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 ‘느린 학살’에 맞서 갇힌 몸 주권 되찾기 [사람들] 이스라엘 남부의 한 교도소 수감자들. 사나운 맹견이 사뭇 위협적으로 보인다. Ⓒ알자지라 화면 캡쳐
지난 주 글에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제빵사 카데르 아드난(Khader Adnan, 1978-2023)이 87일 동안의 단식 끝에 숨진 과정을 살펴봤다. 8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나날을 감옥에서 지내면서 거듭된 단식투쟁으로 점령자 이스라엘의 억압에 맞섰던 아드난의 굳센 투쟁의지는 지금도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강한 인상으로 새겨져 있다.
아드난의 단식투쟁은 지난 1980년 영국 북아일랜드 감옥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출신 수감자 10명이 숨졌던 비극적 사건을 떠올린다. 보비 샌즈((Bobby Sands, 1954~1981)가 66일 동안 이어졌던 단식 끝에 27살이란 한창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와 함께 다른 9명의 IRA 청년 투사들도 감옥 안에서 굶어 죽었다. 이 젊은이들은 우린 잡범이나 절도범이 아니다”라며 정치범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철혈 총리 마거릿 대처는 강경책을 고집했다. 끝내 10명이 모두 숨지자, 대처의 옹고집과 계산된 비타협이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이 일었다.
26살 청년, 15일 단식 뒤 숨져
카데르 아드난의 연보를 보면, ‘1992년 이후 31년 만에 단식투쟁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수감자’로 기록돼 있다. 1992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스라엘 감옥 투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다. 그 무렵은 1987년부터 1993년 사이에 벌어졌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저항/봉기, 제2차 인티파다는 2000-2005년)가 절정기를 이룰 때였고 감옥 수감자 숫자도 지금처럼 많았다. 단식투쟁도 여러 차례 벌어졌다. 1992년에는 1만 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보름 동안(1992년 9월 27일~10월 11일) 집단 단식투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1명이 숨졌다.
그 희생자는 동예루살렘의 자벨 무카베르 마을 출신인 후세인 오비다트(Hussein Obidat)였다. 사망 당시 26세였던 그는 이른바 ‘테러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아슈켈론(Ashkelon) 교도소에서 3년째 복역 중이었다. 그는 1992년 9월 27일부터 교도소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였다. 15일 동안의 집단 단식투쟁이 끝나고 사흘 만인 10월 14일,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옮겨진 뒤 곧 숨을 거두었다.
26살 청년 정치범이 단식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분위기는 끓어올랐다. 분노한 군중들이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이면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동예루살렘을 비롯한 서안 지구에 있던 대부분의 학교·상점들이 문을 닫고 애도 기간을 가졌다. 수감자들의 대규모 집단 단식투쟁과 그에 따른 청년의 죽음은 그 무렵 한창 진행 중이던 중동 평화협상 기류에도 영향을 미쳤다(워싱턴에서 ‘오슬로 평화협정’ 조인식을 가진 것은 1년 뒤인 1993년 9월 13일).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오페르 교도소. 이스라엘 30개 교도소 가운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있는 유일한 교도소다. ⒸOlivier Fitoussi
1967년 이래 80만 명 감옥에 갇혀
1967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그해 6월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해서 ‘6일 전쟁’) 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억압 통치를 받게 됐다.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보고서 같은 데서 팔레스타인을 일컬을 때 쓰는 공식 명칭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OPT)’이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고난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80만 명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다. 돌맹이를 던진 꼬마 어린이부터 백발노인, 임산부까지 이스라엘의 심기를 거스르면 현장에서, 또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구금은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뒤 대규모 투옥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 받았던 말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억압-피억압 관계에서 감옥은 중요한 정치투쟁 영역이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역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감옥제도를 철저히 이용해 왔다. 그에 맞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감옥을 반이스라엘 정치투쟁의 무대로 삼아왔다. 이런 상황을 잘 요약해 담아낸 글 하나를 옮겨본다.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20%, 남성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80만 명 이상이 구금되었으며, 이 중 60만 명 이상이 장기간 수감된 것으로 추산된다. 투옥은 팔레스타인 공동체와 그들의 정치적 의식에 결정적인 경험이다. 이스라엘 감옥 안에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을 결성하는데, 이는 식민지 맥락에서의 정치적 투옥의 특징이다. 팔레스타인 수감자 운동과 저항 활동은 감옥 밖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수감자 문제는 팔레스타인 정치의 중심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에서 적어도 한 명의 남성 구성원이 (비록 단기적일지라도) 투옥된 경험이 없는 가정을 찾기는 드물다. 네 아들을 둔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명체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듯이, 모든 팔레스타인 남성도 결국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Smadar Ben-Natan, Dana Boulus and Shirley Le Penne, The ‘One Carceral State’: Mass Incarceration and Carceral Citizenship in Palestine/Israel, International Journal of Middle East Studies, Volume 56, Issue 3, August 2024)
위에 옮긴 글은 이스라엘 인권 변호사 사마다르 벤 나탄(Smadar Ben-Natan, 미 워싱턴대, 인권학)를 비롯한 3명의 인권 연구자들이 함께 쓴 ‘하나의 감금 국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대량 감금과 감옥 시민권’이란 제목의 논문이다. 3명의 공동 필자는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이스라엘 영토 안의 감옥에 가둠으로써 ‘하나의 감금 국가’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이스라엘 교도소청(IPS)이 관할하는 30개 교도소 가운데 서안지구에 있는 감옥은 오페르(Ofer) 교도소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이스라엘군이 관리하는 1차 구금소와 심문센터들이다).
이스라엘은 법 집행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대한다. 필자들은 역설적이게도,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대규모로 ‘배제적 포용’을 하는 이스라엘의 감옥 정책은 시민권 체제 전체를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문과 같은 가혹 행위를 가하면서도 그들을 이스라엘인 수감자들과 함께 같은 감옥에 가두는 것은 이스라엘의 감금 체제가 단일국가 체제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글의 요점이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하나의 국가’의 ‘감금 시민’이 되어 다른 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며, 인종차별적이고 억압적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체제에 맞서 저항의 범위를 감옥 안팎으로 넓혀간다는 것이다.
모든 팔레스타인 남성은 언젠간 감옥 간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유혈충돌이 거세지면 이스라엘 감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나기 마련이다. 1987년에 터진 제1차 인티파다는 1967년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펼친 억압정책에 맞선 첫 번째 대규모 봉기였다. 휴먼라이츠워치(HRW) 자료에 따르면, 제1차 인티파다(1987–1993) 기간 동안 1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감옥에 갇혔다.(https://www.hrw.org/reports/pdfs/i/israel/israel946.pdf)
제1차 인티파다는 적지 않은 인명 피해(팔레스타인 사망자 1166명, 이스라엘 사망자 90명)를 낳은 끝에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라는 땅을 나눠주고, 이스라엘은 평화를 되찾는다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 원칙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출범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합의가 이스라엘의 기만책이었고 억압은 그치지 않았기에 제2차 인티파다(2000–2005)가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PCBS)에 따르면, 그 6년 동안에 팔레스타인 사망자 4789명(이스라엘은 1053명)을 내고 7만 명이 감옥에 갇혔다. (https://www.addameer.org/statistics)
이렇듯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팔레스타인 공동체 안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섯 집에 한 집꼴로 가족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가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을 만큼 옥고는 팔레스타인의 보편적인 아픔이다. 실제로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서 가족 구성원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의 남성이 (비록 단기간일지라도) 투옥된 경험이 없는 가정을 찾기는 드물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나누곤 한다. 모든 팔레스타인 남성은 언젠가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힐 것이다. 이미 다녀왔다고? 그렇다면 언젠가 또 갈지도 모른다.”
종신형 받은 무기수 118명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해마다 4월 17일을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날’로 기린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하루빨리 풀려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주고 받는다. 아울러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 4월 17일이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날’로 정해진 지는 제법 오래됐다. 52년 전인 1974년 봄 팔레스타인의 임시정부 역할을 하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입법기관인 팔레스타인 인민평의회(PNC) 가 4월 17일을 수감자의 날로 선포했다. 언젠가는 감옥 문이 열리고 수감자들이 풀려나는 사실상의 ’해방의 날 이자 남은 이들의 석방을 위해 투쟁하는 날 을 앞당기자는 뜻에서다.
그날이 오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서안지구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흩어진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전체 인구는 1550만 명)에서 대규모 연대 행사를 갖는다. 수감자들의 가족들은 갇힌 이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인다. 국제 인권 단체들(앰네스티, Human Rights Watch 등)도 그날에 맞춰 이스라엘 감옥에서의 고문, 미성년자 구금 실태 등을 고발하는 성명서 또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반이스라엘 활동을 펴다가 붙잡혀 들어간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그들이 겪는 인권침해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목소리들이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도 4월 17일을 맞아 집단 단식투쟁을 벌이곤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세계는 그동안 잊고 있던 팔레스타인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떠올리며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감옥에는 20년 이상 갇혀 지내온 장기수들도 많다. 서안지구 라말라에 본부를 두고 법률적 지원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돕는 인권단체인 ‘수감자 지원 및 인권협회(Addameer)’에 따르면, 2026년 현재 종신형(무기징역형)을 복역 중인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118명에 이른다.
이스라엘 감옥의 장기 복역수들. 왼쪽부터 이브라힘 바야드사, 아흐마드 아부 자베르, 나엘 바르구티, 마르완 바르구티. 45년 동안 복역 뒤 풀려난 나엘을 뺀 3인은 지금도 복역 중이다.
40년 갇힌 장기수 2명
2023년 10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뒤 3차에 걸친 인질-포로 교환협상으로 장기수들이 많이 풀려났다. 하지만 지금도 100명 안팎의 장기수들이 20년 이상 감옥살이를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1986년에 수감돼 지금껏 40년째 갇혀 지내는 이도 2명에 이른다. 이브라힘 (Ibrahim Bayadsa, 1948년생), 아흐마드 아부 자베르(Ahmad Abu Jaber, 1948년생)로 둘은 출생연도와 수감 햇수가 똑같다. 올해 나이로 78세 노인이다.
이브라힘은 급진 좌파 저항집단인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요원으로 1984년 이스라엘 군인인 모셰 타맘(Moshe Tamam)을 납치하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이스라엘 시각에선 ‘테러범’이지만, 팔레스타인 공동체 안에서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싸운 정치범 또는 자유 투사 로 받든다. 또 다른 장기수 아흐마드는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밀고자(이스라엘 시각에선 ‘협력자’)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았다.
위 두 수감자보다 더 오래 감옥에서 지냈던 이는 2025년 2월 하마스와의 인질-포로 교환협상으로 풀려난 나엘 바르구티(Nael Barghouthi, 1957년생)다, 무려 45년을 감옥에 보냈다. 2009년 기네스북은 그를 ‘역대 최장수 정치범’으로 인증했었다. 21살이던 1978년 이스라엘 버스 운전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처음 수감돼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33년을 감옥살이 하다가 2011년 포로교환으로 풀려났었다. 하지만 2014년 ‘석방조건을 어기고 테러활동을 편다’는 혐의로 다시 붙잡혀 종신형을 복역중 포로교환으로 풀려나 이집트로 추방됐다. 그는 지금 튀르키에에 머물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 라말라에 있는 그의 아내의 출국을 막아 너무 비정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지금도 부부는 화상 통화만 할 뿐 서로의 손을 맞잡지 못한 상태다.
장기수들 가운데 국제사회에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마르완 바르구티(Marwan Barghouthi, 1954년생)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인 파타Fatah) 사무총장이었던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대표했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tafat, 1929-2004)의 후계자로 꼽히곤 했다. 제2차 인티파다(2000-2005)를 부추겼다는 혐의로 2003년 붙잡혀 5개의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올해로 23년째인 오랜 수감생활 때문에 요르단강 서안의 만델라 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유대인 간수들의 의도적인 학대와 거듭된 폭행으로 그의 건강 상태는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르구티가 이스라엘군에 체포되기 10개월 전인 2002년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강공책을 비판했다. 그는 오슬로 평화협정(1993) 뒤로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에 유대인 정착촌을 넓히고 있다 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이 땅에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가 세워질 것”이란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미지북스, 2021, 152-153쪽).
2026년 8월 18일, 서안지구 북부 나블루스에서 어린이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아버지들의 사진을 들고 석방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Nasser Ishtayeh/Flash90
단식투쟁 왜 하는가
바르구티를 포함해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이스라엘의 지배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이곤 한다. 이스라엘의 구금 정책과 가혹한 구금 환경, 즉 ▲독방 감금 ▲가족 면회 금지 ▲부적절한 의료 처치 ▲고문 및 기타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처우에 맞선 평화적인 항의 수단으로서의 단식 투쟁이다. 하지만 단식투쟁은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심각한 체중 감소, 실명으로 이어지는 시력 상실, 청력 손실, 허약, 불면증, 뇌졸중, 신부전 및 기타 장기 부전, 심장마비 등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단식투쟁을 통해 구금 환경을 개선하는 등 우리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쟁취하려고 싸워왔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인권단체 아다미르(Adameer)가 작성한 문서(‘팔레스타인 단식 투쟁: 사실을 파악하기’)는 단식투쟁을 왜 벌이는지를 이렇게 풀이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왜 단식투쟁에 나서는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불공정한 사법체계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항의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벌인다. 이스라엘 사법체계는 재판 없는 행정구금 명령과 강제급식 법안을 비롯한 각종 법률을 통해 자의적인 구금을 저지르고 수감자의 목소리를 눌러왔다. 하지만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단식투쟁을 통해 정당한 불복종을 실천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있다. 단식 투쟁자들은 통제와 지배라는 징벌적 권력에 맞선다. 수감자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완전한 자율권을 빼앗긴 채 감옥이 만들어낸 구속과 박탈의 구조적 체계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단식투쟁을 통해 이들은 감옥 당국에 맞서 의사결정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신체에 대한 주권을 되찾고자 한다.]
(https://addameer.ps/publications/palestinian-hunger-strikes-get-facts?utm_source=chatgpt.com)
단식투쟁의 오랜 역사
팔레스타인 단식투쟁의 역사는 짧지 않다. 그 속에 많은 고통스런 이야기들을 남겼다. 수감자들은 독방 감금을 포함한 온갖 모욕과 폭행, 가혹한 징벌을 그치라고 요구했다. 그런 집단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교도소 당국은 때로는 유화책으로 수감자들을 대했지만, 말뿐이었다. 대개는 강공책으로 맞섰다.
폭력적인 대응 방식 가운데 하나는 강제급식이다. 단식을 하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묶어놓고 코나 입을 강제로 벌여 음식 주입관(카테터 또는 튜브)을 통해 음식물을 식도 안으로 집어넣는 방식은 폐를 비롯한 장기를 손상시켜 죽음을 부르기 십상이다. 그로 말미암아 여러 명이 곧바로 또는 후유증으로 숨졌다. 일부 야비한 유대인 간수들은 굶는 이들 바로 옆에서 푸짐한 음식상을 차리고 먹고 마시며 떠들어댔다(2014년 9월 6일 세월호 유족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단식할 때 극우 성향의 일부 패거리들이 몰려와 피자 100판, 치킨, 맥주를 배달시켜 게걸스레 먹고 마시던 추태가 떠오른다).
단식투쟁은 수감자 스스로가 범죄자 가 아닌 전쟁 포로이자 정치범 으로 인정받고 존엄을 되찾으려는 투쟁이었다. 엄청난 군사적 불균형 아래서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이스라엘 감옥을 ‘피억압자·약자의 저항 공간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집단적 또는 개인적 단식투쟁을 벌이는 것도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과 억압에 맞선 저항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숨졌다.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의료 방치로 죽고, 성폭행을 당하고...이스라엘 감옥의 수감자들은 우리 인간의 생존 조건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파괴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느린 학살‘의 희생자들이다. 단식투쟁을 포함한 옥중투쟁은 그런 ’느린 학살‘을 멈추려는 저항이라 볼 수 있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원래는 ’성고문 생지옥-이스라엘 감옥‘ 관련 연재 글을 이번 주에 끝내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옥중 투쟁 관련 글의 분량이 많아져 2회로 나눈다. 따라서 다음주에 싣고자 했던 ’하마스 성폭행의 진실’(2023년 10월 7일 기습 당시 유대인들에게 저질러졌다는 성폭행 논란) 기사를 다다음주로 미루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옥중 투쟁기를 한 번 더 다루려 한다.(계속)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