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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성매매 집결지, 그 공간과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성매매 집결지, 그 공간과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사람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오래된 건물은 철거되고, 골목은 넓은 도로와 새로운 건물로 대체된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까지 함께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쉽게 망각되고, 사회는 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영등포 집결지 아카이브북 1899-2024」는 바로 그 지워진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를 정리한 자료집을 넘어,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공간과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시민사회의 기록이자 인권의 아카이브다.   사진 출처: 다시함께상담센터 제공 나에게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나는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으로 활동하며 불법 성매매 광고와 음란 게시물, 디지털 성착취성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신고하는 일을 했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불법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이러한 활동은 시민이 사회의 안전망을 함께 만드는 공익 활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랫동안 신고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 화면 속 짧은 광고 문구와 익명화된 게시글만으로는 성매매 산업이 실제 도시 공간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깊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온라인에서 신고했던 수많은 게시물 뒤에는 분명 현실의 삶이 존재했지만, 그 삶을 직접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전환점은 서울 액션 시민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를 직접 걸어본 경험이었다. 좁은 골목과 오래된 건물, 낡은 간판과 철문은 인터넷 속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서울 한복판에 오랫동안 사회가 침묵하거나 외면해 온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현장 답사 이후 다시함께상담센터가 기획·제작한 「영등포 집결지 아카이브북 1899-2024」를 읽으며 그 공간이 품고 있던 역사와 구조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성매매 집결지를 개인의 일탈이나 도덕성의 문제로 설명하지 않는다. 1899년 경인선 개통 이후 영등포의 형성과 일제강점기의 공창제, 해방 이후 미군기지 문화, 산업화 과정에서의 도시 빈곤과 여성 노동 문제를 촘촘히 연결하며 집결지의 역사를 사회구조 속에서 읽어낸다. 성매매 집결지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국가 정책과 도시개발, 자본과 빈곤, 성차별과 복지의 공백이 오랜 시간 중첩되며 만들어진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점을 이 책은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개인의 책임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들의 구술 기록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들의 삶은 흔히 소비되어 온 자극적인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가난과 가족 부양, 폭력과 학대, 사회적 단절 속에서 생존을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삶과 존엄을 가진 존재로 기록한다. 그것이야말로 인권의 관점이며 시민사회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익신고자와 공익제보자는 흔히 부패나 불법행위를 신고하는 사람으로만 이해된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공익은 그보다 훨씬 넓다. 사회가 외면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침묵 속에 묻힌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며, 구조적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리는 일 또한 중요한 공익 활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등포 집결지 아카이브북 1899-2024」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 역시 또 다른 공익제보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지워질 뻔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우리 사회 앞에 다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영등포구 제공 이 책을 읽으며 도시 재개발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재개발은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누구의 삶이 기록되고 누구의 삶이 지워지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개발의 성과가 건물과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될 때 사회적 약자의 삶은 흔적 없이 사라지기 쉽다. 그렇기에 시민이 직접 남기는 아카이브는 더욱 소중하다. 시민의 기록은 국가나 시장의 논리에서 쉽게 배제되는 사람들의 삶을 공동체의 역사로 남기는 공공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공공성은 거대한 제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공동체의 역사 속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민들의 연대와 실천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영등포 집결지 아카이브북 1899-2024」는 시민 아카이브가 왜 민주사회에 필요한 공적 자산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서울 액션 시민활동을 통해 현장을 직접 걸어 보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시민참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시민의 역할은 단지 문제를 감시하거나 신고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가 보지 않으려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기록되지 못한 삶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구조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 또한 중요한 시민의 책임이다. 돌이켜 보면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 활동 역시 단순한 온라인 신고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했다. 디지털 공간 속 성매매 광고와 착취 구조는 현실 사회의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폭력, 빈곤의 구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게시물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존엄과 인권을 중심에 두고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다. 「영등포 집결지 아카이브북 1899-2024」는 단지 과거를 정리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건물은 철거될 수 있지만 기록은 철거되지 않는다. 공간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기억은 공동체를 통해 이어진다. 공익신고자와 공익제보자가 사회의 잘못을 드러내 공동체를 지키는 것처럼, 시민의 기록 역시 지워진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공익의 실천이다. 「영등포 집결지 아카이브북 1899-2024」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의 목소리를 역사 속에 남길 것인가.이상돈 시민기자 sdlee35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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