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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700억 박람회의 진짜 문제는 트럭이 아니다

700억 박람회의 진짜 문제는 트럭이 아니다
[행사]
여수는 내게 관광지가 아니다. 서른 초반, 나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 홈페이지 운영 PM으로 그 도시에서 몇 달을 살았다. 국비를 포함해 2조 1000억 원이 들어갔고, 93일 동안 820만 명이 다녀간 행사였다. 밤늦게 숙소로 걸어 돌아가던 길의 갯내를 아직 기억한다. 10월 초가 큰아이 생일이다. 어디로 갈까 한참을 고르다 여수를 택했다. 그런데 여수엑스포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빅오와 주제관이다. 열차에서 막 내린 사람의 시야를 그 거대한 구조물들이 가득 채운다. 14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는 안이 가득했고 지금은 비어 있다는 것뿐이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빅 오 쇼는 47m 높이의 원형 조형물 디오(The-O)와 10m 간격 3열(각 120m)로 설치된 해상분수, 빔프로젝터 14대와 레이저 4대가 하나로 결합해 선보이는 최첨단 특수효과 쇼로, 여수 밤바다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사진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아쿠아플래닛과 스카이타워, 크루즈 부두는 지금도 관광자원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큰 시설들은 오래 잠겨 있었다. 2022년 박람회장 소유권이 여수광양항만공사로 넘어갈 때는 과감한 투자로 엑스포장을 살려낼 것이라는 장담이 있었지만, 돌아온 것은 방치와 노후화뿐이었다는 지적이 지역에서 나온다. 숙제를 못 푼 도시가 숙제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여수는 다시 박람회를 열었다.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는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 를 내걸고 9월 5일 문을 열어 11월 4일까지 돌산 진모지구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개도와 금오도, 그리고 옛 박람회장이 부행사장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주제섬을 비롯한 여덟 개 전시관이 들어선 주무대는 진모지구다. 새로 닦은 땅이다. 14년치 사후활용 숙제를 아직 풀지 못한 도시가 그 곁에 숙제를 하나 더 만든 셈이다.   2026년 여수세계섬박람회는 세계 최초 ‘섬’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행사로 기후위기 시대에 섬이 지닌 가치와 가능성,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잇는 새로운 길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자리다. (사진출처 : 여수시 보도자료) 옮기자는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모지구를 주행사장으로 정한 것은 민선 7기였고, 2024년 총선 뒤 지역 국회의원이 변경을 강하게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뒤늦게 나왔다.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원점 재검토 주장이 제기됐지만, 전시관 배치와 사후활용 면에서 진모지구가 낫다는 조직위의 입장이 유지되며 논의는 그대로 닫혔다. 그 사이 예산은 조용히 불어나 있었다. 숫자는 이렇다. 민선 7기 유치 초기 212억 원 규모로 한 달간 검토되던 행사는 기간과 규모가 커지며 공식 사업비 703억 원이 됐고, 77개 연계사업까지 더한 관련 예산은 한때 1839억 원으로 내부 집계됐다. 홍보와 관람객 유치에만 102억 원이 배정됐다. 목표 관람객은 300만 명인데, 개막 첫 주말에 다녀간 사람은 3만 5668명이었다. 목표를 채우려면 하루 4만 9200명씩 와야 한다. 짐칸에 오른 사람들 그러던 차에 지난 9월 15일, 영상 하나가 퍼졌다. 전남 무형유산 제1호 거문도뱃노래 공연이었다. 흰색 픽업트럭 양옆에 천을 두르고 현수막을 붙였고, 흰옷 입은 공연자들이 짐칸에 올라 허공에 노를 저었다. 천으로 다 가려지지 않은 차체가 그대로 담겼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그 장면은 전국의 조롱거리가 됐다. 여론은 700억 원을 물었다. 과녁은 조금 빗나갔다. 그 공연은 박람회 기간 스무 차례 무대에 공연료와 부대비를 합쳐 8000만 원이 잡힌 초청사업의 하나였고, 팀당 책정액은 최대 300만 원이었다. 현실적으로 300만원 예산으로 배를 띄울 수는 없다.   16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는 전날 박람회장에서 촬영된 이 영상이 빠르게 퍼졌다. 전남 무형유산 제1호인 ‘거문도뱃노래’를 재현한 공연이다. (사진출처 : 유튜브 화면 캡처) 그리고 그 짐칸에 오른 이들은, 아마 평생 그 노래를 불러온 어르신들이었을 것이다. 거문도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던 노동요를 몸으로 익혀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던 대로 했고, 부르던 대로 불렀다.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는 그분들이 정할 몫이 아니었다. 조롱의 화살이 가장 먼저 닿은 자리가 하필 거기였다. 결국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고생만 하신 셈이다. 화살이 향한 방향까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해명 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위는 지역에서 비슷한 방식의 연출과 공연이 많아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한 문장이 사태 전체를 설명한다고 본다. 모자랐던 것은 예산이 아니라 시선이었다. 공공의 언어, 소관이 아니라는 말 섬에서도 닮은 장면이 있었다. 방송 보도에 따르면 부행사장 개도의 캠핑장에는 햇빛을 가릴 시설 없이 파라솔 68개가 놓여 있었고, 전기 용량이 모자라 플러그를 꽂으면 차단기가 내려갔다고 한다. 입점 상인들은 식자재를 모두 버리고 철수했다. 여수시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음식판매 부스와 전기시설은 승인 조건을 넘겨 설치된 것으로 박람회 운영시설과는 무관하며, 부행사장 전력은 정상적으로 공급돼 왔다는 설명이다. 조직위 역시 인터뷰 대상이 박람회와 직접 관련 없는 부녀회 운영 식당이었다며, 허위 정보를 인용하거나 유포하는 매체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 반박이 모두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 배를 타고 개도에 들어간 사람에게 그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섬에 내려 요기할 곳을 찾다가 불 꺼진 부스를 보았다면, 그는 박람회를 본 것이다. 승인 시설인지 초과 시설인지, 조직위 소관인지 부녀회 소관인지는 관람객의 눈에 적혀 있지 않다. 소관이 아니라는 말은 행정의 언어이지 방문객의 언어가 아니다. 그 장면을 문제로 여기지 못한 감각과 그 부스를 우리 것이 아니라고 답하는 감각은, 결국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6.3 지선 이후, 이제 갓 두 달의 시장 그래서 서영학 여수시장이 18일 간부회의에서 한 말이 오래 남았다. 그는 행정이 미리 점검할 수 있었던 영역과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영역을 나눠 대응하라고 주문하면서도, 어찌 됐건 그런 모습이 나간 것은 우리 잘못”이라며 조직위든 여수시든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책임을 공연단체 쪽으로 밀어내지 않은 것이다. 더 눈여겨본 대목은 그다음이다. 이번 공연 한 건에 문제를 가두지 말고, 지역의 무형, 유형문화재와 여수에 특화된 공연, 전시가 평상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외부인의 시각에는 그것이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까지 살펴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한 번의 논란을 덮는 수습이 아니라, 오래 당연하게 여겨온 것을 다시 꺼내 보자는 이야기다.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개장식(사진출처 : 여수시장실) 민선 9기는 7월 1일에 시작했고 개막은 9월 5일이었다. 두 달이었다. 이미 짜인 판을 되돌리기에는 턱없이 짧고, 겨우 몇 가지를 보탤 수 있었을 시간이다. 그 두 달의 시장에게 703억 원의 설계도를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그의 동선은 현장과 회의장 사이를 쉼 없이 오간다. 제가 짓지 않은 집에서 비 새는 자리를 찾아다니는 일이다. 앞선 행정이 남긴 몫까지 끌어안은 채, 변명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시끌벅적한 여수 여수가 시끄럽다. 정작 오래 시끄러웠어야 할 것은 14년째 불이 꺼져 있는 주제관인데 말이다. 방치된 것은 건물이 아니다. 끝난 다음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기르지 못한 채 새 행사장을 또 세운다면, 2040년의 어느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고 진모지구를 지나며 이 글과 똑같은 문장을 쓰게 될 것이다. 지금 여수에 필요한 것은 트럭을 가릴 천이 아니다. 잠시 외부인의 눈을 빌려 제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는 일이다. 한 가지는 미리 말해두고 싶다. 14년 전에도 관람객이 목표에 못 미치자 교육 당국이 학생들의 박람회 참관을 유도했고, 국무총리실까지 나서 전국 교육청과 참관 활성화를 논의했다. 사실상의 동원이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그 방식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빈 객석을 채워야 할 것은 인솔 명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 가을, 우리들의 마음이 여행지로 여수를 향하기를. 한 가지 더 권하고 싶다. 박람회 누리집에는 생각보다 쓸 만한 정보가 많다. 여수시가 구축한 실시간 현황 대시보드는 이동통신사 유동인구와 셔틀버스, 주차장, 시내버스 운행정보를 연계해 시간대별 혼잡도를 보여준다. 행사장 안쪽만이 아니라 여수를 도는 사람들의 흐름이 함께 잡히니, 언제 어디를 비켜 갈지 동선을 짜는 데 쓸모가 있다. 단지 언론에서 보여지는 트럭 영상만 보고 여수행을 접은 사람이 있다면, 그 화면부터 한번 열어보시길 권한다.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실시간 서비스 안내 (사진출처 : 여수시) 서른 초반의 기억이 그 도시에 있다. 지금도 선명한 추억으로. 부부가 되기 전, 연인이던 우리가 두 손을 잡고 걷던 곳도 여수였다. 까닭 없이 그리워지던 밤바다가 있었고, 노래 한 소절에 온 나라가 짐을 싸 내려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도시다. 트럭 한 대로 기억될 도시가 아니다. 여수는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맛과 멋이 있어 시끌벅적한 여수. 10월에 아이 손을 잡고 내려갈 나도, 올해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 소란마저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다 이따금 꺼내볼 것이다.  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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