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 교통안전, 예측 가능한 신호 고민했으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동시 보행 신호가 들어오는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 중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켜지고 사람이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거나 설 수가 없어 재빨리 지나간 경험, 글쓴이만의 경험은 아니지 싶습니다. 이럴 때는 운전자도 놀라고, 보행자도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순간이지요.
우회전은 우리나라 교통안전의 대표적인 취약 요소입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21년~2025년) 동안 우회전 중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는 약 1만 9천 건, 사망자는 300명이 넘습니다. 하루 평균 10건이 넘는 사고가 일어나고, 엿새에 한 명꼴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정부가 2023년부터 우회전 통행 방법을 정비하고 우회전 신호등을 확대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도가 바뀌었음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적지 않습니다. 운전자는 우회전할 때 전방 신호, 왼쪽에서 오는 차량, 앞차의 움직임, 우회전 뒤 첫 번째와 두 번째 횡단보도까지 동시에 살펴야 합니다. 여기에 최근 늘어나고 있는 동시 보행신호 교차로에서는 모든 횡단보도의 신호가 한꺼번에 바뀌기 때문에, 운전자가 보행신호의 전환 시점을 미리 예측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글머리에서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운전자 시점에서 본 동시 횡단보도 교차로 모습]
물론 이 동시 보행신호가 사고를 증가시킨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교통안전은 사고 원인을 사고 후에 규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미리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운전자가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구조라면, 그 자체가 개선해야 할 대상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교통정책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우회전 차량이 빠르게 회전하지 못하도록 교차로를 설계합니다. 회전 반경을 줄이고 횡단보도 턱을 높여 차량 속도를 자연스럽게 낮춥니다. 차량은 느리게 움직이고 보행자는 먼저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스웨덴은 사람은 실수한다 는 전제 아래 도로를 설계하는 비전 제로(Vision Zero) 정책을 시행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한 결과입니다.
미국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적색신호에서도 일시정지 후 우회전을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보행자와 자전거 사고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뉴욕과 시애틀 등 주요 도시들은 적색신호 우회전 금지(No Turn on Red) 구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운전자에게 조금 불편하더라도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한 선택입니다.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사람에게 더 많은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수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의 움직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교통체계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우회전 정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사고 위험이 큰 교차로에는 우회전 전용 신호를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차량과 보행자가 동시에 같은 공간을 이용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안전 대책입니다.
[우회전 전용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 모습]
둘째, 운전자도 횡단보도 보행신호의 전환 시점을 미리 알 수 있는 신호체계를 도입해야 합니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 중인 적색 잔여시간 표시기 처럼 교차로에서 보행 신호가 언제 녹색으로 바뀌는지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무리하게 우회전을 감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서게 됩니다. 운전자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보행자의 안전지대도 넓어질 것입니다.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이 달린 교차로 모습]
셋째, 우리나라 교차로 환경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동시 보행신호가 설치된 교차로와 일반 교차로를 비교해 우회전 차량의 급제동 빈도, 보행자와의 상충 횟수, 사고 발생률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교통정책은 경험이나 직감이 아니라 오직 통계 위에서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통신호는 단순히 멈추고 가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다음 상황을 예측하게 하는 사회적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분명할수록 운전자는 더 안심하고 멈출 수 있고, 보행자는 더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습니다.
교통안전은 운전자와 보행자의 대립 구도가 아닙니다. 운전자도 예측이 가능해야 보행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회전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 를 넘어 우회전을 어떻게 예측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 중심 교통정책의 다음 단계이며, 모두가 안심하고 길을 건널 수 있는 나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더 나은 교통안전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과 슬기를 모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