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마술의 달인 후디니, 그가 벗어나지 못한 것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난뱅이가 세계를 정복하는 법
1900년 런던 경시청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에리크 바이스(Erik Weisz, 1874~1926), 아니 무대 위에선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라 불리는 헝가리 출신 이민자였다. 그는 경찰관들에게 자신을 수갑으로 채우고 감방에 가두라고 제안했고, 몇 분 만에 탈출해 버렸다. 영국 경찰은 충격에 빠졌다. 대영제국의 쇠사슬이 식민지 원주민을 묶을 순 있어도, 이 교활한 마법사는 못 묶는단 말인가?
그날 이후 후디니는 앨햄브라 극장과 6개월 계약을 맺었고, 그의 주급은 300달러(현재 가치 약 1만 1천 달러)로 치솟았다. 미국에서 싸구려 서커스를 전전하며 주급 25달러 받던 마술사가, 대서양을 건너자마자 런던 상류층이 떼거지로 몰려드는 극장의 간판 스타가 됐다. 아메리칸 드림? 아니, 이건 브리티시 나이트메어였다.
후디니. 1907년. (위키피디아)
탈출의 달인, 이성의 적
1900년부터 1920년까지 후디니는 영국 전역을 누비며 탈출 묘기, 환상 쇼, 카드 마술, 야외 곡예를 선보였고 당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군중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물로 가득 찬 우유통에서, 교수형 밧줄에서, 심지어 시베리아 유형수 호송 차량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여기엔 아이러니가 있다. 후디니는 철저한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묘기가 물리학, 체력, 그리고 기술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초자연적 능력? 그런 건 없다. 그런데 대중은 믿지 않았다. 특히 영국인들은. 저 남자는 분명 마법을 쓴다 고들 수근댔다.
가장 우스운 건, 셜록 홈스의 창조자 아서 코난 도일 경(Sir Arthur Conan Doyle, 1859-1930)마저 후디니가 진짜 영적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탐정을 만든 작가가, 무대 위 속임수를 신비주의로 착각하다니!
후디니의 서명.(위키피디아)
강령술사 대 사기꾼 사냥꾼
1920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코난 도일은 강령술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후디니는 가짜 영매를 폭로하는 데 열성이었다. 코난 도일은 아들 킹슬리(Kingsley)가 1918년 1차 대전 중 사망한 후, 강령술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아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후디니는 친구의 슬픔을 이해했지만,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었다.
1922년 미국 마법사 협회 모임에서 코난 도일은 실물 크기의 공룡들이 움직이는 영화를 상영했다.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공룡을 필름에 담았단 말인가? 후디니조차 속았다.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그건 코난 도일의 소설 〈잃어버린 세계〉의 영화 장면이었고, 최초의 스톱모션 촬영 기법이었다. 작가가 마법사들에게 한 방 먹인 셈이다.
하지만 1922년 애틀랜틱 시티에서 열린 강령회가 결정타였다. 코난 도일의 부인 진 레이디(Lady Jean Doyle)가 후디니 어머니의 영혼과 접촉했다고 주장하며 자동필기로 15페이지에 달하는 메시지를 받아 적었다. 문제가 뭐냐고? 첫째, 메시지 첫 페이지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후디니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둘째, 메시지는 전부 영어로 쓰여 있었다. 어머니는 독일어와 이디시어만 할 줄 알았다.
후디니는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우정은 그날 죽었다.
후디니, 1900년 경. (위키피디아)
영국 사회에 남긴 것들
후디니가 영국에 남긴 건 뭘까?
첫째, 20세기 초 영국에서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고, 영화는 이제 막 태동하던 시절, 음악홀과 극장은 대중오락의 중심이었다. 인기 공연자들은 오늘날 영화배우와 같은 존재였다. 후디니는 그 시대의 슈퍼스타였다. 그는 대중오락이 단순한 여흥을 넘어 거대한 사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둘째, 그는 영국의 합리주의와 신비주의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부터 강령술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예이츠(W.B. Yeats, 1865~1939),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까지 죽은 이들과 소통하려 했다. 1차 대전으로 수백만 명이 죽자, 그 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후디니는 이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무대에서, 출판물에서, 법정에서까지 가짜 영매들을 폭로했다. 1920년대부터 그는 전문 회의론자이자 영매 폭로자로서 두 번째 경력을 시작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간단했다: 슬픔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인간 거머리들을 조심하라.
셋째, 그가 공연한 많은 극장들은 사라졌다. 노리치 히포드롬은 이제 다층 주차장이고, 사우스엔드 히포드롬은 소매점이 됐다. 그레이트 야머스 극장만이 살아남았다. 후디니의 전설은 남았지만, 그가 서 있던 무대들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공습폭격과 전후 개발로 사라졌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영국다운 결말이다. 추억은 팔아먹고, 건물은 주차장으로.
1899년, 체인과 자물쇠를 착용한 홍보 촬영 중인 후디니.(위키피디아)
핼러윈 데이에 죽은 남자
1926년 10월 31일 핼러윈 밤에 후디니는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맹장 파열. 며칠 전 몬트리올에서 한 대학생이 후디니의 복부를 갑자기 주먹으로 가격했고, 이미 맹장염이 있던 그는 치료를 미루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죽기 전 그는 아내 베스(Bess Houdini)에게 맹세했다. 죽은 뒤에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암호는 로사벨, 믿어라(Rosabelle, believe) 였다. 베스는 10년 동안 강령회를 열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포기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남자를 기다리기엔 10년이면 충분해.
하지만 그 이후로도 매년 핼러윈이면 사람들은 공식 후디니 강령회 를 연다. 탈출의 명인은 죽어서도 탈출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위대한 탈출은 이미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백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부르고, 찾으니까.
후디니와 그의 어머니, 아내, 1907년경. (위키피디아)
사슬과 사기꾼들
후디니와 코난 도일의 우정이 남긴 교훈은 명백하다. 똑똑한 사람도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이성의 화신 셜록 홈스를 창조한 작가가 요정 사진에 속았다는 게 그 증거다. (맞다, 코난 도일은 위조된 코팅리 요정 사진을 진짜로 옹호했다.)
반면 쇠사슬과 물탱크에서 벗어나는 게 일상이던 남자는, 가장 벗어나기 힘든 것에서 못 벗어났다. 바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 후디니는 친구를 잃으면서까지 거짓 영매들을 폭로했다. 어떤 이는 그를 영웅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편집광이라 부른다.
영국은 그에게 명성을 줬고, 그는 영국에 볼거리를 줬다. 공정한 거래였다. 다만 한 가지, 영국인들은 그가 마술사인지 마법사인지 끝내 구분하지 못 했다. 어쩌면 그게 진짜 마법이었을지도.
후디니가 엄청나게 강하고 큰 여행용 바구니 에서 탈출하는 도전을 펼치는 모습을 홍보하는 포스터. (위키피디아)
필자 후기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진실보다 신비를 원한다. 후디니는 이건 속임수요 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저건 기적이야 라고 믿었다. 21세기 가짜뉴스 시대를 살며, 우린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후디니가 오늘 살아 돌아온다면 뭘 할까? 아마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을 폭로하고 다니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안 믿지 않을까.
핼러윈이 되면, 그의 무덤 앞에서 강령회가 열린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강령술을 반대한 남자가 사후엔 강령회의 주인공이 됐다.
이게 바로 탈출의 명인이 탈출 못한 유일한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
후디니와 제니, 사라지는 코끼리, 1918년 1월 7일.(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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