정치적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술가가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일은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권력은 사람들이 침묵할 때 더욱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곳에서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박수를 칠 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반드시 배우일 필요는 없다. 목사일 수도 있고, 교사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 수도 있고, 작가일 수도 있고, 이름 없는 시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 태도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명성을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확성기로 사용할 것인가. 서랜던의 삶은 적어도 그 질문 하나를 우리 앞에 던진다. 이번 체포 소식을 두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평가를 할 것이다. 그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의 정치적 주장이나 시위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한 배우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현실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사실까지 지울 수는 없다. 예술가는 무대 위에서만 예술가가 아니다.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다. 스크린에서 정의와 인간의 존엄을 연기하는 것과 현실에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용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서랜던의 이번 체포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다.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고, 때로는 질문하는 일이며,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누군가의 고통 곁에 서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박수받는 무대에서 내려와 차가운 거리의 아스팔트 위에 앉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랜던은 1970년부터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배우로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이력에서 내가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카데미 트로피 하나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수많은 얼굴과 함께, 영화 밖에서 자신의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술가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가진 이름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것을 행동하는 예술인의 모습이라고 부르고 싶다. 서랜던이 체포된 그날, 한 배우는 다시 한번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곳에는 조명도 없고, 카메라도 없고, 박수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양심과 선택이 있었다. 어쩌면 예술가에게 가장 어려운 연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