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포로 송환 비공개 합의 젤렌스키가 어겨 아쉽다 [뉴스] 미국 뉴욕 유엔 총회 연설 일정을 마치고 멕시코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날 유엔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에 보냈다고 공개한 것에 대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많이 아쉽다 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에 올린 글에 북한 포로 국내 송환 문제는 외교, 안보, 한반도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다.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 고 밝혔다. 합의한 사항을 지키지 않은 우크라이나 측에 사실상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또 보수 야권에서 정부가 북한 포로 송환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관련, 타당하고 정당한 비공개 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 반박했다. 이어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되든, 누군가 죽어 나가든, 국익이 손상되든 개의치 않고 성과를 생색내느라 포로 송환 사실을 징치고 춤추며 온 세상에 광고했을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비공개 노력이 이해가 안 될 뿐 아니라 심지어 뭔가 문제 될 게 있나 싶을 것 이라며 이처럼 잔인하고 무책임할 수는 없다 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 만회에 명백히 도움 될 북한 포로 국내 송환 사실을 공개하자는 내부 주장이 왜 없었겠느냐 며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 고 했다.
그러면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반인륜적 전쟁들이 조기에 종식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백모씨와 리모씨가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내 포로수용소에서 김영미PD와 접견하며 탈북민단체들이 보낸 북한음식 두부밥 을 먹고 있다. 침대(왼쪽 상단)에 이들이 직접 그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2025.10.31 [겨레얼통일연대 제공) 연합뉴스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던 북한군 포로 2명은 본인 의사에 따라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에 포로로 붙들린 지 1년 8개월 만에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물밑 교섭 끝에 한국행이 성사된 것이다. 제3국에서 전쟁 중 붙잡힌 북한군 포로들의 귀순 의사를 존중해 받아들인 것이라 이례적인데, 북한과 러시아를 자극할 우려도 있어 우리 정부는 최대한 자제하며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던 북한군 포로 2명을 최근 한국에 보냈다고 전격 공개했고,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들이 사나흘 전 국내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은 생포하기가 쉽지 않다 며 그중 한 명은 포로로 잡힐 것을 알아차렸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운명이 자신을 죽게 놔두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며 북한군 포로 생포 당시 상황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북한에서 사람들을 키워내는 방식 이라며 그들의 자유와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다 고 비판했다. 또 왜 북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나, 그런 세력에게 전쟁하는 법을 배울 시간을 더 줘야 하나 고 반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김정은은 그들을 마치 화폐처럼 이용하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얻고 있다 며 아시아 전역의 국가들은 이미 북한의 향상된 탄도미사일과 크게 발전한 드론 역량을 알아차렸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마 평양에서 전사자들을 기리는 장면이 방송되는 것을 봤을 것 이라며 이 역시 미친 짓 이라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한 북한 지도자는 러시아군의 취약한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병력을 러시아에 보냈고 북한군 역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면서 제때 막지 못했고 제때 중단시키지 못했으며 러시아가 제때 처벌받지 않은 전쟁이 계속 확산하면서 악도 함께 퍼뜨리고 있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군 포로 2명이 며칠 전 무사히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고 밝혔다. 유 의원은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제가 파악하기로는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를 출발해 제3국을 경유해서 사나흘 전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현재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면서도 우리 정부의 정보당국이 막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며 관련 기관에서 신병을 보호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 했다.
유 의원은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 과정에서 우리 측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반대급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한 바 없다 고 답했다. 다만 자신이 파악하기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건 없이 포로들을 보내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안다며 그 약속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킨 것 아닐까 추정한다 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도 북한군 포로 송환을 우크라이나 지원 등 다른 현안과 연계해서 협상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유 의원은 송환 협의 과정과 관련해서도 양국이 송환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은 지난 6월쯤으로 안다 면서 당시 우크라이나가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 한국 외교당국 고위 당국자와 포로 송환에 기본적으로 합의했고, 이후 한·우크라이나 외교장관 회담과 양국 정상회담을 거치며 송환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로키 (low-key·절제 기조)로 이를 사실상 확인했다. 외교부는 연합뉴스의 문의에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고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며 이러한 입장에 따라 그간 우크라이나 측을 비롯한 관련국·기관과 필요한 소통과 협의를 진행해 왔다 고 밝혔다.
이어 개별 신병 처리 여부나 시기·경로, 양국 간 구체적인 협의 내용 등에 관해서는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 면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하지는 않았다.청와대 측도 이날 북한군 포로 한국행과 관련해 외교부와 같은 내용의 공지를언론에 배포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6.7.8 연합뉴스
북한군 포로 2명은 작년 1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존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생포 사실을 공개하며 알려졌다. 이들은 그간 한국 탈북민 단체에 전달한 친필 편지 등을 통해 한국으로의 귀순 의사를 밝혀왔다.
우리 정부는 헌법상 한국 국민인 북한군 포로들이 언론 인터뷰와 탈북민 단체 등을 통해 귀순 의사를 밝힌 만큼 이들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그간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의를 이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군 포로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당시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양 정상은 우크라이나 내 북한군 포로 문제는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해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고 설명했다.
앞서 양국은 지난 3월 한-우크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군 포로 문제를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통상 탈북민이 제3국을 통해 입국하면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의 신원 확인 및 임시 보호 조치를 거쳐 사회 적응 교육을 받는다. 다만 전쟁 포로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이들에 대한 관리와 정착 지원은 별도로, 상당히 예외적인 수준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지난 2024년 10월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파견하고 있다. 지금까지 파병된 북한군은 1만 6000명 수준으로, 교대 인원까지 합치면 약 2만 5000명이 주로 쿠르스크 지역 전선에 배치돼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막는 데 나름대로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6.9.23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 결정 배경을 묻는 연합뉴스 질의에 상당히 민감한 사안 이라며 자세한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국과의 직접적인 대화 를 통해 이번 결정이 이뤄졌다는 게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은 북한군 포로도 한민족 이라며 대한민국은 이들을 자국민으로 간주한다 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생포한 북한군 포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외교적, 인도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번 결정으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군이 포로가 돼 한국으로 귀순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북한 정권에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 문제도 걸려 있어서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적 생포를 교환 기금 이라고 표현하면서 장려해 왔다. 적을 많이 생포할수록 그만큼 러시아 수용시설에서 고통받는 자국 포로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포한 포로를 자국 포로와 교환하지 않고 외부로 송환할 경우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 논란이 될 소지도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이날 북한군 포로의 신병 인도를 러시아가 반복적으로 요청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며 러시아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당국이 오랜 고민 끝에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결정한 것은 북한군 포로의 한국 귀순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도주의 원칙을 우선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가 국제법 준수와 인도주의를 강조하며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마당에 국제사회의 시선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4년 넘게 이어지면서 방공망 재원 고갈, 겨울철 에너지 위기 등 동맹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유엔총회 연설 중 전격 공개한 것도 이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추가 파병 가능성 등을 부각하며 한국으로부터 방공망 지원을 받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