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기다렸는데…가려진 생모의 기록 [사람들] 김효정(1985년생) 씨는 입양됐다는 사실을 스물세 살에야 알았다.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무심코 내뱉은 말은 그녀의 삶을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았다.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차마 확인하지 못했던 사실이 한순간에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아버지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딸은 기억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친가족과 헤어져야 했는지 알 수 없었던 시간은 그날부터 더욱 길고 깊어졌다.
그는 갓난아기 때 입양됐다. 생모는 미혼모 쉼터에서 그녀를 낳았고, 생후 일주일 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딸과 헤어졌다. 당시에는 홀트가 자체 운영하던 쉼터를 이용하려면 미혼모가 출산 후 입양 보내는 것을 전제로 하던 시기였다. 미혼모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린 김효정이 위탁가정을 거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우주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찍은 어린 시절 사진 몇 장과,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입양 기록이었다. 그러나 기록은 처음부터 그녀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닫혀 있었다.
김효정씨의 신생아 당시 모습. 최순아 라는 본명이 기록되어 있다.
제가 스물네 살이던 2009년 무렵, 서울 합정동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에 연락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죽음을 생각하며 상담전화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상담원이 홀트를 알려주었습니다. 출생과 입양에 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던 것입니다. 홀트에 연락하는 상황에서는 입양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친척들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고, 특히 돌아가신 할머니는 생전에 입양 사실을 직접 말하지는 않으면서도 여러 차례 상처가 되는 말을 남겼습니다. ‘너는 우리 식구를 안 닮았다. 우리 가족 중에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 없다. 체격이 집안사람들보다 크다.’ 그런 말을 자주 했지요.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감정도 단순하지 않아요. 할머니와 애증의 관계였다고 할까. 할머니의 말은 입양 사실을 암시했고, 어린 제가 가족과 다르다는 느낌을 심어준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김 씨는 그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어딘가 다른 존재라는 느낌은 차곡차곡 쌓였다. 할머니의 말은 훗날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입양 사실을 확인하기 전부터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만삭이던 생모와 양부모 사이에 면담이 있었다는 사실을 홀트에 연락했을 때 확인하기도 했다. 자신의 출생에 관한 중요한 단서였다. 생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슨 사정으로 자신을 낳았을까. 양부모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녀는 직접 홀트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돌아온 답변은 방문을 만류하는 것이었다. 찾아와도 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고, 보여줄 수 있는 자료도 없다는 취지였다. 김 씨는 그때부터 홀트라는 조직에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가족과 헤어진 사연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곳은 다가갈수록 더 멀게 느껴지는 장소가 됐다. 그녀가 궁금했던 것은 누군가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삶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질문은 좀처럼 답을 얻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김 씨는 결혼했고, 자신의 삶을 꾸려갔다. 입양 사실을 확인하기까지도,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공식적으로 열람하기까지도 긴 세월이 필요했다. 2026년 10월 6일, 김 씨는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자신의 입양 기록을 확인했다. 48페이지 분량의 기록 가운데 볼 수 있었던 것은 32페이지뿐이었다. 생부모와 관련된 내용은 가려져 있었다. 자신이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확인하려고 청구한 자료 가운데 정작 가장 알고 싶었던 대목은 볼 수 없었다. 서류를 보여주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김 씨에게는 코로나19 시절의 칸막이를 연상시키는 환경에서 자료가 제시됐다. 양부모의 개인정보조차 공개할 수 없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김 씨는 부모님 모시며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이유로 기록 확인에 제한이 있었다. 아버지를 직접 모시고 오겠다고 해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반복됐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생부모와 양부모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입양인의 출생과 가족관계에 관한 정보 역시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생부모의 기록은 저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가 입양인의 알 권리와 뿌리를 찾을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의 사생활이 아니라, 출생에 관한 정보입니다. 태어나서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40여년 시간을 보냈는데, 어렵게 마주한 서류에서도 생부모에 관한 핵심 정보는 가려져 있었습니다.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당사자가 그 기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던 것입니다.”
다음 날인 10월 7일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시위가 예정돼 있던 날이었다. 김 씨는 그날 생모가 살아 있다는 짧은 연락을 받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문 너머에는 또 다른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모는 자신을 기억할까. 만나고 싶어 할까.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살아 있다는 소식은 희망이었지만, 모든 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지난 10월 7일 진실과화해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국내외 입양인과 고아수용시설 피해자들이 빠른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저를 입양하신 부모님은 여러 차례 유산을 겪었다고 합니다. 당시 홀트아동복지회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가족은 제가 돌이 지났을 무렵 강서구로 이사했습니다. 어머니는 중학교 3학년이던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에게 엄마의 죽음은 또 하나의 상실이었습니다. 제가 25세 때 아버지는 재혼했습니다. 다행히 새어머니는 매우 좋은 분이었습니다. 새어머니 덕분에 행복한 기운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엄마를 잃은 경험은 제 삶에 오래 남았습니다. 생모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망설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상실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생모를 만나는 일은 단순한 호기심의 충족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비어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상실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생모가 재혼해 다른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청년이 됐을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을 알고 있을까. 생모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김 씨는 한때 이런 생각을 품고 청소년을 위한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형제자매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장학재단에서 활동할 때는 지원을 받아온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는 일과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 생모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막상 만났을 때 감당해야 할 감정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했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제는 생모가 나이가 들었을 경우 자신이 돌봄을 맡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는 고민 중 하나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생전 돌봄노동을 경험했던 그녀에게 그것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걱정이 아니다. 만남을 원하면서도 두렵다. 알고 싶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역시 두렵다. 그 마음은 모순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출생을 알 수 없었던 사람이 마침내 문 앞에 섰을 때 겪는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김 씨는 서른한 살에 결혼했다. 시어머니 역시 입양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에게 입양된 친족 간 입양 사례였다. 남편은 김 씨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해 주었다.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가족 안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됐다. 김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창시절, 학원에도 다니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화여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입양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 온 시간이 있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을 학력과 성취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성취 뒤에는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동기가 있었다. 주변의 입양인들을 보며 김 씨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곤 한다. 입양인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마치 언젠가 생부모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어.’
성공은 분명 소중하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공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삶은 또 다른 부담을 짊어진다. 김 씨는 20대 후반, 성공한 해외입양인의 콘서트에 간 기억이 있다. 무대 위에 선 입양인의 성취는 인상적이었지만, 그녀의 마음 한편에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녀에게는 또 다른 기억도 있다. 홀트를 통해 부자집으로 입양된 국내 입양인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입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김 씨는 그에게 상담을 요청했지만 연락이 끊어지는 작은 상처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저 정도로 성공해야 생모를 만날 수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축하받아 마땅한 성공의 장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생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이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잘 살아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공해야 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김 씨 역시 그런 노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학원에 다니기 어려웠던 형편에서도 공부를 이어갔고,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성취가 생모를 만날 자격을 얻기 위한 조건은 아니었다. 누구도 자신의 가치를 성적표나 학위, 사회적 지위로 입증한 뒤에야 출생의 진실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효정 씨의 학위 취득 졸업사진.
그녀는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아 기를 계획은 없다. 현재 앓고 있는 질환도 그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김 씨는 희귀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병을 앓고 있으며, 무릎관절염과 류머티즘 관련 건강 문제도 겪고 있다. 입양 사실을 알게 된 무렵부터 증상이 시작됐다고 기억한다. 어머니가 마흔여섯 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자신 역시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 아이를 키우다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걱정이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상실을 다음 세대에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선택을 누군가가 이해하거나 평가할 필요는 없다.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 역시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방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 씨가 자신의 입양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관련 활동을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부터이다. 이제 그녀는 얼굴을 드러내고 국내외 입양인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서 가장 사적인 비밀이었던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과거의 기억, 자신이 내놓을 이야기가 다른 입양인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생각해야 한다. 입양의 긍정적인 경험을 말하는 사람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말하는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속이는 근거가 될 수 없듯, 한 사람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입양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할 때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입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입양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도 있다. 사랑으로 아이를 키운 양부모가 있다면, 자신의 출생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입양인도 있다. 김 씨가 활동가로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겪은 일을 개인적인 상처로만 남겨두지 않고,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입양인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도록 돕는 일. 자신이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조직과 행정의 벽 앞에서 다른 이들이 혼자 서 있지 않도록 하는 일.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이름과 얼굴로 입양을 이야기한다. 숨겨야 했던 과거를 공개하고, 기록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하며, 입양으로 피해를 경험한 국내외 입양인들을 지원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2009년 중앙입양정보원으로 출범했다. 입양기관별로 흩어져 있던 정보를 통합해 관리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한 기관이다. 이 후 2019년 여러 기능을 통합해 현재의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김 씨는 이 기관의 업무 방식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입양기관에서 일했던 인력들이 출범 당시 다수 참여한 배경 등을 고려할 때, 입양기관 중심의 관행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열람한 자료의 상당 부분은 볼 수 없었고 생부모와 관련된 핵심 내용은 가려져 있다.
그녀는 국내 입양인의 질의에 대해서는 해외 입양인보다 응답이 빠르다고 느낀다. 국내 입양인은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고, 국내 행정 절차를 이해하며, 필요하면 직접 기관을 방문할 수 있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국내 입양인에게도 정보 접근이 충분히 보장된다는 뜻은 아니다. 김 씨의 경험은 국내 입양인 역시 오랫동안 기록의 문턱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국내 입양인에게는 비교적 정중하게 응대하면서 해외 입양인에게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입양인이 태어난 나라의 언어와 행정체계를 다시 배워가며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정보 접근의 장벽은 더욱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입양인의 출생 정보는 누군가에게는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된 정보다. 두 권리가 충돌할 때 행정기관은 어느 한쪽을 이유로 다른 쪽을 일괄적으로 배제하기보다, 법적 근거와 구체적인 사정을 검토해 가능한 범위에서 정보를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록을 관리하는 기관이 단지 서류의 보관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록 속에 담긴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정보 보호와 알 권리가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 씨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정보 공개가 아니다. 자신의 출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생모의 개인정보를 존중하면서도 본인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인지, 가려진 기록은 어떤 법적 근거로 비공개됐는지, 추가적인 확인이나 가족 찾기를 위해 어떤 절차를 밟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안내받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48페이지 중 32페이지를 확인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또 다른 질문이었다. 자신에 관한 기록인데, 왜 자신은 그 기록의 주인이 될 수 없는가.
김효정 씨의 초등학교 입학 당시 모습.
김 씨는 생모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사람이 실제로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만남을 서두를 수는 없다. 생모에게도 살아온 시간이 있고, 공개되지 않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김 씨에게도 자신의 건강과 감정, 앞으로 감당해야 할 관계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만남을 원하면서도 망설이는 마음은 모순이 아니다.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모가 자신을 반가워할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자신이 기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생모를 만난 뒤에도 모든 의문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출생의 기록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기억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긴 세월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고 해서 잃어버린 시간이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김 씨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고, 망설인다면 그 마음을 존중받아야 한다. 생모를 만나는 일이 입양인의 의무가 되어서도 안 되고,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돼서도 안 된다.
입양은 한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고 해서 태어난 가족에 관한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양부모에게 사랑 받았다는 사실과 별개로, 자신의 출생을 알고 싶다는 마음은 존재할 수 있다. 입양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아왔더라도, 출생의 진실을 확인할 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김 씨는 성공해야만 생모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학위가 없어도, 사회적으로 이름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출생을 물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이미 충분하다. 더 잘 살아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만 자신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아이에게 자신의 출생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못이 아니다. 그 질문을 던지는 데 20년이 걸렸다면, 이제는 그 질문에 답하는 사회의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기록은 종이 위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이 끝내 한 사람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보관된 정보는 있어도 진실에 다가갈 길은 여전히 닫혀 있는 셈이다. 모든 입양인은 자신의 출생을 물을 자격이 있다. 그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더 이상 성공할 필요도, 더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어야 한다.이득신 시민기자 dsshine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