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거의 해체 됐지만… 공동체 정신 은 남아 [사람들] 한국의 농촌. 농업인신문
자기 한 사람만 행복해지는 일도 불행해지는 일도 없는 생활,
자기 한 사람이 열심히 하면 저절로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생활,
타인이나 사회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생활. 이러한 생활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 나가는 인간은, 그 어느 것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50여 년간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체득한 사실이다.”
일본 사이타마시 아타라시키 마을에 사는 와타나베 칸지라는 사람의 회고담이다. 아타라시키 마을은 한 이상주의자가 만든 꽤 오래된 공동체 마을이다.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이 60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많이 퇴락했다. 퇴락이란 주민 수가 줄었다는 것이지 마을의 이상이 퇴락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 회고는 개인과 공동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에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 마을에 이 정도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 이 정도의 공동체성을 체화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무자비하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법칙과 균형 감각을 잃은 일부 주민의 큰 목소리를 통제하지 못해 마을이 잘 굴러가지 않을 뿐이다. 나는 평생을 공동체 속에서 살았고 지금도 마을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애를 쓰지 않아도 그 자체가 공동체적”이라는 말에서 무시무시한 내공이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과 실제로 그런 마을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무수한 공동체 시도가 있었지만 거의 다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경북 의성군 점곡면 농촌마을. 위키백과
외지인의 전통마을 정착 법 무한 봉사, 무한 겸손”
최근에 내가 마을에서 겪고 있는 분쟁을 먼저 살펴본다. 이 마을에 폐교를 인수하여 이사 온 지 4년째다. 처음 오자마자 마을 회의에 참석하여 인사를 올렸다.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주민들은 내가 마을을 크게 발전시켜 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외형적 발전이 아닌 인간의 발전”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걱정이 되었다.
외지인이 전통 마을에 들어와 토착민과 잘 어울리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다. 여기 오기 전에 전라도 산속에서 마을 주민으로 20년을 살아서 잘 안다. 무한 봉사와 무한 겸손이다. 외지인이 ‘내 것’ 또는 ‘내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모든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묻겠지만 오랜 세월 폐쇄된 공동체에서 살아온 마을 주민들과 섞이려면 어쩔 수가 없다. 이들에게 외지인은 우주에서 날아 온 외계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문명, 다른 기술, 다른 사상, 다른 심성을 가진 사람이 와서 나의 질서를 깨뜨리는 그 무엇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나는 평생을 집 가장자리 텃밭 끄트머리에서 쓰레기도 태우고 오줌도 누고 했는데 옆에 누군가 이사라도 오면 그 일을 못 한다. 새로 온 주민이 자기 권리를 내세우며 항의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감정싸움이 심해지면 고소·고발로 넘어간다. 실제로 이 일은 몇 년 전 근처로 귀농한 지인이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다. 한 귀농 후배는 이웃과 사소한 말싸움 끝에 고발을 당해 마당에 있는 닭장을 철거해야만 했다. 불법 시설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기보다 뒤에서 쑤군대기
하루는 학교 운동장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일단의 장년 사내들이 오더니 부탁이 있다고 말한다. 자기들은 이 학교 졸업생들로서 벌써 18년째 여기에 졸업생과 마을 주민이 모여 운동회를 하고 있다면서 운동장을 손상하지 말고 존속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물론 운동회를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엄밀히 말하면 이런 부탁은 타인의 재산권 침해에 가깝다. 처음 이태 동안은 운동회를 허락했다. 그러나 나는 운동장 일부를 개조해 도서관과 정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동창회장을 불러 다음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모임을 가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동창회장은 자기가 운동회를 시작한 장본인으로 내년이 20회이니 그것만 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자기도 책무를 후배들에게 넘기고 마지막을 멋지게 완성하고 싶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하는 말이 시대가 변해 지금은 참석률도 저조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말한다. 나도 땅 주인으로서 계획이 있는데 일 년에 한 번 하는 동창회 모임 때문에 운동장에 손을 못 대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며 항변했다. 타협은 잘 이루어져 20회 운동회를 끝으로 다음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모임을 하기로 협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신축 도서관 건립 비용이 너무 비싼 데다 가지고 있는 굴삭기를 친구가 빌려 가 버려 공사를 못한 상태에서 다음 동창 모임 날이 다가왔다. 아마도 동네 보건소에서 모임을 한 모양인데 협의 내용을 모르는 일부 주민들이 나를 공개적으로 성토했다고 한다. 공사도 안 하면서 사용을 불허했다는 것이다. 성토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서 어떻게 하면 나를 골탕 먹일까 하고 논의까지 했다. 운동장에 있는 불법 시설물을 고발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심지어 운동장에서 낙엽을 모아 태울 때는 관에 신고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도서관 신축을 포기한 이상 나도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이장을 찾아가 일침을 놓았다. 마을 사람 사이에 불만이 있으면 직접 만나 협의해야지 뒤에서 협박이나 하면 마을이 제대로 굴러가겠냐고. 그러면서 내년부터 일부 운동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노라 얘기했다. 내가 마을에 들어 온 이유가 결국 마을공동체를 만들고자 함인데 건축 계획이 사라진 이상 쓸데없이 고집 피울 필요가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정정당당히 그 문제를 가지고 당사자와 대화하기보다 뒤에서 쑤군대며 상황을 악화시켜 상대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는 관행이 너무도 안타깝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개적으로 질문하고 논의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뒤에서 꼭 문제를 일으킨다. 강의 현장에서도 그렇다. 강의 후 질문하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뒤풀이나 식사 자리에 가면 그제야 폭풍같이 질문한다.
한글날인 지난 10월 9일 와흘메밀문화제가 열리는 제주시 조천읍 와흘메밀마을에서 나들이객과 관광객들이 메밀꽃밭을 산책하고 있다. 2026.10.9. 연합뉴스
마을발전기금과 정부 지원금으로 지은 창고 분쟁
나와 관련된 문제는 원래의 협의를 뒤집고 내가 양보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나 진짜 문제는 마을 자체에 있었다. 마을 회의에 갈 때마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감정이 격해져 서로 욕을 하다가 끝나버리는 일도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공용 창고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주민들이 십시일반하여 마련한 토지 위에 정부 지원금으로 창고를 지었는데, 이제 와서 그때 돈을 내었던 일부 주민들이 땅을 팔아 돌려받겠단다. 나도 오자마자 땅을 사기 위해 만든 마을금고에 돈을 내라 하여 내용도 모른 채 마을발전기금인줄 알고 60만 원이나 냈다. 그러나 신입자 가운데 동의할 수 없다며 돈을 안 낸 사람도 꽤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의할 때마다 창고 문제로 늘 시끄러웠다. 사실 면밀히 살펴보면 그 마을금고에는 원래의 기부금 외에 정부지원금과 신입자들의 기부금도 섞여 있었고 오랜 세월 그 돈을 마을 경비로 써왔기에 자기 지분을 따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토지 명의 자체가 ‘마을 회의’로 되어 있다. 법적으로 보나 관행으로 보나 토지 매각이 불가능한 데도 기어코 땅을 팔아 돈을 되돌려받겠다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마을 총회에 나갔다가 믿어지지 않는 일을 보고야 말았다. 노인회장을 지냈던 한 분이 그 땅을 사겠다며 바로 돈을 내겠단다. 아니, 재산권 행사도 할 수 없는 땅을, 큰돈을 주고 사다니! 믿어지지 않았지만 매각에 찬성하는 사람들 위주로 모인 회의에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 내막이 거의 드러난 것 같다. 땅을 사겠다는 사람은 땅값의 4배가 되는 창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매각 대금을 나눠 가지려는 사람은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으니 적어도 자기들끼리는 이익이다. 이들의 계산법에 없는 것은 공동체와 초기 투자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의 권리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마을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들의 의도는 일단 법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조례에 따르면 마을 총회가 결정하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날의 총회가 법적 절차를 제대로 갖추었는지 의문이고(반대파들은 거의 불참) 법정 대리인인 마을 이장이 반대하고 있다. 불가능하고 또 해서는 안 될 일을 수년 동안 참으로 질기게도 추진하고 있었다. 80을 넘긴 노인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본전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소박한’ 욕망일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와 비슷한 사례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십여 년 전 내가 농림부 주관 의 평가위원을 했을 적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업으로 만들어진 창고가 개인 소유로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보기도 했다. 이 문제를 쉽게 볼 수 없는 게, 실제로 매각에 성공한 사례가 꽤 있다. 어차피 마을이 비어 가니 하루라도 빨리 팔아서 푼돈이라도 챙기자는 심리다. 그러나 우리 마을은 빈집이 없을 정도로 인구가 꽉 찬 마을인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농촌의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
마을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서, 물론 이를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는 몇 가지 한국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를 짚어내지 않을 수 없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금평마을. 한려투데이
전통적 마을공동체의 해체
첫째가 전통적 마을공동체의 해체이다. 이는 이미 1970년 대부터 진행된 것으로 지금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된 마을만들기 사업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에 의해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 마을에서 창고 매각에 매달리는 분들은 창고를 이용할 만큼 큰 농사를 짓지도 않는 데다 마을공동체에 기대할 것도 없는 분들이다. 만약 자녀들이 마을에 있다면 후세를 위해서 공동체를 유지하겠으나 그마저도 없으니 본전이나 뽑고 세상을 뜨자는 셈법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들어온 젊은 분들은 나이 든 주동자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말한다.
‘한’에 가까운 뼛속 깊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
둘째로 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뼛속 깊이 박혀 있다. 시골에서 살아보면 도시보다 오히려 농촌의 주민들이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고 살벌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동네 땅값이 떨어지는 사안이 생기면 주민들이 낫을 들고 쫓아온다. 상대방의 양보를 주장하면서 자기는 손끝만큼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다. 외지인이 ‘무한 봉사’의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합리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농촌이 소외되어 온 데서 비롯되었다. 뼛골 빠지게 농사지어봐야 손에 쥐는 건 얼마 되지 않으니 이런 악착같은 근성이 생긴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자본주의적’이라기 보다 일종의 ‘한’에 가깝다.
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민과 민의 관계
셋째로 민과 관의 관계이다. 사실 우리 동네 문제는 관으로 가져가면 그날로 해결된다. 관이 안 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그날로 종결되는 사안이다. 그에 불복하여 법정 투쟁을 하더라도 이기기 힘든 사안이다. 오랫동안 ‘주민자치’를 추구해 온 사람의 눈으로 볼 때 한국 농촌의 관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 500년 동안 관이 지배했고, 일제시대와 건국 후에도 이 나라는 관료 집단에 의해 건설 유지되었다. 아마도 관료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에 있어 세계 최고의 평점을 받지 않을까 싶다. 유럽과 일본에서 이러한 중앙집권적 관료 지배 체제가 확립된 것은 18세기 이후나 되어서 가능했다. 한강의 기적은 관료 지배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민자치 같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주민자치회’조차 관의 입김이 엄청 세다.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관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 관료 시스템은 워낙에 촘촘하여 눈 밝은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지원을 관으로부터 얻어낼 수도 있다. 관의 입장에서 보면 대성공이지만, 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치의 가능성이 희박하니 절망적이다. 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온갖 지원사업과 공모사업을 통해 민을 종속적 상황에 묶어두고, 그로 인한 권력까지 누릴 수 있으니 불만이 없다. 민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스스로 메우는 작업 정도이다. 그 공간이 크면 자치력을 행사할 기회가 되지만 민의 관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 크고 공동체 해체 과정에서 이미 모래알이 된 주민의 동력을 끌어내기가 너무도 아득하다. 게다가 관은 영특하게도 ‘민원’을 중시하여 주민의 모든 불만을 관으로 가져오게 했다. 좋게 말하면 관이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민민갈등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이 모두가 공동체 해체 과정에서 마을 스스로 통치력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탐욕과 이기주의라는 인간 본성과 관련된 문제
넷째로 탐욕과 이기주의 문제이다. 이는 인간 본성과 관계된 문제이나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더 나빠진 측면이 있다. 우리 마을 노인들이 겨우 100만 원 남짓 되는 초기 투자금을 악착같이 회수하고 싶어 하는 이면에는 한 푼이라도 자식에게 남겨주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상점도 없고 온라인 거래도 할 줄 모르는 노인에게 그 돈이 왜 필요할까? 자식들 때문이다. 땅 한 뙈기, 용돈 몇 푼이라도 남기고 싶은 거다. 예전엔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와 충돌하면 쉽게 포기했는데 지금은 농촌이라도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이다 보니 악착같이 내 것을 챙기지 못하면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 정신
황대권 생명평화 운동가, 야생초 편지 작가
그래도 마을에는 말없이 장승처럼 마을을 지키는 원로들이 있다. 그리고 위기 때나 일이 잘 돌아갈 때 우르르 몰려들어 힘을 합치는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다. 부정적인 측면만 들여다보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듯 보이나, 긍정의 마음으로 긍정의 행동을 하면 이웃이 조금씩 변해간다. 내가 영광 산속에서 나올 때 마을 주민들이 수줍은 듯 선물 하나를 주었다. 포장을 뜯어보니 마을을 위해 봉사해 주어 고맙다는 기념패였다. 평생 번듯한 표창 한 번 못 받았으나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을 듯하다. 새로 들어선 마을에서도 변함없이 와타나베 칸지가 말한 대로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생활”을 이어가야겠다.황대권 문명전환 hdk@mind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