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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프레임 경쟁과 8·15 경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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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맞이하는 8.15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는 단순한 기념사를 넘어 한반도의 미래 비전과 대북·외교 정책의 기본 기조를 대내외에 선언하는 중요한 정치·외교의 장이다. 그런데 최근 광복절을 앞두고 정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8.15 경축사에서 ‘적대적 두 국가’를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할 것을 북측에 제안하고 ‘조선’이라는 공식 국호를 불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대를 해소하는 실용주의이자 진보의 길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닌지 안타까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부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18년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합의는 상당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채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 남북 합의가 깨진 담론의 진공상태 속에서, 북한은 1953년 불안정한 ‘정전협정’과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라는 두 가지 국제 합의만을 근거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이자 교전국”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나아가 ‘조선’이라는 국호 아래 민족동질성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착시키려는 적대적인 ‘프레임’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기존 합의의 무효화라는 현실 앞에서, 국내 일각에서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주체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던진 ‘두 국가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자거나 북한의 ‘조선’ 국호 및 담론 프레임을 그대로 추종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형적으로 상대방이 설치한 언어와 논리의 그물망 속에 스스로 갇히는 정치적·담론적 패배주의다. 이 시점에서 8.15 경축사의 참된 의미를 재정립하고 정세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경고한 ‘프레임의 함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레임 종속의 비극: 레이코프의 ‘코끼리’와 안철수의 아바타” 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2018)를 통해 프레임(Frame)을 선점하는 것이 정치담론에서 얼마나 결정적 요인인지 입증했다. 여기서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공식 마스코트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공화당(코끼리)의 정책을 비판하겠다며 공화당이 만들어 놓은 언어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와 ‘코끼리’를 언급하는 순간, 대중의 뇌리에는 공화당이 설정한 정책 개념(‘코끼리’)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게 각인된다. 상대 프레임을 부정하거나 반복하는 반론 방식은, 역설적으로 상대의 프레임을 강화해 주고 자신의 주장을 그 하위 범주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프레임 종속’과 언어의 함정을 보여준 국내 정치의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2017년 대선 토론회 당시 안철수 후보의 발언이다. 당시 경쟁 진영에서 씌우려 한 공격성 프레임을 강력히 부정하기 위해 생방송 토론에서 스스로 내가 MB의 아바타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전달되는 순간 대중의 머릿속에는 유력 대선후보의 주체적 비전 대신 상대방이 만든 ‘아바타’라는 부정적 프레임과 단어가 강렬하게 각인되고 말았다. 상대 프레임의 단어를 자기 입으로 직접 읊으며 부정하려 한 태도가, 도리어 상대 프레임 속으로 자진하여 들어가는 치명적인 언어적 실책이 된 것이다. 현재 8.15 경축사를 앞두고 펼쳐지는 대북 담론의 양상 역시 안철수 후보의 ‘아바타’ 발언이나 미국 민주당의 ‘코끼리’ 실수와 정확히 닮았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이자 ‘조선’이라는 독자 국호를 인정하라”고 주장하자, 일부에서는 우리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두 국가를 인정할 수 있다”, 북한이 조선이라고 부르니, 우리도 조선이라 불러 존중하는 것이 평화공존의 길이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이 던진 ‘두 국가관계’, ‘조선’ 호칭이라는 코끼리에 사로잡힌 ‘아바타’적 대응에 불과하다. 북한의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그 프레임 안에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한반도 미래를 설계할 주체적 담론권을 포기하는 일이다. 북한의 반평화적 두 국가론 수용은 명백한 위헌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및 ‘교전국 관계’를 선언한 논리적 근거를 냉정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국제법상 교전상태를 지속해 온 정전협정의 미완성 구조, 그리고 1991년 남북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여 국제법상 주권국가 지위를 얻었다는 사실을 아전인수식으로 결합하여, 동족이라는 특수관계를 파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로 살아가겠다”는 논리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담론을 순진하게 수용하거나 ‘조선’ 국호 담론을 추종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위험과 논리적 오류를 안고 있다.   북한은 27일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제9차대회 결정관철 다짐을 위한 평양시군민연환 대회 및 군중시위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2026.2.28. 연합뉴스 첫째, 북한 신헌법에서 평화공존의 여지를 읽어내는 것은 자의적인 오독이다. 북한이 개정한 신헌법 조문에 ‘적대적 두 국가’나 ‘교전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희망적 해석을 내놓는 시각은 헌법이라는 최고규범의 기본 성격을 간과한 것이다. 세상에 어느 국가가 최고 법전에 특정국가를 향한 가변적·상황적 단어를 집어넣는가? 실제 김정은의 대남 적대 교시가 북한의 전 군사·당 기구에 최고 지침으로 작동함에도, 헌법 문구만 보고 평화의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투항주의에 다름 아니다. 둘째, 북한의 ‘두 국가론’은 평화적 공존의 신사협정이 아니라 ‘적대적 분단’의 고착화 전략이다. 북한이 말하는 두 국가는 유럽식의 이웃국가가 아니라, 서로를 철천지원수로 규정하고 유사시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교전국 관계의 두 국가다. 정전협정과 유엔 가입의 역사를 적대감의 명분으로 악용하는 북한의 전략을 ‘평화적 공존’으로 착각하고 수용하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증강에 명분을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한층 강화된 북한의 대남 적대 정책은 평화공존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정부의 모든 대북정책과 담론은 현행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정부와 정책 당국이 헌법을 뛰어넘어 선제적으로 북한의 요구대로 남북관계를 완전한 ‘국가 대 국가’로 공식화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자 국정의 책임 유기다. 향후 통일환경 변화에 따른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열어두되, 개헌 성립 전까지 정부는 반드시 현행 헌법 체계 내에서 책임 있게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조선’ 호칭 주장도 두 국가론이라는 북한이 설정한 프레임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북한의 적대적 프레임을 능동적으로 압도하는 현실적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의 프레임: 한반도 평화구조와 남북기본협정 기존 남북합의들이 모두 무효화된 상황에서 과거 합의들을 당위적으로 복원하자고 외치는 것은 실효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을 무시하고 북한의 프레임에 끌려가는 것 역시 패배주의이자 투항주의이다. 8.15 대통령 경축사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은 현행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담론적·제도적 대등함’에 바탕을 두고 서로를 규정할 새로운 남북 합의의 틀이다. 작년 8.15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맞서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가 아닌,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임을 명확히 선언한 바 있다. 올해 8.15 경축사가 선언해야 할 대북한, 대국민 메시지의 핵심은 북한이 던진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 아니라,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인 ‘한반도 평화구조’ 구상과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국정과제인 ‘남북기본협정’을 구체화해 대북정책의 전략적 기본방향 등 우리의 ‘프레임’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먼저, ‘한반도 평화구조’는 정전협정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고 다자적 위기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평화공존’을 구축하고자 하는 제도적인 틀이다. 한국전쟁의 법적 종결을 의미하는 ‘평화체제’ 협상과 별개로, 냉전기 동서 유럽의 유럽안보협의체(CSCE/OSCE) 모델처럼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고 군사적 신뢰를 상시 관리하는 협력안보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한반도 안보구조의 핵심이다. 이는 북한이 정전상태나 유엔 가입 지위를 적대감의 명분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평화관리를 구조화·제도화하는 구상이다. 다음, ‘남북기본협정’은 현행 헌법의 가치를 지키면서 남북관계를 재설계하는 ‘평화의 체계적인 법규범’이다. 작년 8.15경축사에서 확인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협상의 실효성을 위해 국가 간 교섭의 격식을 대담하게 수용하되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우리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동서독 기본조약의 지혜처럼, 현행 헌법 제3조·제4조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무력화할 대안이다. 남북기본협정은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음으로써 정권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북정책의 법적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다. 투항주의 벗어나 주체적 프레임 제시하는 8.15경축사 레이코프의 경고처럼, 상대의 논리적 덫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우리만의 새로운 질서와 언어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이 던져놓은 ‘적대적 두 국가’라는 프레임에 끌려가거나 모호한 당위적 평화론에 안주하는 패배주의, 투항주의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할 담론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8.15 경축사가 담아내야 할 시대적 사명은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북한의 대남 전략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한반도 평화의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행 헌법의 정당성을 법적 토대로 삼아, 협력안보 모델에 기반한 ‘제2차 한반도 평화구조’라는 대담한 구상과 ‘남북기본협정’이라는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의 새 이정표를 당당히 선언해야 한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라는 과거의 유산을 넘어 2020년대의 엄중한 안보 환경과 헌법적 가치를 아우르는 제도적 평화 기틀을 새로이 짜야 할 시점이다. 나아가 이를 초당적 합의체인 국회 비준으로 뒷받침하여 정권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적 불가역성을 확보해야 한다. 상대의 언어에 가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상생과 평화의 언어로 한반도의 판을 완전히 재창조하는 것—이것이 올해 8.15 경축사가 선언해야 할 한반도 평화 전략의 본질이다.조성렬 전략노트 insscs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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