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형량 바겐세일 하나 [사회혁신]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단지 형량이 가벼워서만이 아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행위의 본질과 책임을 외면한다고 국민이 느끼는 순간, 사법부의 권위와 정당성도 흔들린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이던 형량이 9년으로 줄었다. 무려 16년을 깎아준 판결이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파괴 사태가 벌어진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이를 심판하는 사법부의 시계는 더디기만 하고 판단은 국민의 상식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가 권력자들이 오히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이 중대한 사태에 대해, 사법부는 과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책임을 묻고 있는가.
재판부는 일부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거나, 계엄을 정당화하고 수용 시설을 점검하려던 구상이 실제로 충분히 실행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형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계획이 끝까지 실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량을 크게 줄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특히 헌법을 파괴하려는 계획이 국가 권력과 결합했다면, 실제로 어디까지 실행됐는지만큼이나 무엇을 실행하려 했는지도 엄중하게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 계획이 실행되지 않은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가담자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멈췄기 때문인가.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 담장을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시민들, 위헌적 명령에 맞선 이들이 있었기에 계엄의 계획은 뜻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헌정 질서의 붕괴를 막아낸 것은 권력자들의 선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용기 있는 저항이었다.
정치인 체포와 수거, 전 국민 출국금지 등을 구상한 문건과 지시 역시 계엄 상황에서 그 의미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구체적인 행위가 법적으로 범죄의 실행이나 미수에 해당하는지는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그러나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계획의 위험성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과 그 책임이 가볍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역사는 권력의 잘못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되풀이되는지 보여준다.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광주학살을 일으킨 신군부 세력은 뒤늦게나마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과거의 사법적 단죄만으로 군사반란과 국가 폭력의 재발을 막지는 못했다.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 우리는 다시 군대가 국회를 향하는 참담한 현실을 목격했다. 과거의 죄를 단죄하는 일은 단순히 역사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력의 헌정 파괴 행위를 엄중히 처벌해야 같은 범죄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기준도 세울 수 있다.
그렇기에 법원이 내란 가담자에게 어떤 책임을 묻느냐는 중요하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시도가 실패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크게 덜어준다면, 미래의 권력자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끝내 성공하지 못하면 처벌도 가벼워질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뿐이다. 사법부는 범죄의 실패가 책임의 경감으로 이어지고, 그 관용이 또 다른 헌정 파괴의 빌미가 되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 시선은 대법원으로 향한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사건을 심리하는 대법원이 어떤 법리를 세우느냐에 따라 내란과 헌정 파괴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무거운 형량을 선고하는 일이 아니다. 행위의 성격과 책임을 법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다.
법관의 양심은 법조문 뒤에 숨는 데 있지 않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판단이 헌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끝까지 살피는 데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단지 형량이 가벼워서만이 아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행위의 본질과 책임을 외면한다고 국민이 느끼는 순간, 사법부의 권위와 정당성도 흔들린다.
내란을 단죄하는 일은 과거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 다시는 군대가 국회를 짓밟고 권력이 헌법 위에 서려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다. 단죄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고, 책임을 묻지 않는 법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음을 조희대 사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