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중권의 ESG 모멘텀】유럽의 폭염이 보여준 기후 공시의 본질 [칼럼]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은 메시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정규시간 90분 동안 단 한 개의 슈팅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하며 우승했다. ‘질식 수비’라 불릴 정도로 빈 틈 없었던 축구를 구현했던 월드컵 기간, 스페인에서의 최고 온도가 46℃를 기록할 정도의 폭염이 유럽을 숨막히게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유럽 주요 국가의 병원과 요양시설, 학교, 대중교통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냉방 인프라 부족 문제가 제기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유럽 지역의 폭염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고, 기후변화 대응에도 적극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예측하고 관리하고 있었음에도 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유럽을 덮친 폭염
ECDC(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와 WHO(세계보건기구)의 지원을 받는 사망률 감시 네트워크인 EuroMOMO에 따르면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에서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6월 22일부터28일까지의 기간 동안 유럽 27개국에서 평소 같은 기간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1만명 이상 초과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EuroMOMO 관계자는 극심한 더위 외에는 이처럼 높은 초과 사망 규모를 설명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열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심혈관 질환을 악화시키고, 노인과 영유아의 열사병 위험을 높힌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강이나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면서 익사 사고도 급증했다.
폭염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피해도 발생했다. 에어컨이 없는 서유럽 학교 수천 곳이 휴교하고, 자녀 돌봄을 위해 부모들이 휴가를 쓰는 등 노동공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OECD는 2025년 유럽 폭염으로 여러 OECD 국가에서 학교 휴교가 발생했다 고 분석하며, 프랑스 교육시설의 에어컨 설치 비율이 매우 낮다는 조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기온 상승에 따라 에어컨을 보유한 가구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에도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5년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23%로, 미국ㆍ일본 등보다 크게 낮고 보급 속도는 동남아시아ㆍ인도에 비해 느리다.
지역별 에어컨 보유 가구 비율 / 사진=IEA
예측된 위험에 대한 대응
사실 40℃가 넘는 유럽의 폭염은 예상 밖의 재난이 아니었다. EU 집행위원회 산하의 JRC(공동연구센터)는 2016년 발표한 연구에서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로 대규모 피해를 낳았던 2010년 러시아 사례와 맞먹거나 그보다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폭염이 2021년에서 2040년 사이에 유럽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진은 당시부터 이에 대한 취약성 평가와 적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유럽의 건물 정책은 오랫동안 기후 완화(mitigation)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EU는 2002년 EPBD(건물에너지성능지침) 도입을 통해 건물의 에너지 성능 개선을 추진해 왔다. 2024년에는 EPBD를 개정하여 기존의 접근을 넘어 건물의 과열 위험을 고려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건물 정책의 중심이 기후 완화에서 적응(adaptation)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다. 다만 건물과 도시의 설계를 통해 과열을 줄이는 패시브 쿨링(passive cooling)을 우선적인 전략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사례는 폭염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예측된 위험에 대한 대응의 범위와 속도가 충분했는지를 반추하게 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JRC는 2024년 기준 충족되지 못하는 잠재 냉방 수요를 모두 해결하는 데 필요한 추가 전력은 EU 전체 전력소비의 약 0.4% 증가 수준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기후 완화와 기후 적응 사이의 균형은 기존과는 다른 시각에서 검토할 수 있다. 이는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기후변화 관련 위험을 예측하는 것이 곧 최적의 경영 전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최적화
이처럼 유럽의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기후변화를 예상하지 못한 실패가 아니었다. 문제는 예측된 미래가 정책 의사결정에 충분한 범위와 속도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최근 우리나라도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가 가시화되면서 대상 기업은 기후 관련 거버넌스와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를 공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기업의 의사결정을 최적화하기 위한 근거가 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가지게 된다.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 발생, 고객사의 친환경성 요구 미충족으로 인한 매출 감소,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 차질 위험 등을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금융사는 기후 공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이 다양한 기후 시나리오 하에서 위험에 대응·적응하고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인 ‘기후 회복력(climate resilience)’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리스크 관리 및 자본건전성 지표 등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여신 또는 투자 심사 반영, 고탄소업종 익스포저 관리, 기후금융 전략 수립 등이 그것이다. 정부의 기후전략 수립 인프라 구축은 이러한 분석의 정합성과 기업 간 비교가능성을 높여 정보의 산출과 활용 부담을 완화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전사적 위험관리와 거버넌스
유럽은 개인과 정책 단위에서의 적응 노력이 있었음에도 폭염으로 인한 혼란에 노출되었다. 기업에서도 개별 부서 단위에서 탄소배출 관리, 에너지 절감, 공급망 점검 등에 대응할 수 있고, ESG 담당부서 차원에서도 일정 수준 대응 조치를 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전사적 위험 관리 체계에 통합하고 경영 의사결정으로 연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 ESG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있다.
KSSB(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서 제2호 ‘기후 관련 공시’는 일반목적재무보고서의 주요이용자가 ‘기업에 대한 자원 제공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유용한’ 기업의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에 대한 정보를 기업이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강중권 팀장은
강중권 마스턴투자운용 ESG팀장은 금융·컨설팅 분야에서 10년 이상 ESG 기획·자문을 담당해왔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를 졸업하고 BC카드를 거쳤으며, Deloitte 안진회계법인 등에서 ESG 전략·평가·공시 자문을 제공했다. 이후 현대차증권에서 ESG 추진체계 구축과 기획 업무를 주도했으며, 현재 마스턴투자운용 ESG팀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