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신의 벌 인식깨고 증상 관찰한 히포크라테스 [칼럼] 아폴론도 몰랐던 병의 정체
옛날 그리스에서 몸이 아프면 병원이 아니라 신전으로 갔다. 두통이 나면 아폴론이 노한 것이고, 갑자기 쓰러져 발작을 일으키면 그건 신이 내린 벌이라 믿어 신성한 병 이라 불렀다. 그런데 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코스 섬에서 태어나 기원전 370년경 세상을 뜬 것으로 전해지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라는 의사가 나타나 이 믿음에 정면으로 초를 친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발작은 신의 벌이 아니라 뇌에 생긴 병이다.
지금 들으면 당연한 소리지만, 그 시절엔 신전 장사를 방해하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로마 시대 초상 흉상에 나타난 히포크라테스의 관습화된 이미지 (19세기 판화)(위키피디아)
잔소리도 기록해두면 학문이 된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진짜 업적은 특효약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환자의 맥박과 체온, 기침 소리와 소변 색깔까지 하나하나 적어두고, 비슷한 사례를 모아 비교하는 방식. 히포크라테스 전집 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방대한 문헌은 사실 그 혼자 쓴 게 아니라 후대 제자들까지 따라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핵심 정신 하나는 분명하다.
권위 있는 사람 말을 믿지 말고, 눈앞의 증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라.
지금 병원에서 의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계속 입력하는 그 지긋지긋한 습관의 조상이 바로 여기 있다.
자신의 의술을 요청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황제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보낸 선물을 히포크라테스가 거절하는 일화를 묘사한 그림. 1792년 지로데 작(위키피디아)
선서라는 이름의 잔소리
세상이 히포크라테스를 오래 기억하는 진짜 이유는 치료법이 아니라 선서 때문이다.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환자의 비밀을 지켜라, 자기 실력을 과신하지 마라. 요즘도 의대 졸업식마다 낭독되는 그 선서의 원형이 2400년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물론 원문에는 지금 기준으로는 논란이 될 구절도 섞여 있어서 요즘은 개정판을 쓰지만, 의사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진 사람 이라는 뼈대만큼은 그대로 남아 전 세계 병원 벽에 걸려 있다.
여러 점의 고대 그리스 수술 도구. 왼쪽은 트레핀(두개골 절삭기)이고, 오른쪽은 메스 세트.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는 이러한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위키피디아)
잔소리의 수출 경로
히포크라테스가 죽고 500년쯤 뒤, 로마제국에서 활동한 그리스 출신 의사 갈레노스(Galen, 129년경~216년경)가 그의 이론에 살을 붙여 유럽 전역에 퍼뜨렸다. 이게 다시 이슬람 세계로 넘어가 아랍어로 번역되고, 페르시아의 학자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 서양에서는 아비센나로 불림)의 손을 거쳐 의학 백과사전으로 재정리된 뒤 중세 유럽으로 역수입되면서, 무려 1500년 가까이 서양과 이슬람 세계 양쪽에서 의학 교과서 노릇을 했다. 틀린 부분도 수두룩했지만(사람 몸에 네 가지 체액이 흐른다는 이론 같은 건 지금 보면 헛소리에 가깝다) 권위보다 관찰 이라는 태도만큼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9세기 헝가리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 1818~1865)가 손씻기의 효과를 통계로 증명해 산욕열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췄을 때도, 결국 신탁이 아니라 숫자를 믿은 결과였다.
히포크라테스식 장치를 이용한 어깨 탈구 정복술을 묘사한 목판화(위키피디아)
그래서 한국은?
이제 한국 이야기를 좀 해보자. 최근 몇 년 한국에서는 의대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 사회가 정면충돌했고,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환자들이 갈 곳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이 글에서 판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질문 하나는 되짚어볼 만하다.
의사라는 직업은 애초에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선서의 첫 줄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였지, 내 밥그릇부터 지켜라 가 아니었다.
더 넓게 보면 히포크라테스의 진짜 유산은 특정 의학지식이 아니라 태도다. 눈앞의 현상을 신탁이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태도.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그 뒤 한국사회에 필요했던 건 확신에 찬 구호가 아니라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 하나하나 짚어보는 냉정함이었다. 히포크라테스가 신전 대신 환자의 침상 곁에 앉았듯, 지금 한국사회도 선언과 진영 대신 사실 앞에 다시 앉아볼 때다.
병은 신이 내려서 생기는 게 아니라 원인이 있어서 생긴다. 사회의 병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낫지 않는다. 누군가 맥을 짚고 기록을 남겨야 낫는다. 그 잔소리꾼 노릇을 2400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먼저 했을 뿐이다.
2~3세기 그리스 코스섬 아스클레피에이온 바닥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모자이크(중앙에 아스클레피오스 묘사, 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