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없는 조언으로 나라를 말아 먹은 애설레드 2세 [사회혁신] 별명부터가 말장난이었다
애설레드 2세(Æthelred the Unready, 966경~1016)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능왕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언레디(Unready) 라는 별명, 사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준비 안 된 이라는 뜻이 아니다. 고대 영어로 그의 이름 애설레드는 고귀한 조언 이라는 뜻이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며 운레드(unræd) , 즉 조언이 형편없는 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름과 별명이 운을 맞춘 말장난이었던 셈이다. 고귀한 조언 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정작 형편없는 조언 으로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것, 역사는 가끔 이렇게 짓궂다.
애빙던 연대기, 약 1220년의 애설레드(위키피디아)
형의 시신 위에서 시작된 왕좌
애설레드는 에드거 왕(Edgar the Peaceful, 944경~975)과 왕비 엘프스리스(Ælfthryth, 945경~1001)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무렵, 이복형인 에드워드 왕(Edward the Martyr, 962경~978)이 코르페 성에서 암살당하면서 갑작스레 왕좌에 앉게 된다. 암살의 배후로 계모 엘프스리스가 지목되었는데, 어린 애설레드가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형을 죽이고 왕이 된 자 라는 꼬리표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정당성 없는 권력의 시작,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뒤탈이 난다.
뉴 민스터 헌장 (New Minster Charter)에 묘사된 에드거 왕의 당대 모습(위키피디아)
돈으로 막을 수 있는 건 시간뿐이다
애설레드 치세의 가장 큰 과제는 바이킹의 침입이었다. 991년 몰든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이 패한 뒤, 그는 침략자들에게 데인겔드 라는 이름의 조공을 바치기 시작한다. 쉽게 말해 매년 거액을 갖다 바치며 제발 그만 쳐들어와 달라 고 빈 것이다. 문제는 이게 근본해법이 아니라는 것. 돈을 받은 바이킹은 얌전해지기는커녕 이 나라는 돈을 뜯어내기 좋은 곳 이라는 소문만 유럽전역에 퍼뜨렸고, 침입은 오히려 늘었다. 위기를 매번 돈으로 미루기만 하는 지도자, 어디서 많이 본 그림 아닌가.
13세기 후반의 족보 두루마리에 묘사된 애설레드(위키피디아)
학살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다
1002년, 애설레드는 초강수를 둔다. 잉글랜드 내 덴마크계 정착민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 이른바 성 브라이스 축일 학살 이다. 11월 13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이 학살로 옥스퍼드에서는 교회로 피신한 사람들까지 불태워 죽였는데, 훗날 애설레드는 이를 가장 정당한 척결 이라 자평하는 문서를 남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학살의 희생자 중에는 당시 덴마크 왕 스웨인 포크비어드(Sweyn Forkbeard, 960경~1014)의 누이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유화책의 실패를 폭력으로 덮으려다, 오히려 상대에게 참전의 구실과 사적 복수심까지 쥐어 준 꼴이 되었다.
덴마크 왕 스웨인 포크비어드(NPG D8112; Portrait - National Portrait Gallery)
도망친 왕, 무너진 나라
1013년, 스웨인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애설레드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인 엠마(Emma of Normandy, 985경~1052)의 고향인 노르망디로 망명한다. 이듬해 스웨인이 급사하면서 잠깐 왕좌를 되찾았지만, 나라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1016년 애설레드가 눈을 감자 아들 에드먼드(Edmund Ironside, 989경~1016)가 뒤를 이었으나 몇 달 만에 사망했고, 결국 스웨인의 아들 크누트(Cnut the Great, 995경~1035)가 잉글랜드 왕좌에 앉는다. 잉글랜드가 사실상 덴마크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엠마 왕비 찬가(The Encomium of Queen Emma)》를 전달받는 엠마, 1050년경, 영국 도서관 소장(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애설레드의 실패는 특정 사건 하나 때문이 아니다. 위기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돈을 뿌리거나, 강경조치 한 방으로 여론을 반전시키려 하거나, 정작 정면대응이 필요한 순간엔 도망친 것, 이 세 가지 패턴이 반복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지금 한국정치를 돌아봐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대신 그때그때 봉합하고 넘어가려는 태도, 위기 앞에서 강경한 제스처로 정당성을 세우려는 유혹, 그리고 정작 책임질 순간에 발을 빼는 지도자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도 결국 정치적 위기를 정상적 절차가 아닌 극단적 한 수로 돌파하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애설레드의 학살 명령과 근본이 닮아 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위기를 미루기만 하는 자는 결국 나라를 통째로 남에게 넘겨주고 만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벤체슬라우스 홀라르가 제작한, 올드 세인트 폴 대성당에 있는 12세기 에식스의 세비 왕과 애설레드 왕의 무덤을 17세기에 새긴 에칭 작품(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